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주일 동안도 주 안에서 평안하셨습니까? 계속해서 오늘도 읽고 듣고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는 주님께서 직접 사도요한에게 하신 예언의 말씀을 우리가 공부함으로써 앞에 있는 소망을 붙잡고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고통과 어려움을 이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교회들의 유형에 관해서 역사적인 교회에 관해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가 이런 것들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시대의 교회는 어떤 것인가? 바로 주님이 오시기 직전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어떤 교훈을 주시나는지 우리가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여섯 번째 교회 필라델피아 교회에 관하여 말씀을 들었습니다. 필라델피아 교회는 하나도 책망을 받지 않는 교회, 열린 문이 있고 많은 전도자들이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하여 세상에까지도 엄청난 축복을 갖다준 그런 시대, 역사적으로 보면 1500년에서 1900년 사이에 있었던 교회입니다. 오늘날도 이 교회를 본받아서 복음을 전하는 교회도 있는줄 압니다.
자 필라델피아 교회에 관한 말씀중 요한계시록3장 12절 말씀을 읽고 조금 더 공부한 후에 마지막 라오디게아 교회로 넘어가겠습니다. [이기는자는내가내하나님의성전에기둥으로삼으리니그가결코다시나가지아니하리라. 또내가그사람위에내하나님의이름과내하나님의도성즉내하나님으로부터하늘에서내려오는새예루살렘의이름을기록하고또나의새이름도그사람위에기록하리라.] 참 얼마나 축복된 말씀입니까? 끝까지 이기는 자는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으로 삼는다. 또 그사람 위에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도성의 이름 새예루살렘의 이름을 기록한다. 참 이 엄청난 축복이죠. 예. 왜그렇습니까? 은혜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여 구원 받아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은 영원한 세계를 새 예루살렘, 우리 주님이 요한복음 14장에 말씀하신 것처럼 내가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 내 아버지의 집에는 많은 저택들이 있다고 그랬습니다. 이것이 바로 새 예루살렘이죠. 옛날 아브라함이 새 기초가 있는 한 도성을 바라보았다고 그랬습니다. 육신적으로 팔레스타인 땅을 약속으로 받았지만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그땅에 기거하면서도 그는 앞으로 올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았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고 그뿐만 아니라 많은 믿음의 자손들이 그러한 소망속에 살았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조만간 주님이 오실 때에 환란끝에 새 예루살렘을 볼텐데 우리에게는 그 일이 목전에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아브라함처럼 또 많은 믿음의 조상들처럼 또 이 필라델피아 교회 성도들처럼 우리는 그 소망 속에 살지 않으면 미혹 당합니다. 세상의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때문에 마귀에게 속아서 쓸데없는데 낙심하게 되고 또 소망 없는 자처럼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깨어서 기도함으로 이 소망을 잃어버려서는 안됩니다. 이때의 그리스도인들 프로테스탄트, 왜 프로테스탄트라고 했냐하면 로마교회에 대항한 성도들을 얘기할때 프로테스탄트라 했고 로마교회에게 대항해서 일어난 성경적인 기독교 신앙이 절정에 달했던 시대입니다. 옛날엔 성경없이 로마교회의 법에 의해서 교황의 말이 성경보다 위에 있었던 그런 시대죠? 그러나 참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믿음으로 성경적인 기독교 신앙이 절정에 이른 시대였습니다. 그 후에 1900년 이후부터 점점점 교회들이 배교에 들어가서 실질적으로 로마 교회에 흡수되는 그러한 라오디게아 교회로 전환되는 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한편 이 시기에 필라델피아 교회는 열린 문을 가진 교회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문을 열어 주셨다. 바로 전도의 문, 복음의 문 그리고 휴거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열면 닫을자가 없고 닫으면 열자가 없다고 그랬습니다. 이 복음의 문, 참 하나님이 인정한 교회를 통하여 문을 열어 주시고 이 교회를 통하여 많은 고기를 낚을수 있죠? 베드로에게 주님이 내가 너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참 한 영혼이 천하보댜 귀한데 한 사람을 낚게되면 그를 세상으로부터 마귀로부터 우리 주님께로 인도하게 되는 사람을 낚는 어부죠? 이 사람은 천하를 얻는 것보다 나은 것입니다. 지금은 알수가 없지만 나중에 주님 오시면 알게 될겁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주시는 상급이죠? 자 그당시에는 많은 위대한 구령자들 복음 전도자들 선교사들로 빛났던 시대였습니다.
또 이 교회는 1611년때에 제임스왕때에 오쏘라이즈 버전(Authorized Version)이라고 최초의 종교 개혁 성경, 독일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여 바로 그 성경 말씀을 가지고 권위역본이라고 그래서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이 성경을 온 세계에 전파했습니다. 그러므로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축복도 얻게 되었습니다. 이 당시에 마틴 루터는 독일어 성경을 번역했는데 이것을 마틴 루터의 독일어 성경이라고 하죠? 이 두가지 성경, 마틴 루터의 독일어 성경과 영어로 된 킹제임스 성경이 세계 도처에 퍼져서 약 400년 동안 이 세상에 여러가지 축복도 육신적인 축복도 쏟아졌다고 이것을 지난 번에 배웠습니다. 산업혁명, 농업혁명, 이런것들이 인간의 많은 이기로 그때 많이 발명된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로마교회로부터 나와서 성령으로 거듭났습니다. 마틴 루터를 시작해서 일련의 인물들이 카톨릭과 단절됐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국토를 뿌리 채 진동 시키는 그러한 일이 1500년에서 1600년 사이에 있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죠? 복음을 들고 나간 사람은 어딜 가든지 천지를 진동시킵니다. 옛날 사도바울도 바나바와 함께 복음을 전할때 이들은 바로 세상을 뒤엎는 사람, 소란케 하는 사람이다 그랬는데 이것을 영어로 하면 세상을 “앞 사이드 다운”(upside down) 완전히 뒤집어 엎는 사람이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러므로 왜 그렇습니까?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니까 세상의 왕들은 다 뒤집어지죠? 그래서 그들을, 이 세상을 소란케하는 자들이다, 우린 로마황제 치하에 있는데 이들은 세상을 소란케하는 자들이다. 이렇게 얘기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또 그 당시에 쯔빙글리라던가 존칼빈같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옛날 암흑 시대에는 성경을 가지지도 못하게 했죠. 성경을 가지고 있기만 해도 죽였을때 그들은 교황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고 또 독신을 반대하는 설교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생육하고 번성하는거죠? 또 유명한 요한 웨슬레, 조지 휫필드, 조나단 에드워드같은 설교자들이 출현 했습니다. 요한 웨슬레는 하루에 두 세 시간씩 기도했죠? 그들은 특별히 설교할 때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또 회개하고 예수께 돌아와야 된다. 그러면서 야외에서 설교할 때 어떤 때는 박해자들이 권총을 가지고 그들을 쐈을때 권총이 폭발되 가지고 오히려 쏜 사람이 죽고 다치는 역사도 있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드가 지옥에 관한 설교를 하면 듣는 사람들이 건물의 기둥을 붙잡고 지옥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설교할 때 지옥불이 그들의 눈에 보일때 그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기둥을 붙잡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장면도 있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드가 소리를 지른것도 아닙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천천히 읽어갈때 그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인간의 말, 인간의 설득력있는 말, 선동적인 말, 요즘말로 하면 카리스마있는 말, 이런 말은 인간의 마음을 조금 흔들수는 있어도 영적으로는 전혀 흔들 수가 없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의 말씀만이 사람의 심령을 흔들수 있고 죄인됨을 깨닫고,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는 역사를 이루는 것입니다. 특별히 찰스피니, 스펄젼, 드와이티 무디, R.A 토레이, 이런 사람들을 통하여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요즘에 이런 부흥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길가에서 밖에서 설교할때 사람들이 어찌할꼬 이런 소리를 들어 본적이 오래됐습니다.
참 정말로 이 세대가 어떻게 됐는가? 이 세대는 필라델피아 교회 시대를 지나서 주님이 오시기 직전인 타락한 교회에 깊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깨닫고 돌이키고 회개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새로운 은혜를 주십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는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빛을 주실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빛을 주시리라. 일어나 빛을 발하라. 이사야를 통해서 말씀하신것처럼 오늘날도 죽은자들같은 세상과 교회에 이제는 깨어 일어나서 복음을 빛을 비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그당시에 우리가 잘아는 조지뮬러같은 고아의 아버지. 믿음으로 그가 고아들을 키웠습니다. 아무것도 없을때 사람에게 손 벌리지 않았습니다. 먹을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수백명의 고아들을 놓고 냅킨, 나이프, 포크를 놓고 감사기도를 했습니다.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빵을 운반하던 차가 전복이 되어 그 안에 있던 빵이 전부 밖으로 나와 그것을 더이상 팔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빵을 고아들에게 갖다주어 아이들은 감사기도를 드린후 바로 빵을 먹게 되었습니다. 이런 실화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자 이제 마지막 일곱번째 교회로 넘어갑니다. 이 일곱 번째 교회는 오늘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대에 있는 교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빛이죠? 어둠을 비추는 빛입니다. 우리 심령을 비춥니다. 우리 교회들을 비추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비춥니다. 이 라오디게아 교회는 주님 오시기 직전에 있는 교회로 1900년 이후부터 시작됐습니다. 라오디게아란 뜻은 시민의 권리란 뜻입니다. 하나님의 권리가 아니고 사람들의 권리다. 이것은 휴거전의 마지막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자 우리가 교회들을 다시 되 살펴 본다면 에베소 교회와 서머나 교회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식어졌죠? 버가모와 두아디라 교회에서는 완전히 영적으로 파멸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데 교회와 필라델피아 교회는 다시 열정이 있었고 성령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런데 라오디게아 교회에서 다시 파멸됩니다. 역사는 되풀이 합니다.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우리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우리는 파멸되는 교회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냥 이대로가 좋다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일어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자 그러면 요한계시록 3장 14절부터 한절 한절 읽어 가면서 라오디게아 천사에게 어떤 말씀을 했는가? 다시말해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나 다함께 경청하는 시간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라오디게아인들의교회의천사에게편지하라. 아멘이시요신실하고진실한증인이시며하나님의창조를시작하신분이이일들을말씀하시느니라.] 아까 말씀드린대로 이 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적하는 인간의 시민적 권리로 특징이 지어지죠? 이 시대는 우리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는 없어진 마지막 교회시대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교회에서 어떤 대화를 나눌때 또는 재직회나 당회를 할때 나오는 말중에 어떤 말이 많이 나옵니까? 내 생각에 이렇습니다를 많이 듣습니까? 아니면 하나님 말씀에 이렇습니다를 많이 듣습니까? 오히려 하나님 말씀에 이렇습니다를 말하는 사람은 광신적으로 믿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으로 여기는 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말씀보다도 인간의 지혜와 생각으로 교회를 이끌다 보니까 교회의 송사들을 세상법정으로 가져 가는 우스꽝스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이 가슴을 칠 일들입니다. 자 여기 보면 하나님의 창조를 시작하신 분이시다. The beginning of the creation of God 그 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첫 번째가 아니죠? 여호와 증인들은 이렇게 주장하죠? 그게 아니죠. 그분은 바로 창조의 주체이십니다. 성령께서는 사도바울을 통하여 골로새서 1장15,16절에 이렇게 증거를 했습니다. [그는보이지않는하나님의형상이시며모든피조물의첫태생이시니이는만물이그에의하여창조되되하늘에있는것들과땅에있는것들과보이는것들과보이지않는것들과보좌들이나주권들이나정사들이나권세들이나만물이그에의하여또그를위하여창조되었기때문이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그랬죠?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습을 따라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우리 우리 우리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세 가지 신격이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말씀과 성령이십니다. 요한일서 5장 7절에 보면 [하늘에서증거하시는이가세분이시니아버지와말씀과성령이시요이세분은하나님이심이라.]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이 원본에는 없다고 그러는데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는 이 삼위일체가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사탄이 그 말씀을 뺏을지라도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세 분이 하나인 것을 여러군데서 말씀하고 있는것을 우리가 볼수가 있습니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주십니다. 창조주가 바로 이 육신의 모습을 입고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창조주가 어떻게 피조물처럼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들에게 당분간 33년간 개나 고양이가 되라면 누가 되겠습니까? 아무도 없을겁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그도 독생자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 아버지께 온전히 순종함으로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이게 온유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자가 온유한 자죠?
자 계속해서 3장 15절 말씀을 봅니다. [내가네행위를아노니네가차지도아니하고덥지도아니하도다. 나는네가차든지덥든지하기를원하노라.] 이것은 마지막 때 교회들이 나는 정통이다, 우리 신학은 정통이다. 이렇게 주장하지만 결국 옛날 암흑시대 로마교회 편으로 서서히 가는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배교입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후서 2장 3절에 보면 이렇게 성령께서는 사도바울을 통하여 경고했습니다. [아무도어떤모양으로든지너희를미혹하지못하게하라. 이는먼저배교하는일이이르지않고또그죄의사람곧멸망의아들이나타나지않고서는그날이오지아니함이라.]
이 그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오셔서 하나님의 거듭난 성도들, 즉 교회를 이끌어가는, 옮겨가는 이러한 날을 얘기합니다. 그날입니다. 그런데 그날이 오기 전에는 반드시 두가지 사건이 일어나는데 첫째는 배교가 일어난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는 것입니다. 최초로 하나님 말씀을 떠나게 한게 로마교회인데 나중에는 지하에 들어가서 성경을 변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잘알아야 됩니다. 조만간 죄의 사람 적그리스도가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그때가 되기 직전에 휴거가 일어날 것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이런 때에 얼마나 귀중한 때입니까? 언제 주님이 오실지 모르는 때에 편안하다 나는 안전하다 이러고 있을 겁니까? 네가 차든지 덥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어떤 사람들은 그래요, 하나님을 열심히 믿으면 저 사람은 광신적인 사람이다. 극단적이다. 사실 하나님이 극단주의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위에 것이냐 아래 것이냐? 다시말해서 천국이냐 지옥이냐? 흑이냐 백이냐? 구원을 받았느냐 못받았느냐? 이렇게 둘중의 하나죠? 절대로 중간이 없습니다. 연옥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극단주의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십니다. 그러나 죄인은 사랑하시죠? 그러기 때문에 죄사함을 받으라 그러신거죠. 그래서 그 죄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게 죄라고 그랬습니다. 믿지않는 사람은 방법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것은 회개할 수 없는 죄입니다. 우리가 뭐 간음하고 거짓말하고 도둑질한 것들은 돌이키면 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것은 신성모독이요 이것이야말로 죄사함을 얻을수 없는 죄입니다.
자 그래서 어떻게 말씀합니까? 3장 16절 보니까. [네가그처럼미지근하여차지도아니하고덥지도아니하기때문에내가너를내입에서토해내겠노라.] 그렇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미지근한 물을 먹으면 얼마나 속이 답답하고 미식거립니까? 그러나 시원한 육각수를 먹으면 얼마나 물맛이 좋고 시원합니까? 17절 보니까 [네가말하기를나는부자며부요하고아무것도부족한것이없다고하지만너는비참하고가련하며가난하고눈멀고헐벗은것을알지못하도다.] 다시 말해서 이 라오디게아 교회는 하나님을 지치게 한다고 그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가 이 세상에 오셔 가지고 세상 죄를 다 도말하기 위해서 요한이 얘기한 것처럼 세상 죄를 지고가실뿐만 아니라 세상 죄를 제거하는 take away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다. 이 어린양을 보라 그랬는데 그 분이 세상 죄를 다 짊어지고 죽으시고 그리고 저 지옥까지 내려 가셔서 우리가 갈 지옥까지 내려 가셔서 거기다 다 버리고 돌아오지 않는 강에 다 버리고 오셨습니다. 마치 동이 서에서 먼것처럼 우리 죄과를 멀리 했다. 시편 103편에 나옵니다. 그런데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을 해야 되지 않겠느냐? 내가 모든 사람을 위해서 죽었는데 무엇을 하고 있느냐? 예배만 드리고 행사만 하고 교제만 하지만 정말 얼마나 많이 복음을 전하고 있느냐? 교회들이 문을 열고 나가서 얼마나 많은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이 사람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느냐?
우리 주님께서는 사람이 되셔서 이 모든 세상 죄를 자기 몸에 전가 받으셔서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보내셔서 교회를 세우셨는데 이 교회라는 것은 주님께서 하신 일을 빨리 빨리 전해서 모든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라고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교회는 구원선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다른 것들을 하면서 나가서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바로 주님의 마음을 지치게 하는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엄청난 물질적인 복으로 상징됩니다. 교회가 얼마나 맣은 차량을 가지고 있는가? 자산들을 보유하고 있는가? 또 은행 어카운트에 얼마나 많은 돈이 쌓여 있는가? 일주일에 얼마나 많은 헌금이 들어오고 선교헌금은 얼마나 책정되어 있는가? 이런 것들을 얘기하는 이런 시대입니다. 물론 이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 주신 것으로 그 주신 것 이상으로 많은 영혼들을 주님께 인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그만 교회들은 그 준 것만큼 하면 되고 큰 교회들은 또 주신 만큼 큰 일들을 해야 합니다. 큰 원양어선은 많은 고기를 잡아야 하고 조그만 똑딱선은 조금 잡습니다. 그러나 주신 만큼 주님께서 허락하신 만큼 최선을 다할때 주님께서는 기뻐하실줄 압니다. 여기 나는 부요하고 아무것도 부족한것이 없다라고 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네가 비참하고 가련하며 가난하고 눈멀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물질적으로는 부요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부족하다고 말씀하시는것을 여기서 볼수가 있습니다.
3장 18절 보게되면 [내가너에게권고하노니내게서불로단련된금을사서부요하게되고흰옷을사서입음으로너의벌거벗은수치를드러내지않게하며또안약을네눈에발라보게하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 이 말씀과 관련해서 사도베드로의 권고를 들어보겠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7절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너희믿음의시련이불로써단련될지라도없어져버리는금보다훨씬더귀하게되어예수그리스도께서나타나실때에칭찬과존귀와영광을받게하려함이니라.] 사도요한도 그랬죠? 믿음이 이 세상을 이긴다고 그랬습니다. 가장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긴 것은 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무엇입니까?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바로 천국이 실상이기 때문에 이 세상의 어떤것도 이 믿음을 무너뜨릴수 없습니다. 지하교회 성도들은 아무것도 가진게 없습니다. 교회 건물도 없습니다. 교회 차량도 없습니다. 그들은 물질도, 명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것이 있다면 그 핍박을 통하여 믿음의 시련을 통하여 불로써 단련될지라도 없어져 버리는 금보다 훨씬 귀한 믿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바로 오늘날 이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에 가장 필요한게 믿음입니다. 아멘. 이 축복의 척도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이 믿음이 얼마만큼 있느냐? 이것이 바로 척도입니다. 그래서 옛날 철학자들 중에서도 세상을 초월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하물며 철학을 초월한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받은 사람들이 이 땅에 살면서 천국에 대한 소망이 확실하지 않다면 이 세상에서 흔들릴수밖에 없고 고난을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물질이 평안을 주고 물질이 그들에게 안위를 주는 이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믿음이 바로 말씀을 통하여서 믿기만 하면 이 산이 들리어져 바다에 던지라 하면 그대로 이루어 진다는 확신, 믿음. 이 믿음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이 시대는 바로 믿음이 결핍된 시대다 이 메세지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보면 흰옷을 입으라. 흰옷을 사서 입음으로 너희 벌거벗은 수치를 드러내지 않게 하라. 영적인 얘기를 하죠? 이 흰옷은 요한계시록 3장 18절, 16장 15절, 19장에 보면 성도들의 의로운 행실 또 주를 위해 수고한 행위, 성도들의 자신의 의를 얘기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를 고백하고 구원 받은 후에 선한 행위로 옷을 입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석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교회가 휴거 때에 들림받아서 예수 그리스도앞에 다 1:1로 설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심판석이요 행위대로 심판을 받습니다. 상급을 받고 책망을 받습니다.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지은 사람은 불로 태워도 타지 않기 때문에 상을 받지만 썪어질 지푸라기나 나무나 그루터기로 지은 사람들은 다 타버린다고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그리스도의 심판석은 상을 주는 곳입니다. 그러나 천년왕국 이후에 나타나는 백보좌 심판석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 이미 지옥에 있는 사람들이 통째로 불못에 떨어지는 영원히 하나님과 이별이 되는 영원한 멸망의 심판인 것입니다. 이 라오디게아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눈을 뜨라고 말씀하십니다.
소경 바디메오는 육신적인 눈이 멀었습니다. 주님께 그 눈을 열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주님이 눈을 열어 주었을 때 그는 주님을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 제자들은 육신적인 눈은 열려 있을지라도 영적인 눈은 닫혀 있어서 주님이 누군지 몰랐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집니다. 영적으로 과연 내가 눈이 떠있는가? 소경 바디메오처럼 내가 주님을 보지 못하는것이 아닌가? 주님께 부르짖음으로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내가 거듭나길 원합니다. 내가 하나님 나라를 보기 원합니다. 우리 주님이 말씀하셨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야 하죠? 우리는 이 부르짖음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불러야 합니다.
3장 19절 20절 보니까 [내가사랑하는자마다책망하고징계하노니그러므로열심을내고회개하라. 보라, 내가문앞에서서두드리노라. 누구든지네음성을듣고그문을열면내가그에게로들어가서그와함께먹으며그도나와함께먹으리라.] 교회 시대 마지막에는 주님께서 문 밖에 계십니다. 여러분 혹시 주님을 밖에 세워놓지 않으셨습니까? 그 분이 문밖에 서 계시기 때문에 누구든지 그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주님께서 들어 가셔서 그와 더불어 먹고 마시고 교제할것이라 그랬습니다. 옛날 아브라함이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주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두 천사와 함께 나타나셨을때 창세기 18장 19절에 보십시요. 그때 아브라함이 그를 영접했고 그를 대접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를 친구처럼 대하셨고 먹고 마셨습니다. 자 오늘 이 시대에는 주님을 밖에 세워둔 시대, 교회에서 예배드릴때는 함께 있는것 같은데 차에 타면서부터는 밖에 세워두는 이러한 때가 되었습니다. 혹시 그렇지 않은지 살펴 보고 회개해야 될것입니다.
3장 21절 22절. [이기는자에게는내가내보좌에나와함께앉을자격을주리니이는내가이겨서내아버지와함께그의보좌에앉은것과같으리라. 귀있는자는성령께서교회들에게말씀하시는것을들을지어다.] 지금 정신을 차리고 주님을 영접하면 이제 곧 주님이 오실때 주님의 보좌에 함께 앉는 자격을 준다. 함께 세상을 심판할 자격을 주신다. 이런 말씀입니다. 얼마나 귀한 말씀이에요.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사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보좌에 함께 앉히셨다고 그랬습니다. 이제는 주님을 만났을 때 칭찬받는 삶을 살아야 할것입니다. 이 본문은 일곱 교회에 대한 메세지의 결론입니다. 역사적으로는 서기 90년때의 사도요한의 때에 소아시아에 있었던 일곱교회를 언급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사도행전부터 교회의 휴거까지 교회시대의 역사를 언급합니다. 역사는 되풀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라오디게아 교회시대에 미지근한 교회시대에 있습니다.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서 빛을 말하는 때가 됐습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실 때 주님앞에 회개하고 다시한번 빛을 말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 이 말씀을 통하여 다시한번 정신을 차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시간에 주님을 문밖에 세워둔 것을 회개합니다. 내 죄때문에 나의 옳지 못한 행실때문에 주님을 안으로 들이지 못한 것을 용서하여 주시고 지금 들어 오셔서 주의 피로 씻어 주시고 함께 먹고 마시며 동행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과 함께 할 때에 기쁨이 있고 믿음으로 살 수가 있사오니 주님 도와주시고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