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그리스도안에서 평안하셨습니까? 오늘도 여러분의 가정과 심령 위에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지난 시간까지 우리가 3장을 끝냈습니다. 바로 교회시대에 관한 말씀들을 보았고 또 마지막 라오디게아 교회의 어려운 시절에 살고있는 우리들의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또 회개하고 일어나서 빛을 발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자 이제부터 4장에서는 위치가 바뀌게 됩니다. 4장부터는 이후에 일어날 일들이 나옵니다. 이것은 바로 휴거가 일어나고 그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 나오고 특별히 하늘의 보좌의 모습을 볼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린 지금까지 교회 역사를 통해서 배교의 원인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게 되었고 지금 라오디게아 교회의 배교의 원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시킨 것이고 그 주인공이 바로 자칭 유대인인 로마 교회인것을 알았습니다. 교회는 요한계시록 3장 22절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4장에서 22장까지 교회라는 말이 두번 다시 언급되지 않습니다. 바로 환란전에 교회는 들림받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미를 나타냅니까?
성령께서는 2,3장에서 지상에 있는 교회들 한가운데 있는것을 나타내면서 4장에서는 교회들의 위치가 성령의 위치가 다 바뀐 것을 우리가 알수가 있습니다. 자 이제 하늘의 문이 열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4장 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쳐다보니 보라 하늘에 한 문이 열려 있는데 내가 들은 첫 음성은 나팔 소리 같았으며 내개 말하여 이르기를 이리 올라오라 내가 이후에 마땅히 일어나야 할 일들을 네게 보여 주리라. 하더라.] 자 하늘에서 한 문이 열립니다. 옛날에 문이 열려서 에녹이 올라갔습니다. 또 문이 열려서 엘리야가 불말과 불병거를 타고 올라갔습니다. 또 문이 열려서 우리 주님이 승천하셨습니다. 자 또 한 문이 열립니다. 이 요한계시록에서는 문이 두 번 열립니다. 한번은 사도요한이 이리 올라오라 말을 듣고 올라간 것이요. 또 한번은 19장에 넘어가면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불꽃같은 눈을 가지시고 심판의 주로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이땅에 오시기 위해서 문이 또 열리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하늘을 쳐다 보아도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문이 열려야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문이 열릴 때는 음성과 나팔 소리가 났다. 여기 지금 말씀하고 있죠? 첫 음성은 나팔소리 같았다. 주님이 오시는 것은 나팔소리와 관련이 있고 또 성도들의 휴거도 나팔소리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 4장 15~18절을 보면 음성과 나팔소리가 무엇인지 알 수 있죠?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친히 내려오시니 주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또 그때 살아남은 우리도 변화되어 그들과 함께 구름으로 이끌려 올라가서 주와함께 영원히 있으리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바로 이것 4장 1절은 앞으로 있을 휴거를 말씀하고 휴거로부터 시작해서 이땅에 하늘에 어떠한 일이 일어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4장 2절을 보면 또 내가 즉시 영 안에 있게 되었는데 보라 하늘에 한 보좌가 놓여 있고 한 분이 그 보좌에 앉으셨는데] 사도요한은 이미 하늘에 올라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10절에서 봤죠? 내가 주의 날에 성령 안에 있었는데… 이 주의 날이란것은 우리가 예배 드리는 선데이(Sunday) 주일도 주의 날이라 할수 있지만 이 주의 날은 앞으로 올 영원한 주의 날 그것이 언젭니까? 앞으로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이죠?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바로 여호와의 날, 진노의 날, 징계의 날, 슬픔의 날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축복의 날이요 신원(伸寃)의 날입니다. 내가 주의 날에 성령 안에 있었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사도요한을 2천년후의 재림의 날로 이미 옮겨놓고 미리 보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형태나 구조의 기적적인 변형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초능력, 초자연적이죠?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 49절 50절을 여러분이 읽어보면 주님의 몸된 교회가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휴거되고 들림받는가? 여기에 대해서 나오는데 사도바울은 이러한 신비스러운 일이 나팔소리가 날 때 눈 깜작할새에 일어난다고 하였습니다. 눈깜짝할새 몸이 새 몸을 입는다. 죽지 않을 몸을 입는다. 영적인 몸, 썪지 않을 몸을 입는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을 통해서 휴거의 신비 비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8절, 고린도전서 15장 49~52절에 두 번에 걸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음성이 나오고 나팔소리가 나오고 부르는 소리에 몸이 영적인 체질로 변화되서 요한은 즉각적으로 셋째 하늘에 올라간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자 하늘들이라고 하죠? 첫째 하늘은 땅에서 구름이 있는곳까지, 대기권까지, 공기가 있는곳까지. 이게 바로 첫째 하늘이요. 둘째 하늘은 태양과 달과 별들이 있는 우주를 얘기하는겁니다. 유니버스. 셋째 하늘은 그 많은 별자리를 지나고 성운들을 지나고 여러개의 은하수를 지나고 성단들을 지나서 하나님이 친히 계신 곳으로 그 방향은 북쪽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리로 올라오라 하는 말씀이 세 번 나타납니다. 첫째는 구약성도들의 휴겁니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자들 가운데 부활하셨을 때 잠자는 많은 성도들이 함께 일어났다. 마태복음 27장 50~54절에 나오죠. 또 에베소서 4장 8~10절에도 우리가 볼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 때에 구약의 성도들이 일어나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서 그들을 보였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됐겠습니까? 올라갔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의 첫열매라 하지않고 첫열매들 그랬습니다. 예수님을 따라서 부활한 많은 무리가 있었다는 얘기죠? 두 번째는 신약 성도들의 휴거입니다. 이것은 오순절날 교회시대 이후에 휴거 전까지 신약성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 교회 시대의 끝에 일어나죠? 조만간 일어납니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죠? 오늘 저녁에 될지 내일 아침에 될지 모릅니다. 언젠지는 모르지만 조만간 일어납니다. 이것이 바로 신약 성도들의 휴거 두번재 휴거 입니다. 아까 말한대로 고린도전서 15장 49절~53절,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18절에 나와 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환란 때에 환란성도들의 휴거입니다. 환란기간 끝에 있을 겁니다. 이것을 주님께서 마태복음 24장에도 말씀하셨고 요한계시록 11장에 가면 우리가 여기에 대해서 공부할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세 번의 휴거를 세번의 추수에 비유했습니다. 밀을 수확하는 것에 비유를 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수확은 처음 익은 열매, 결국 부활의 첫열매들이죠? 예수 그리스도를 포함하여 구약 성도들. 이걸 첫 수확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는 본 수확입니다. 추수입니다. 그 후에 익은 열매들, 2천년동안 교회시대의 익은 열매들,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 바로 교회시대의 끝에 있는 신약 성도의 휴거를 얘기합니다. 마지막으로 환란 후 휴거는 이삭줍기라고 그러죠? 그래서 재림 때에 환란 성도들이 또 들림받는 장면을 이제 앞으로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것입니다.
자 이제 계속해서 요한계시록 4장 3절과 4절 말씀을 계속해서 읽겠습니다. [앉으신 분의 용모가 벽옥과 홍보석 같으며 그 보좌를 두른 무지개는 에메랄드같이 보이더라. 또 그 보좌 주위에는 스물네 좌석이 있는데 내가 본 그 좌석들에는 흰옷을 입은 스물네 장로가 앉아 있고 그들은 금으로 만든 면류관을 머리에 썼더라.] 이 면류관들은 보상의 면류관이죠.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이 보상으로 면류관을 받습니다. 흰옷은 그리스도의 심판석, 세마포는 성도들의 의로운 행실로 계시록 19장의 어린양의 혼인잔치에서 입게 될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혼인잔치. 휴거될때 성도들은 하늘에서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상을 받고 책망을 받고 깨끗해져서 그 다음에 흰옷을 입고 그리고 7년동안 이땅에 환란이 있는 동안 어린양과 결혼하는 기간이에요. 참 결혼식이 7년동안 있을 거에요. 여러분 상상해보세요. 이 지상의 결혼식은 모형입니다. 그러므로 이 엄청난 축복을 우리가 어떻게 상상할수 있겠습니까? 이 땅은 진노의 포도주가 막 떨어지는데 하늘에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은 거기에서 결혼할 겁니다. 사도요한이 올라가서 아래를 본 것처럼 아마 거듭난 휴거된 성도들이 올라가면 하늘에서 이땅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럴때 내가 복음을 전하지 못해서 구원받지 못하고 고통받고 죽임당하는 우리 가족이나 친지나 친구들을 볼 때 얼마나 우리 눈에서 눈물이 나겠습니까? 그 눈물이야말로 진정한 눈물이겠죠? 참 어떤 미국 목사님은 회개하는 눈물 속에도 거짓이 있다 그랬는데 사실 이 땅에서 흘리는 눈물은 온전히 순전하지 않습니다. 내 욕심 내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올라가서 나 때문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우는 눈물은 아마 진정한 눈물이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가면 주님께서 그 눈물을 씻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자 24장로들이 나옵니다. 구원받아서 예수의 피로 씻김 받고 보상받은 교회 시대의 구원 받은 사람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이죠? 그래서 계시록 5장 9절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죽임당하셨던 주께서 하나님께로 각 족속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서 우리를 주의 피로 구속하여] 구속받은 사람들의 대표자들입니다. 여기 스물넷이라는 숫자는 유대인의 숫자 12, 열두 사도가 나옵니다. 열두 지파가 나옵니다. 옛날 유대인들이 열두 지파요 신약 사도는 열두 사도입니다. 바로 유대인의 숫자 12의 배수입니다. 열두지파의 배수죠? 이건 그리스도안에 있는 이방인과 유대인을 의미한다고 볼 수가 있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둘째는 헬라인, 즉 이방인이게로다. 이렇게 말씀하신 로마서 1장16절 말씀처럼 이 스물네 장로는 구원받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합해서 말한것을 의미한다고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볼 수가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요한계시록은 이해하기 어려운게 아니라 믿기 어려운 책입니다. 인간은 경험하지 않은 것은 믿지 않으려고 그럽니다. 옛날에 본 것만 믿을려고 그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앞으로 될 일입니다. 한번도 보지 못한 일이 앞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은 알게 돼있죠. 히브리서 기자는 그랬죠?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랬어요. 내가 알고 믿은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때 알게 된 것입니다. 이게 바로 세상과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지요. 참 사도요한은 우주에 실제로 존재하는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문자 그대로의 장소로 들림받았고 그 장소는 지금도 여전히 거기 있음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우리 눈으로 보지 못한다고 없는게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처소에 관해서 그 위치와 거리와 규모 어떤 특징이 있는가? 어떤 자들이 살고 있는가? 여기에 대해서 많이 언급하고 있으며 매우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소부재하시지만 그분이 구원받은 사람의 몸 속에 거한다는 관점에서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몸에는 거하지 않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무소부재하지만 구원받은 사람들 속에 거하신다. 또 성령께서는 지금 신약성도들 안에 거하신다는 그러한 점에서 보면 구약시대의 성도들 몸에는 항상 거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에게 잠깐동안 안에 임재하셨다가 사역이 끝나면 옮겨 가신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옛날 선지자들 속에도 그리스도의 영이 있었지만은 항상 있었던 것은 아니죠. 그러나 신약 시대는 한번 믿으면 성령으로 인침(sealed)받는다 그랬습니다. 주님께서 아주 내재하시는 겁니다. 이게 다른점이죠. 또 성령께서는 교회시대에 이땅에 계신다는것을 비추어 볼 때에 환란때에는 이땅에 계시지 않는다고 우리가 알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뜻을 알기를 원하신다면 거듭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거듭나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2장 14절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자연인은 하나님의 영의 일들을 받아 들이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일들이 그사람에게는 어리석게 여겨지기 때문이요 또 알수도 없나니 이는 그 일들이 영적으로만이 분별되기 때문이니라.] 자 두번째로 보좌의 위치가 어떤 곳인가 성경을 통해서 알아 보겠습니다. 이 보좌의 위치가 창세기보다 더 먼저 기록된 욥기와 시편에 나타나 있는 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특별히 욥기에 보면 하늘의 광경에 대해서 하늘에 있는것들에 대해서 많은 진주같은 진리의 지식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욥기 26장 7,9,10절에 보면 그 말씀들이 있는데 [그는 북쪽을 빈 자리에 펼치시고 땅을 허공에 매다시는도다. 그는 그의 보좌의 앞을 붙드시고 그위에 그의 구름을 펼치시는도다. 그가 그 물들을 경계로 두르시니 낮과 밤이 끝나는 곳까지라.] 물 위에 있는 지역, 이것을 북쪽과 허공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이 북쪽과 허공 위에는 인간이 하나님의 보좌를 보지 못하도록 하는 단단한 덮개가 있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이 장소는 낮과 밤이 끝나는 곳인 태양계 너머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눈으로는 볼수가 없는거죠. 욥기 37장 18,22절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당신이 그분과 함게 단단하고 부어 만든 거울같은 하늘을 폈느뇨? 아름다운 날씨가 북쪽에서 오나니 두려우신 위엄이 하나님께 있도다.] 하늘이 단단하고 부어만든 유리같은 강하고 단단한 물체임을 볼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머리 위에 있는 그런 하늘보다 훨씬 높이있는 하늘이죠? 셋째 하늘입니다. 다시 한번 북쪽 방향이 하나님과 관련됨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욥기의 말씀을 연구해야 하는 이유는 욥기가 성경에서 가장 오래된 책이기 때문입니다. 이 욥기의 말씀은 우주의 형성과 기초와 구조에 관한 정보를 얻을수 있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나사(NASA)에서도 모르는 것입니다. 천문학에서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만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유식한 사람을 세상 어떤 사람도 당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 모든 지식은 죽음 너머에 것은 알수가 없습니다. 하물며 어떻게 하나님의 보좌에 대해서 알 수가 있겠습니까? 자 계속해서 욥기 38장 30절에 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물이 돌로 된 것처럼 감추어졌고 깊음의 표면은 얼어 있도다.] 물이 우리가 볼 수 없는곳에 감추어져 있다고 말합니다. 이 물은 여기 오대양, 즉 대서양 인도양 태평양 같은 이런 오대양을 얘기하는게 아니지요. 이 조그마한 공같은 지구 안에 있는 물을 얘기하는게 아닙니다. 이 하늘에 있는 물은 엄청난 물입니다. 그래서 깊음의 표면은 얼어 있도다. 문자 그대로입니다. 이 깊음이 뭡니까? 창세기 1장 2절에 깊음이 흑암의 깊은곳에 있고 그랬죠? 깊음이란 것 참 하늘이 얼마나 위로 깊습니까? 위만 있습니까? 밑에도 있습니다. 하늘, 깊음의 표면이 무엇일까? 창세기 1장2절을 보고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세 번째로 보좌의 거리나 규모나 어떤 특징이 있고 어떤 존재들이 있는가? 창세기 1장 6절에서 9절에 보면 그 궁창 위에 물이 있고 그 궁창 밑에도 물이 있다고 그랬습니다. 이 우주는 평평하고도 광활한 공간에 조성이 되어 있습니다. 별들, 해와 달이 있습니다. 은하들이 있습니다. 별자리가 있습니다. 성운들과 성단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바로 하늘이라고 부릅니다. 창세기 1장 14~17절에 나오죠? 특별히 시편에 보면 아름다운 말씀들이 있습니다. 148편 1절에 보면 [너희는 주를 찬양하라. 너희는 하늘들에서부터 주를 찬양하라.] 하늘이 세 개죠? 셋째 하늘 둘째 하늘 첫째 하늘. 하늘들에서부터 주를 찬양하며 또 높은 곳들에서 그를 찬양하라. 고린도전서 12장 1절에서 4절보면 사도바울이 셋재 하늘 낙원에까지 이끌려 갔다 왔다고 했습니다. 요한처럼 하나님의 그 보좌를 보고 왔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얘기 하지 말라고 해서 이르지 못할 말들이다. 이르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서 말하지 않고 그만 둔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사도요한때 와서는 주님이 완전히 계시하시고 그 셋째 하늘의 광경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우린 말씀을 통하여 하늘의 보좌가 어떻게 생겼는지 영적으로 깨달을 때 거기에 소망을 두고 살게 되어 있습니다. 소망을 하늘에 있는 것에 두라. 땅에 두지 말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계속해서 시편 148편 4절 말씀을 보면 [너희 하늘들의 하늘들과 하늘들 위에 있는 너희 물들아 그를 찬양하라.] 하늘들의 하늘들이라고 했습니다. 하늘들 위에 있는 너희 물들아, 즉 하늘들 위에도 물이 많습니다. 이것은 지상에 있는 한방울 같은 물 정도가 아닙니다. 엄청난 물이 하늘에 있습니다. 또 시편 148편6절에 보면 [그가 또한 그들을 영원무궁토록 세우셨으며 폐기치 못할 법령을 제정하셨도다.] 이 물들은 절대로 그 위치에서 떨어지지 않고 그 위치를 이탈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물들을 우주 위와 아래에 걸어 놓으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1장 3절에 보면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신다.]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죠? 능력의 말씀으로 붙들고 있죠? 이제 다시 한번 말씀하시면 천지가 일제히 선다고 선지자 이사야가 분명히 증거한것을 우리가 기억합니다. 시편 148편 8절에 보면 [ 불과 우박과 또 눈과 안개들아 그의 말씀을 이행하는 폭풍아] 폭풍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행한다고 하네요? [그들로 주의 이름을 찬양하게 할지니] 자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느날 하늘로 들림받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통과한것처럼 또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에 들어간 것처럼 우리는 이 하늘의 물을 통하여서 휴거될 것입니다. 그때는 엄청난 광경이 전개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잠깐 포로 생활하고 돌아올 때도 그렇게 기뻐서 모세의 동생 미리암이 소고를 치고 찬양하며 얼마나 기뻐했습니까. 그러나 이 험한 세상, 고난받는 세상에 살다가 주님 오셔서 이 엄청난 물을 통과해서 올라갈 때 홍해를 통과할 때의 이스라엘 백성의 기쁨과 비교할수 있겠습니까? 이건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우주선을 타고 올라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주복을 입어도 안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거듭난 성도들이 변화되서 몸이 부활해야지만 죽지 않을 몸으로 변화되야지만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야지만 뚫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 몸은 추위도 타지 않고 더위도 타지 않고 시공간을 초월한 것입니다. 이 약속을 믿는자 이 믿음을 가진 사람은 겁날게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세상을 이긴 것은 이것이니 너희의 믿음이니라. 믿는자가 누구뇨?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자가 아니뇨?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창조주가 내 안에 계신것을 믿는다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문제는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했습니다. 너희안에 그리스도가 계신것을 너희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는 버리운 자니라. 그러나 우리가 버리운 자가 아닌것을 너희가 아는 것이라. 그랬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버리운 자가 아닌것을 기뻐해야 됩니다. 이것이 바로 기쁨의 근원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 어떤 것도 우리의 기쁨을 뺏어 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주안에서 기뻐하라 그랬습니다. 주 안에 있는 이 하늘나라 천국에 대한 소망. 이것을 바라볼 때 기쁨이 있어야지요. 이것이 아니고 다른 것에 기쁨을 두면 그것이 상실될 때 없어집니다. 왜 성도들이 슬퍼합니까? 내가 갖고 있는것이 없어질 때. 내가 갖고자 하는 그 행복과 형통함이 없어질 때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주안에서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주 안에만 기쁨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감옥 속에서 기뻐하라 했습니다. 왜? 그는 주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주 안에 있고 확신에 있었기 때문에 이제 세상 떠나면 주와 함께 있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시편 148편 2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북편에 있는 위대한 왕의 도성 시온산은 그 자리잡은것이 아름다우며 온 땅의 기쁨이니] 이 땅에 살면서 저기 북편에 있는 위대한 도성 시온산, 하늘에서 뜻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땅에서도 뜻이 이루어지이다. 하늘에 시온산이 있는것처럼 땅에도 시온산이 있습니다. 하늘에 새 예루살렘이 있는것처럼 땅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시온산은 땅의 기쁨입니다. 이 땅의 시온산은 지금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하늘의 새예루살렘은 기쁨의 도성입니다. 소망의 도성, 영원한 도성입니다. 그러나 지금 땅의 예루살렘은 테러의 도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평화의 왕 주님이 오시게 되면 다시 회복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온 땅의 기쁨인 저 하늘의 도성을 바라보시겠습니까? 아브라함은 그 팔레스타인 땅을 쳐다보며 살았지만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때도 그는 그곳에서 타국인처럼 순례자처럼 앞으로 임할 기초가 있는 한 도성을 바라보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도성을 바라보라. 바라보았습니다. 멀리서 바라보고 그들은 죽었습니다. 그러나 새 도성 예루살렘은 더 이상 멀리있지 않습니다. 이제 곧 주님이 오실 때 재림하실 때입니다. 하늘에서 내려 오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의 기쁨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루시퍼라는 마귀는 내가 하늘에 올라가서 북편에 있는 회중의 산위에 앉으리라. 북쪽에 있는 하늘에 앉으리라. 이사야 14장 12,14절에 보면 이 교만한 루시퍼가 이 세상에 죄를 가져온 마귀가 이렇게 얘길했죠? 우리는 절대로 루시퍼를 따라가서는 안됩니다. 북편에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습니다. 북극성은 붙박이 별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모릅니다.
요한계시록 4장 5절 보면 [그 보좌에서는 번개들과 천둥들과 음성들이 나오고 보좌 앞에는 일곱 등불이 불타고 있었으니 그것들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성령께서 계십니다. 일곱 영입니다. 이사야서 11장 2절 보면 일곱영은 주의 영이요 지혜의 영이요 명철의 영이요 계획의 영이요 능력의 영이요 지식의 영이요 주를 두려워 하는 영이라 그랬습니다. 일곱 영이 하늘에 있습니다. 그 일곱 영이 바로 성령받은 사람 속에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은 지혜가 있습니다. 명철이 있습니다. 주안의 계획이 있습니다. 능력과 지식이 있고 항상 주님을 두려워하고 떱니다. 왜? 이것은 바로 창조주 여호와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절대 흔들리지 않습니다. 절대로 흔들리지 않고 주님만을 바라봅니다. 절대로 세상과 타협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말씀외의 것은 믿지를 않습니다. 이런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시간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늘의 것들을 보여주심을 감사합니다. 너희 마음을 하늘에 두고 땅엣 것에 두지 말라는 사도바울이 성령을 통해 말씀하신 그 말씀을 기억합니다. 앞으로 주님과 함께 영광 가운데 나타날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땅에서 타락하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의 나라만 소망하다가 이땅에서도 주님의 나라만을 보고 기뻐하다가 주안에서 기뻐하다가 주님 만날 때 떳떳하고 기쁨으로 만날 수 있는 한사람 한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안에 계신 주의 성령님을 아버지 하나님을 그리스도의 영을 슬프게 하지 않도록 근심하지 않도록 항상 깨어서 기도하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