우리는 구약에 있는 말씀들을 통하여 주님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 “죄 없으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고 하는 정도로만 말을 하지만, 레위기 1장으로부터 5장까지에 나타난 주님의 모습과 우리의 모습을 증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죄가 어떤 죄이고, 그 죄 때문에 주님이 어떻게 죽으셨나 하는 죽음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이때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어떤 은혜인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레위기 2장은 음식 제사”(Meat Offering)에 대한 말씀입니다. 음식을 태운다고 해서 우리 개역 성경에는 “화제”로 번역했습니다.
우선 레위기 2장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누구든지 주께 음식제사를 드리고자 하면 그의 제물은 고운 가루로 할지니, 그 위에다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다 유향을 놓아서 제사장들인 아론의 아들들에게로 가져올 것이며 제사장은 거기에서 가루 한 줌과 기름과 모든 유향을 가져다가 그 기념물을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불로 드리는 제사요, 주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음식 제사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것이 될지니 그것은 불로 드리는 제물 중에서 가장 거룩한 것이니라.
네 헌물이 철판에 구운 음식제사라면 누룩 없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여러 조각으로 나눠서 그 위에 기름을 부을지니 그것이 음식제사니라.”(레 2:1-6)
“네 헌물이 튀김판에 구운 음식제사라면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들지니라. 너는 이것들로 만든 음식제물을 주께 가져와서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으로 가져와서 그 음식제사에서 기념물을 취하여 제단에서 불사를지니 그것이 불로 드리는 제사요, 주께 향기로운 냄새니라.”(레 2:7-9)
“너희는 누룩을 넣어 만든 어떤 음식제물도 주께 드리지 말지니, 이는 불로 드리는 주의 어떤 제물에도 누룩이나 꿀은 불사르지 못함이라. 음식제사의 모든 헌물은 소금으로 간을 맞추되 너는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음식제사에 부족하지 않게 할지니 너는 네 모든 제물과 함께 소금을 드릴지니라. 네가 첫열매들의 음식제물을 주께 드리려면 불로 말린 곡식의 첫열매들의 푸른 이삭을 음식제사로 드리되 익은 곡식이라야 하며 너는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을 넣을지니 그것이 음식제물이니라. 제사장은 그 기념물, 곧 그 제물에서 찧은 곡식 조금과 기름 조금을 모든 유향과 함께 불사를지니 그것이 주께 불로 드리는 제사니라.”(레 2:11-16)
사도 바울은 “음식으로나 마시는 것으로나 거룩한 날이나 새 달이나 안식일들에 관해서는 아무도 너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이런 것들은 다가올 것들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 2:16-17)고 증거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오늘 음식제사를 포함해서 율법에 나타난 모든 것들은 그림자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그림자들의 몸은 그리스도시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의 말은, 율법에 나타난 모든 것들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인해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다고 증거한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율법에 나타난 모든 것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그분을 알기 위해서는 율법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시며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깨달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께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자신을 잡아먹도록 드려진 희생양이시라는 사실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번에는 음식제사를 통해서 주님 자신을 음식제사의 제물로 드리신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음식제사를 통하여 우리는 주님에 대하여 중요한 사실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주님께서는 “고운 가루“같은 분이시라는 사실입니다. 밀가루에는 거끌거끌한 돌이나 불순물이 조금도 섞이지 않았습니다. 반죽을 해도 빚는 대로 뭉치지 않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성품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뭐 하나 섞인 것 없이 사랑 단 한 가지로 은혜가 넘치는 분이신 것입니다.
우리도 그분처럼 고운 가루와도 같이 점과 흠이 없는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고운 가루처럼 깨끗하고 순수한 믿음에 인간의 생각을 넣어 종교화 시켰던 것입니다.
두 번째로, 고운 가루 같으신 분이 불로 태워졌다는 것입니다. “불”은 시험, 고난, 연단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셋째 날에 살아나시리라 하신 대로 주님을 믿은 우리들도 모든 불 시험을 이겨내고 주님처럼 승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이 받는 불 같은 시련에 대해 증거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시키는 불 같은 시련에 관하여 너희에게 어떤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이상히 여기지 말고 도리어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는 것이니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이 나타나실 때 너희도 큰 기쁨으로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벧전 4:12-13)
세 번째로, 음식제사에 들어가는 유향입니다. 주님의 향기는 순수하고 거룩한 향기입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받은 자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그리스도의 향기요 믿지 않는 자에게는 사망의 향기가 난다고 했습니다(고후 2:15-16).
네 번째로는, 음식제물에는 누룩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는 바리새인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잘못된 교훈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누룩”은 죄를 상징합니다. 누룩이 없는 주님 안에는 진리만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실로, 하나님은 참되시나 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이라.”(롬 3:4)고 증거했습니다.
다섯 번째는 “꿀”입니다. 누룩이나 꿀은 불사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꿀은 자연적인 당입니다. 사람의 입에 달콤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영적인 꿀, 하나님의 은혜는 육신적인 달콤함 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주님이 제자들과 함깨 다니실 때 농담을 하고 잡담을 하며 껄껄 웃으신 적이 없습니다. 단 한 번 기뻐하신 것은 칠십 인 제자들이 전도하고 돌아왔을 때 성령 안에서 기뻐하신 일 뿐입니다. 주님이 우셨다는 말씀은 있어도 웃으셨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연인은 하나님의 영적인 일을 알지 못한다”(고전 2:14)고 했습니다. 성경 안에는 영적인 꿀이 있는데 세상적인 재미는 없는 것입니다. 다윗은 주의 말씀이 꿀과 벌집 보다 더 달다고 했습니다. 자연 상태의 꿀을 육신적으로 먹는 것 보다 말씀을 먹는 것이 영적으로 더 달다는 뜻입니다.
여섯 번째는 “기름”입니다. 음식제물에 기름을 섞으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기름을 부으라고 했습니다. 기름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오실 때 성령으로 잉태되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약의 동정녀 마리아의 잉태는 고운 가루처럼 깨끗한 처녀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단강에서 올라오실 때에 주님은 성령으로 충만하셨습니다.
일곱 번째는 “화덕”과 “철판”입니다. 화덕은 속이 뜨겁고, 철판은 겉이 뜨겁습니다. 주님이 받으신 고난은 “화덕 같은 고난”과 “철판 같은 고난” 두 가지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과 후에 주님의 속이 얼마나 타셨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총독의 병사들이 예수를 관청으로 끌고 가서 주에게로 온 군대를 모으고 그에게서 옷을 벗기고 주홍색 겉옷을 입히더라. 또 가시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그의 오른손에는 갈대를 쥐어주며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침을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조롱한 후에 그들이 그에게서 겉옷을 벗기고 다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끌고 가더라.”(마 27:27-31)
철판에 고기를 구우면 고기가 쪼그라들고 휘어집니다. 그와 같은 고난을 받으셨을 때 주님이 얼마나 괴로우셨겠습니까? 화덕이 내적 고난이라면, 철판은 주님의 외적 고난을 말씀합니다. 주님의 몸이 찢기고 오그라드는 것입니다. 주님이 고난 당하신 장면을 본 마태는 이렇게 증거했습니다:
“제 육시에서 제 구시 까지 어두움이 온 땅을 덮었더니 제 구시 경에 예수께서 큰 음성으로 소리질러 말씀하시기를 엘리 엘리 라마 사박타니 하시니 이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말이라. 거기 서있던 자들 가운데 몇 사람이 그 말을 듣고 말하기를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고 하더라. 그러자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즉시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식초에 젹셔 갈대에 꿰어 주께 마시라고 주더라. 그러자 나머지 사람들이 말하기를 가만두어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고 하더라. 예수께서 다시 큰 음성으로 소리지르신 후 숨을 거두시더라.”(마 27:45-50)
마지막으로 “소금”입니다. 소금은 썩는 것을 방지하는 것입니다. 소금은 누룩의 작용을 막는 것입니다. 우리를 깨어 부수는 진리의 강도는 소금만큼 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소금 같아서 속이 더러운 사람들이 들으면 미꾸라지처럼 토해내게 됩니다. 반대로 소금은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에게는 조미료와 같습니다. 소금은 썩지 않게도 하며 맛을 내기도 하는 두 가지 기능이 있는 것입니다.
구약에 나타나신 그리스도 예수를 공부함으로써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깊이 깨닫고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아멘!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