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평안하셨습니까? 읽고 듣고 그 가운데 기록된 말씀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다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공부합니다. 계속해서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를 읽음으로 2천 년 동안 있었던 교회의 역사들과 또 지금 현재 교회의 유형들이 어떤 교회의 유형에 속하는지 알고 주님의 칭찬과 책망을 깨닫고 이것을 받아들인다면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축복이 될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네 번째 사데 교회에 관해서 배웠는데 이 교회는 서기 1000년에서 1500년에 있었던 교회라고 했었죠? 사데는 붉은자들이란 뜻이고 순교자들의 피로 점철된 피의 발자취, 500년동안 피로 물든 역사라는 것을 알수있고 그때 로마교회에서 비무장한 그리스도인들을 엄청나게 살해한 위그노 대학살과 성바돌로매의 날 대학살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위클리프 같은 선교사는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순교 당했고 또 그후에 무덤에서 그의 유골이 꺼내어져 다시 화형을 당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이름을 통해서 지금도 전 세계에 성경을 만들어 줌으로 복음이 없는 미개한 나라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종들의 피는 바로 피 속에 생명의 씨가 있기 때문에 죽이면 죽일수록 하나님의 자녀들이 더 늘어나는 것을 우리가 역사적으로 확인하고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데 교회를 통해서 오늘날 현재 교회들이 어떤 교회인가? 산 송장이 되어가는 교회가 아닌가? 몇개의 세포만이 간신히 숨을 쉬는 교회가 아닌가? 단 몇사람만이 복음을 전하는 이러한 정황을 우리가 잘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다 교회에 속한 지체들이라면 하나님의 교회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라면 누구나 다 머리되신 주님의 명령에 따라 자동적으로 움직이므로 주님의 몸이 건강하게 되는 이런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건강한 교회는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바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바로 죽어가는 이 어둠의 세상에서 생명을 주는 구원선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건강한 교회인 것입니다. 말씀만 많이 알아도 안되고 기도만 많이 해도 안되고 이제는 나가서 복음을 전해야, 복음을 증거해야만 건강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나가서 조깅을 많이 하는 사람이 건강한 것처럼 나가서 뛰면서 달리면서 복음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내가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도다. 이 의의 면류관은 자기뿐만 아니라 주의 오심을 간절히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니라 하였습니다.
누가 주님의 오심을 기다립니까? 그리스도의 날 휴거의 날을 누가 기다립니까? 그리스도를 증거했던 사람들 정말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하여 이 세상의 것들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사람만이 그리스도의 오심을 바라는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no cross, no crown 입니다. 십자가가 없이는 왕관, 면류관이 없습니다. 지금 이땅에 사는 동안은 십자가를 지는 때요 바로 주님이 오시게 될 때 그때 면류관을 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대를 잘 분별하고 우리의 위치를 잘 파악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사데교회 3장 1절까지 했는데 이제 2,3절을 읽겠습니다. [깨어 있으라. 그리고 남아 있으나 죽어 가는 것들에게 힘을 돋우어 주라. 나는 네 행위가 하나님 앞에 온전함을 발견치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또 어떻게 들었는지 기억하고 굳게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네가 깨어 있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같이 네게 임하리니 어느 때에 너에게 올 것인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우리 주님의 말씀입니다.
불꽃같은 눈으로 주석같은 발로 밟으면 불타버리는 심판주로 오시는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절대로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서는 안됩니다. 회개하라. 깨어있지 않으면 도둑같이 올 것이다. 참 언제오실지 모른단 말이죠? 사도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의 날에 기뻐하려 함이라. 모든 삶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날(휴거의 날)에 갖다 놨습니다. 과연 내가 그리스도의 날에 어떤 형태로 어떤 모습으로 주님을 만날 것인가? 어떤 연세가 많은 미국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혜롭게 사는 길은 내가 살고자 하는 나이로 미리 갖다놓고 내 삶을 거꾸로 돌이켜 봐라. 그러면 내가 이렇게 살아야만 됐는데 라고 답이 나올텐데 그대로 살면 된다. 마찬가집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데리로 오시는 그날에 갖다놓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만 주님을 부끄럽게 만나지 않을까? 이것을 지금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요한계시록 16장 15절에 연결이 되는데 거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도둑같이 오리니 깨어 있어 자기 옷을 지켜서 벗은채로 다니지 아니하고 사람들에게 자기 수치를 보이지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지 않고 완악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에게 볼기짝을 내놓고 수년동안을 길을 뛰어다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영적으로 벌거벗은 이스라엘의 상태를 보여주는 것인데 깨닫는 자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지금 깨어 있어 자기 옷을 벗은채로 다니지 아니하고, 우리는 그리스도로 옷을 입어야 되죠? 의로 옷을 입어야 되죠? 그런데 아직까지도 성화되지 않은 사람들은 벗은채로 다니는건데 자기의 수치를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즘에 밖에 나가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면 내가 예수 믿는 것들 때문에 믿지 않겠다. 심지어는 주의 종들 때문에 믿지 않겠다 이런 말들을 들을 때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여러분 지금 눈이 띄어서 안약을 사서 발라 우리의 모습이, 내가 벗은채로 있는가? 깨끗한 옷을 입고 있는가? 봐야 할것입니다.
또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 마태복음 24장 42절로 44절에서 또 미리 말씀 하셨죠?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떤 시간에 너희 주께서 오실런지 너희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 그러나 이것을 알라. 만일 그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간에 올 줄 알았더라면 그가 깨어 있어 자기 집을 뚫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였으리라.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너희가 생각하지 않은 시간에 인자가 올것이기 때문이라.]
사도 베드로는 그랬죠? 마지막 때 조롱하는 자들이 있을거다. 주의 오신다는 약속이 어디있느냐? 이 천지간이 모든 만물이 그때부터 똑같이 있지 않느냐? 조롱하는 자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바로 그렇습니다. 요한계시록만 강해해도 아 이상하다 그럽니다. 이 요한계시록이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이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들이 복되다고 주님이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떤 위대한 사람이 있을지라도 요한계시록을 부인하는 자가 있다면 그 영은 거룩한게 아니라 잘못된 영으로 말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여기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우리가 잘 기억하고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을 통해서 성령께서 성령으로 거듭나서 깨어 있는 성도들에게는 전혀 두려워 할 것이 없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데살로니가전서 5장2절에 성령께서 사도바울에게 분명하게 위로를 주고 있습니다.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오리라는 것을 너희 자신이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라.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라고 말할때 아이 밴 여인에게 진통이 오듯 갑작스런 멸망이 그들에게 임하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니 그 날이 너희를 도둑같이 덮치지 못하리라.]
형제들이 누굽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모든 죄를 용서받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천국에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주안에 있는 사람들이 형제들입니다. 아무리 친형제와 친척이라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지 않으면 형제라고 할수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 말에도 이웃 사촌이란 말이 있지요? 육친 보다도 가까운게 이웃이다. 진정한 이웃이란 바로 성령으로 거듭난 형제 자매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물질을 쓰더라도 처음에는 믿는 형제 자매들에게 먼저 쓰고 그 다음에 믿지 않는 자들에게 써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형제가 되게 하는 것이 이것이 귀한 일이요 바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 속에 든 것인 줄 우리가 압니다.
자 우리는 어둠가운데 있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절대로 그날이 갑자기 임하지 않고 성령께서 말씀을 통하여 분명히 가르쳐주시기 때문에 어둠에 있지 않고 빛가운데 있다. 그날이 도둑같이 덮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 날과 그 시는 확실히 알지 못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깨어 있게 할 것이고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 듣는자는 일어나리라. 요한복음 10장에 있는 이 말씀은 바로 주님이 공중에 임하셔서 자녀들 양떼들을 부르시는 음성을 들을 때 무덤에서 죽은자가 부활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요 살아있는 자는 그 음성을 듣고 죽을 몸이 죽지 아니하는 몸으로 썪을 몸이 썪지 아니하는 몸으로 변화되는 그러한 놀라운 역사를 앞으로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계시록 3장 4절을 읽겠습니다. [사데에 있으면서 자기들의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몇 이름들이 네게 있어 그들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이는 그들이 합당한 자들이기 때문이라.] 자기들의 옷을 더럽히지 않은 몇 이름들. 지난번에 이야기 한것처럼 위클리프라던가 존 후스라던가 사바나 롤라 같은 위대한 전도자들이 있었습니다. 이 소수의 사람들이 그 당시에 어둠에 빛을 비추고 있었고 지금까지도 그 빛이 이어져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게 된 것입니다. 아직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분이 있다면 이 시간에 영접하시고 모든 죄를 용서 받으시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거듭나는 축복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여기에 흰옷이 나옵니다. 흰옷을 입고 다닌다. 이 흰옷은 요한계시록 3장 18절과 16장 15절에 보면 성도들의 의로운 행실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9장에 보면은 성도들의 수고한 행위라고 그랬고 성도들 자신의 의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는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는 것이지만 믿은 후에 주를 위한 의로운 행실과 수고한 행위. 이것은 흰옷을 입혀주는 것이다. 이른바 건설구원(建設救援)이라할 수 있겠죠? 예수 그리스도의 기초 위에 집을 짓는(고전3장), 바로 상급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구원받은 후에도 선한 행위로 이 옷을 입고 바로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설 것입니다.
심판석이 두번 있습니다. 믿지 않은 자들은 천년왕국이 끝나고 지옥이 불못에 떨어질 때에 그때에 하나님의 백보좌 심판석에서 심판을 받고 영원한 불못으로 떨어지지만 그러나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받은 사람은 그의 몸은 심판받지 않고 한 일들만이 심판받는다고 고린도후서 5장 1절로 10절에 나와 있습니다. 자기가 행한데로 심판 받는다.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에도 보면 몸으로 행한데로 상을 주시러 주님이 곧 오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이 시대에 교회사에 나타난 이름 가운데 소그룹들이 있었습니다. 재침례교도, 소위 아나밥티스트죠(AnaBaptist)? 왈덴시안, 알베겐시안, 롤라이스, 폴리시안 같은 소규모의 그룹, 모라비안 교도 같은 사람들입니다. 요한 웨슬레 목사님도 이 모라비안 교도들을 통해서 그가 은혜를 받고 거듭나는 축복을 누린 것을 간증을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재침례 교도란것은 그 당시에 로마 교회가 어린 아이들이 태어나면 물을 뿌려 유아세례를 주어서 그 교회에 입교를 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렇게해서 구원 받는게 아니죠? 구원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영접하고 구세주로 받아 들일 때 구원을 받는거죠? 물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구원 받는게 아니죠?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이죠? 물에 들어가는 것은 구원을 확증하는 것이요 하나님과 사람 앞에 선포하는것입니다. 이 재침례 교도는 침례를 받았다고 해서 엄청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놀리려고 또 침례를 받는다고 해서 아나밥티스트라는 놀리는 이름으로 재침례 교도라고 불렀습니다.
다시 요한계시록 3장 5절에 갑니다. [이기는 자는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의 책에서 지워 버리지 아니할 것이며, 또 그의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할 것이니라.] 이기는 자가 나옵니다. 은혜의 시대에 이기는 자는 요한일서 5장 4절에 있는 것처럼 믿음이라 그랬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자는 누구든지 세상을 이기기 때문이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라.]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것도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사랑에서 끊을수 없다고 사도바울이 로마서 8장 30절 이후에 분명히 증거했습니다. 사망이나 천사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환란이나 핍박이나 어떤것도 우리를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절대로 끊을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3장 6절에 보게되면 [귀 있는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이 기간은 바로 피의 박해 기간입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위대한 설교자들이 있었습니다. 어둠이 강하면 강할수록 빛이 더 환하게 비춥니다. 밀리치, 피터 왈도, 콜란, 틴데일, 위클리프, 후스, 사바나 롤라같은 사람들. 이들은 독일이나 프랑스, 스위스, 스페인에서 설교했습니다. 이들이 얼마나 담대하게 설교했는지 그 당시 로마제국을 아주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1200년경에는 두 교황이 서로 적그리스도라고 우기기까지 하는 이러한 우서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렇게 그들이 정확한 교리를 가지고 찌를 때 잘못된 교리를 가진 사람들이 찔려서 서로를 적그리스도라 부르는 이런 해프닝이 역사적으로 있었습니다. 이 기간에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로마교회 정체를 폭로하는 노방 설교자를 많이 볼수있고 그러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죽임을 당한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아무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분명히 기억하여야 할것이고 왜 그런가하면은 환란때가 되면 다시 큰 바벨론의 형태로 다시 나타나기 때문에 우린 절대로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계속해서 필라델피아 교회에 관해서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여기 빌라델피아 교회는 1500 년에서 1900 년 사이에 있었던 교회로 이 당시의 교회 기간을 대표하는 이름입니다. 필라델피아란 이름은 “형제의 사랑”이란 뜻입니다. 그 당시에 진정한 형제의 사랑이란, 다시말해서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마다 아무도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입니까? 진정한 형제 사랑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영원한 생명의 복음을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진정한 사랑이요 그다음에 영적으로 살린 다음에 육신적으로 필요한 것을 공급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요이것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안에 거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사랑은 영어로 love 가 아니고 깅제임스 성경에는 채리티(charity)라 말씀했습니다. 이 사랑은 신적인사랑(divine love)이죠?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은 다르죠. 에로스 ,필리아 그 다음에 스톨게 사랑,친구간의, 남녀간의 사랑, 가족간의 사랑, 이 세가지는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결국은 자기를 사랑하는사랑이죠. 상대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거죠.
우리 주님의 사랑은 아가페 사랑 자신을 죽여 가면서 사랑한 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이요 이것이 결국 죽은자에게 생명을 주는 사랑입니다.
자 요한계시록 3 장 7 절부터 빌라델피아 교회에 주신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이 교회야말로 책망을 받지 않은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가 오늘날 정말 있어야 할 모델 교회죠? 이 말씀을 잘 상고하겠습니다.
[필라델피아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거룩하신 분, 진실하신 분,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 열면 아무도 닫을 수 없고 닫으면 아무도 열 수 없는 분께서 이 일들을 말씀하시느니라.] 참된 그리스도의 몸이죠? 여기서 유일하게 회개하라란 말을 듣지 않은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하나님이 가라는 길로 갔던교회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 가르치라.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 를 주라. 가라는 말씀. 모든 민족에게 가라는 말씀에 순종했던 교회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상명령 아니겠습니까? 지상명령이 무엇입니까? 가장 높은 명령입니다. 가라면 가야죠. 오라면 와야죠. 성경 말씀은 가라, 오라, 죄인들아 오라, 구원 받으라. 그리고 가라, 다른 사람을 구원하라. 아주 간단한 메세지입니다. 너무나 간단한게 성경이죠? 복잡하게 설명할게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교회 시대를 축복하셨습니다.
산업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등 중요한 진보적인 발전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특별히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는, 제임스왕때에 영어로 최초로 번역한, 독일어로 번역된 종교개혁판 성경을 영어로 번역한 킹제임스 성경을 땅끝까지 전파할 때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에 선교사들이 온 세상으로 파송됐죠? 케리, 허드슨, 거포드, 리빙스턴이 인도, 버마, 중국, 아프리카, 세계 5 대양 6 대주로 선교사들이 파송되어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는 이러한 일들이 있었고 참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이 교회는 열린문을 가지고 있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3 장 8 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너의 행위들을 아노라. 보라,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니 아무도그것을 닫을 수 없노라. 이는 네가적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나의 말을 지켰고 내 이름을 부인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자 열린문을 가진 교회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닫힌 문을 가진 교회, 마지막 일곱째 교회죠? 이 필라데피아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는 교회가 아닙니다. 말씀을 지키는 교회입니다. 말씀을 아무리 암송해도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죠. 말씀 한마디 알고 순종하는 사람이 말씀 열 마디 알면서 순종 안하는 사람보다 낫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습니다. 아무리 예배를 멋있게 드려도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 교회는 1611 년 영국에서 제임스왕때 최초로 영어로 된 종교개혁판 성경, 소위 귄위 역본 Authorized Version 을 펴내는 일을 감당했습니다. 그런데 1881 년, 1901 년에 각각 리바이즈 버전(Revised Version)과 아메리칸 스텐다드 버젼(American Standard Version)의 성경이 나와서 결국은 여러가지 성경으로
자꾸 번역되면서 라오디게아 교회로 가는 이러한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카톨릭 로마교회가 이 성경을 번역함으로 자신의 교리에 맞춤으로 말미암아 건전한 교리들이 파괴하는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옛날엔 폭력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죽였지만 이제는 세상이 변했기 때문에 성경을 변개하는 것을 통해서 참으로 건전한 교리가 조금씩 조금씩 변해 가게 하는 일을 한 것을 우리가 절대로 잊어서는 안됩니다.
특별히 이 당시에는 자칭 유대인들이 나타났습니다. 3 장 9 절에 보면 [보라,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지만 아니요 오히려 거짓말하는 자들을 내가 사탄의 회당에 속한 자들로 만들리니 보라 내가 그들을 오게 하여 너의 발 앞에 경배하게 하여서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을 알게 하리라.]
누가 대표적인 자칭 유대인입니까? 로마 카톨릭이죠. 로마교회는 사도 베드로를 초대 교황이라 주장합니다. 사도신경은 바로 로마교회로부터 나온것입니다. 열두 사도가 아닌 교황이 자칭 사도가 된 것입니다. 이 사도신경을 외우는 교회는 지상에 한국교회밖에 없습니다. 1500 년에서 1900 년에 로마교회는 영적으로 고갈되어서 거의 벼랑 아래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기간에 바티칸은 지하로 들어가서 1930 년 이후에 다시 등장하게 됐습니다. 이기간에 프르테스탄트의 성경적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급속하게 완전하게 퍼져 나가서 1900 년 경에는잠깐동안 교황들이 끝이 아닌가 여겨질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하는 개정판을 만들어서 웨스트 코트와 홀트에 로마교회의 원문으로 1611 년판의 권위역본을 대치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1881 년 이후에 나온 모든 성경은 기본적으로 로마교회의 영향을 받은 성경이라 할 수 있고 이 로마교회는 이 성경을 통하여 다시 조정석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초림 때에 로마가 권력을 잡은것처럼 또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도 로마가 권력을 잡을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될것입니다. 우리 주님의초림 때도 로마가 통치했습니다. 앞으로 환란 때도 로마가 다시 통치합니다. 새로운 로마가 등장합니다.
이것이 바로 요한계시록의 메세지입니다.
여러분 이 시간에 우리는 빌라델피아 교회에 관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제 이 교회에 관해서 10 절,11 절 보게 되면 결론적으로 나옵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을 지켰기 때문에 나도 시험의 때에 너를 지키리니 이는 온 세상에 임하여 땅위에 사는 사람들을 시험하는 때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붙들어서 아무도 너의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것은 바로 면류관의 보상이 있는 교회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면류관을 받습니다. 면류관, 왕관은 아무나 쓰는게 아닙니다. 왕권입니다. 그러나 이 면류관과 보상이 상실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너희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끝까지 감당해야 합니다. 복음 전하는 것은 끝까지 감당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내가 달려갈 길을 다 달리고 믿음을 지켰으니 의의 면류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말씀했죠.
자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을 시험하는 때가 언젭니까? 바로 휴거가 끝난 이후에 7 년 대 환란이에요.
7 년 대 환란때는 온 땅에 그리스도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거듭난 성도는 아무도 없습니다. 물론 교회 다니면서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있겠죠? 그러나 진정한 교회는 하나입니다. 큰 교회 작은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교회는 지구상에 하나밖에 없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의 영적인 모임이 교회죠. 건물이 교회가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진정한 성도들이 다 올라가고 나면 이 땅은 이제 마귀의 판이 됩니다. 적그리스도, 거짓선지자가 판을 치는 그야말로 무법시대가 됩니다. 환란 때 이 미국도 엄청나게 무법지대가 될것입니다. 지금도 얼마나 험한 때에 살고 있습니까?
그러므로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환란 전에 휴거 된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됩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을 어찌 이땅에 두겠습니까? 다 그 사람들은 올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소망 가운데 이제 잠깐 동안 우리가 고생하고 나면 결국 주님이 오실때 우리를 데려 가시고 또 나중에 환란 끝에 다시 주님과 함께 이 땅에 와서 다스리는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백투예루살렘을 쓴 저자가 말하기를 지금 감옥에 가서 수십년을 살지라도 주님이 오시게 되면 천년동안을 쉬게 될텐데 무슨 걱정인가? 이 소망 가운데 그들이 죽음을 무릎쓰고, 죽으면 빨리 올라간다는 소망 속에 살고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이것이 참으로 진정한 살아있는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이 시간에 우리가 머리숙여 기도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정말 우리의 모습을 볼 때 옛날 필라델피아 교회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주님 우리가 이말씀을 가지고 다시 한번 깨닫고 깨어서 기도할 때에 이 필라델피아 같은 교회가 될 수 있도록 우리 각자한사람 한사람과 이 시대의 모든 교회에 주님 은혜를 내려 주시고 깨닫는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기를원합니다. 살아 움직이는 세포들을 통하여 교회들이 변화되는 역사가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수많은 어둠에 있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빛이 전해지는 놀라운 역사가 주님 오시기 전에 많이 이루어져서 많은 혼들을 추수하는 교회들이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