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 동안도 주 안에서 평안하셨습니까? 참 평안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안의 평안 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죄를 제거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리고 셋째 날에 부활하셔서 하늘에 올라가셨기 때문에 이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서 이제는 육신으로 하나님이 오지 아니하시고 성령으로 이천 년 전에 이 땅에 오셔서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하신 일들을 증거하셨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세상을 향해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고 그 책망 소리를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서 죄를 용서받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에게는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모든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장래 일들을 알게 하셨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성령을 통해 영이 거듭난 사람들은 누구든지 바로 소위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은 성령 안에서 누구나 위로를 받고 특별히 장래 일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성령께서 알게 하실거라 했습니다. 사실 참 위로가 어디있겠습니까? 세상적인 위로는 물질이 풍부하고 건강하고 자녀가 잘되고, 이런것들은 이땅에 잠깐 사는동안에 편암함을 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참 평안과 위로를 줄수는 없습니다. 참 평안은 구원받은 후에 죄를 용서받았다는 그 평강이요 두 번째는 모든 진리를 깨달음으로 앞으로 주님이 하실 일들이 무엇인가를 깨닫는 것 거기서 오는 위로가 바로 참된 위로인 것입니다.
오늘은 4장 6절부터 공부하겠는데 이것은 바로 사도요한이 하늘로 들림받아서 거기에서 하늘 보좌를 본 것입니다. 앞으로 계속 하늘에서 바라본 이땅에 일어날 환란의 모든 부분,부분을 자세하게 묘사한 책이 바로 요한계시록입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죠? 그래서 이땅에서 고난받는 성도들은 이것이 바로 복된 소식이지만 믿지않는 사람들은 이것이 재앙의 소식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한사람이라도 더 복음을 전해서 환란에 빠져서 적그리스도에게 멸망받는 일이 없도록 전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을 공부하면 할수록 참으로 영혼 사랑하는 마음이 들고 가까이 있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볼 때 불쌍한 생각이 들고 그것을 통해서 바로 성령 안에서 구령의 열정이 생기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요한계시록이 무서운 책이기 대문에 읽지 말라고 그럽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친히 요한에게 나타나셔서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이 가운데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바로 그때가 가깝다고 했습니다. 자 오늘은 4장 6절부터 사도요한이 하늘보좌로 들림받아 올라가서 본 광경을 묘사했고 이 속에서 우리가 영적으로 우리 몸은 땅에 살고 있지만 영적인 눈을 떠서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를 샅샅이 볼수가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것들의 실상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에게 실상이 되어야지요. 그래야 이 세상에서 환란이 와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이 세상에서 환란을 당할 것이지만 기운을 내라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세상을 이기시고 사망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가 안에 있는 사람은 세상을 이긴 사람이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싸음은 혈과 육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영적인 마귀들과 싸우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죄와 사망의 권세를 다 깨뜨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없이는 그 마귀들의 세력을 이길 수가 없지요. 우리가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자 4장 6절을 먼저 한절 읽겠습니다. [보좌 앞에는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그 보좌 가운데와 그 보좌 주위에는 앞뒤로 눈이 가득한 네 짐승이 있더라.] 다른 성경에는 네 생물이 있더라 그렇게 되어있죠? 자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다고 그랬습니다. 요한은 이미 셋째 하늘에 올라가 있습니다. 이 셋째 하늘은 사도바울도 올라갔다 왔습니다. 이것은 고린도후서 12장에 분명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마치 제 삼자처럼 증거하지만 자신에 대하여 증거합니다. 자신이 갔다왔다하면 사람들이 물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절대로 얘기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가히 이르지 말라고 말씀했기 때문에 사도바울은 그렇게 말했지만 실질적으로 그도 그의 영이 하늘보좌에 갔다 온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이 유리바다가 무엇일까? 이것은 마치 단단하고 부어만든 유리같다. 단단한 유리바다다. 물이 0도 이하가 되면 얼죠? 깊음의 물이 결빙된 표면인 유리바다위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하늘을 쳐다봐도 하나님의 보좌를 볼 수가 없습니다. 물론 거리가 멀어서 볼 수가 없겠지만 그 둘째 하늘과 세째 하늘 사이에는 수정과 같은 유리바다, 물이 얼어있는 엄청나게 단단한 유리같다고 욥기에 나오는데 이것은 분명히 주님께서 사도요한에게 보여 주셨고 증거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유리바다는 욥이 말한 대로 하늘이 단단하고 유리바다 같다 유리같다. 이렇게 얘길했죠? 욥이란 사람은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의 여러가지 비밀들을 알게됐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욥기는 창세기보다 먼저 기록된 최초의 성경입니다. 고난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여러가지 신비를 욥에게 알려 주셨고 또 마귀의 정체를 알려 주셨고 또 욥기를 통해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성령 안에서 이 하늘을 볼수 있습니다. 꼭 가봐야 압니까? 영 안에서 알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눈이 뜨인 사람이죠. 아무리 시력이 2.0이 되도 영계를 보지 못하는 사람은 소경입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랬죠? 우리도 소경인가? 그러니까 주님께서 너희가 본다고 하니까 소경이다. 너희가 본 것은 썩어질 육신의 것을 본것이지 진짜 보는 사람들은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본것이요 영적인 하늘 나라는 하늘에서 내려온 그 예수님을 볼수 있는 눈이 진짜 눈이란거지요. 그러나 바디메오 같은 사람은 육신의 눈은 멀었지만 그는 영적인 눈은 열려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며 알아봤죠. 제자들도 알아보지 못할 때 그는 알아봤습니다. 누구나 바디메오처럼 영적인 눈이 먼 것을 고백하고 이 성경을 읽어도 하늘나라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기도하고 영적인 눈을 열어 달라고 주님앞에 간구할 때 주님께서 열어 줄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 13절에 여러분 잘 아는 말씀있죠? 지금은 유리를 통하여 희미하게 보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것이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사도바울도 아는 것입니다. 요한이 본 유리비다를 사도바울도 봤기 때문에 지금은 유리를 통해서 확실하게 보지 못한다. 희미하게 보지만 나중에 주님 오실때 휴거가 되서 이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을 거쳐서 이 유리바다를 거쳐서 물을 통과해서 그때는 아무리 얼어있는 바다라도 영체는 통과할수 있죠? 그러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지금의 육신은 얼음을 통과할수 없지만 그때는 통과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볼 것이요. 얼마나 확신된 소망입니까? 이 소망이 있는 사람은 이땅에서 죽어도 사는거죠. 죽는 날이 바로 영원히 사는 날 아니겠어요? 사도바울은 내가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연합하는것이 좋다. 그러나 내가 아직까지 몸 안에 사는것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라. 사도바울은 그 많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기 때문에 요한처럼 받았기 때문에 그가 살아있어야만 더 많은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알수 있고 진리를 깨닫기 때문에 그렇게 얘기를 했죠? 그렇지 않습니까? 사도바울이 살아서 많은 서신서를 썼기 때문에 서신서는 성령안에서 성령께서 친히 쓰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서신서를 통해서 참 여러가지 부활의 신비와 휴거의 신비 이 모든것들을 우리가 알 수있고 하늘에 쌓아둔 여러가지 유업에 대해서 알수있죠. 물론 베드로를 통해서 다른 선지서를 통해서도 우리가 알수 있고 시편에서도 엄청난 우리를 위한 유업, 기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면 할수 없습니다. 이 바다는 수정과 같다. 마치 dry ice 같은 것이라 볼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보좌가 있습니다.
이 보좌는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면 네 짐승들을 한꺼번에 볼수가 있어요. 왜냐면 투명하지 않으면 저 뒷편에 있는것을 못 볼텐데 네 생물을 한꺼번에 볼수 있다는것은 하나님의 보좌가 투명하다는것을 알수가 있고 이 짐승들 바로 beast라고 되어있죠? 또 creature라고 되어 있어요. 생물들이라고 나오는데 이것은 구약에 에스겔서 1장과 10장에 그룹들로 나타나있습니다. 그룹과 스랖이 있습니다. 그룹은 날개가 네 날개달린 생물입니다. 그리고 스랖은 좌우에 세개씩 여섯개 날개 달린 그런 존재입니다. 천사는 그룹과 스랍과는 다르죠. 천사가 날개 달렸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룹들 그럴때는 네 날개. 스랍들 그럴때는 여섯 날개. 그래서 이사야서 6장에, 이사야도 하늘의 보좌에 올라간거죠. 올라가서 하나님의 보좌 성소에 들어갔을때에 스랍들, 여섯 날개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이렇게 찬송하는 소리를 듣고 나는 죽게 되었도다. 내 입술은 부정한 자로다. 할때 스랍중 하나가 화로에서 불을 갖다가 그 입술에 대니까 모든 죄들이 씻어졌고 그래서 그는 주님의 보내심을 받은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자 에스겔서 1장과 여기 요한계시록 4장에 네 짐승이 나오죠? 그런데 에스겔서 28장 14절을 보면 원래는 네 짐승이 아니고 다섯 짐승이었다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그 다섯번째는 보좌 위에 있는 기름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입니다. 기름부음 받은, 어노인트죠? 기름부음 받은 자, 히브리 낱말이 바로 우리가 잘아는 메시아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기름부음 받은 자요 히브리말로는 메시아입니다. 신약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바로 예수님은 주가 되신다. 그분이 하나님이시요 또한 그리스도시다. 기름부음 받은 자이시다. 이렇게 얘기하죠? 그래서 다섯 번째 기름부음 받은 이 짐승이 덮는 그룹인데 이것도 바로 기름부음 받은 자이기때문에 그리스도인데 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적그리스도, 즉 앞으로 나타날 적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보좌를 덮고 있는 그룹 다섯번째 그룹이 타락한것이 바로 루시퍼 우리가 알고 있는 마귀입니다.사탄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이사야서 14장 10~ 13절에 보게되면 분명히 나옵니다. 그것은 바로 루시퍼다. 죄를 지어서 하늘보좌에서 떨어진 거죠? “아침의 아들 루시퍼야 네가 어찌하여 하늘에서 떨어졌느냐?” 개역성경에는 이것이 계명성이라고 나와 있는데 계명성은 우리 주님을 이야기하는거죠? 계명성은 새벽별이죠? 잘못된 것입니다. 루시퍼가 맞습니다. 자 에스겔서 28장 16절 보게되면 [네 상품이 풍부함으로 그들이 폭력으로 네 가운데를 채워서 네가 죄를 지었노라. ] 네가 누굴까요?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쫒아내리라. 오 덮는 그룹아 내가 불의 돌들 가운데서 너를 멸하리라.] 에스겔서 28장16절과 이사야서 14장 12절에 있는것 덮는 그룹이 바로 루시퍼죠? 바로 타락한 마귀요, 이 마귀가 뱀의 형상으로 나타나서 우리 조상 아담과 이브에게 죄를 갖다줘서 결국은 이 땅에 태어난 수많은 사람들이 죄인으로 태어나는 엄청난 저주를 받게 된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심으로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이 죄를 지었다고 다 죽이지 않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오래 참으십니다. 사람 같으면 나를 배반한 사람을 당장 죽이고 새로 만들텐데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사람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 사람과 다르고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보다 훨씬 높고 깊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람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고 생각하면 큰일납니다.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부패하고 더러워서요 참 이것을 아무도 알수 없습니다. 이땅에 있는 개와 고양이보다 사람이 더 악한것을 볼수 있습니다. 양이나 염소보다도 사람이 더 악합니다. 그래서 옛날 구약시대 주님이 오시기 전까지 구약시대에는 죄를 짓지 않은 짐승들이 죄인들의 죄를 담당하고 죽을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레위기서를 읽어 보세요. 얼마나 많은 짐승들이 죽었습니까? 제가 처음 구원받고 창세기를 읽고 레위기에 들어갔는데 그냥 절마다 짐승이 죽어가는데 또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제가 기도했습니다. 왜 이렇게 계속해서 지루하게 죽이는것만 나옵니까? 그랬더니 주님께서 성령님께서 안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많은 짐승들이 왜 죽었는가 생각 해봐라. 너희 죄인들때문에 그렇지 않냐? 우리 주님께서는 그러한 짐승들처럼, 한마리 어린양처럼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분은 피를 흘리실때 우리 모든 인생들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제거하기 위해 피를 흘리실때 그 피는 바로 하나님의 피요 하나님의 피는 죄가 없기 때문에 세상 모든 죄를 한꺼번에 용서하시고 깨끗하게 씻어 주시는 능력을 가졌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아니고서는 아무것도 없어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만이 바로 우리 구원의 능력이 되는것입니다. 이것외에 0.00001%의 다른 것이 우리 구원의 이유가 된다면 그거야말로 신성모독이요 그렇게 말하는 무리들은 다 이단들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만이 우리를 용서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만이 only the blood of JESUS CRIST스패니시로 쏠로데 쌍그레 헤수그리스도(Solo de Sangre Jesu Cristo).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 피만이 100%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라도 갖다대는 사람은 신성모독 죄요 주님이 오실때 저 불못에 떨어질수밖에 없습니다.
자 4장 7절 8절을 계속 읽겠습니다. 읽을 때 들을 때 복됩니다. [첫째 짐승은 사자 같고 둘째 짐승은 송아지 같으며 셋째 짐승은 사람과 같은 얼굴을 가졌고 넷째 짐승은 날아다니는 독수리 같더라. 네 짐승들은 각각 자기 주위에 여섯개의 날개를 가졌고 안쪽에는 눈들로 가득하더라. 또 그들은 밤낮 쉬지 않고 말하기를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나님이여 하더라.] 아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이 소리는 지금도 들립니다. 들려야 합니다. 여러분의 귓전에 들려야 합니다. 여러분의 영적인 눈으로 볼수 있어야 합니다. 찬송가 중에 7장의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여 이른 아침 주의 이름 찬양합니다. 하늘에서 뜻이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뜻이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세 번 찬송해야 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을 하나이신 그 주님을 유일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세 번 찬송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전능하신 주 하나님이시여 앞으로 오실 분입니다. 여기 사자와 송아지와 사람과 독수리의 얼굴들 이것이 무엇입니까? 이땅의 창조물의 대표적인 존재들입니다. 사자는 들짐승입니다. 송아지는 집에서 키우는 짐승이죠? 독수리 날짐승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보좌에 이 네가지 창조물들을 대표하는 짐승들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에스겔서 1장 5절에도 동일한 네 짐승이 나옵니다. 거기에 보면 네 생물의 모습이 나오는데 그들은 사람의 모습을 가졌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마귀는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광명의 천사, 빛의 천사로 나타납니다. 성경에 천사는 남성으로 나타납니다. 어떤 남자가 나타날 때 천사가 나타났다. 이렇게 얘기하죠.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보면 천사는 남성으로 나타납니다. 헬라어에 천사 앵겔로스도 남성으로 되어 있죠? 그래서 창세기 6장1~6절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이땅에 내려와서 사람의 딸들과 결혼해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다 쓸어 버렸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거인이 나타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들로 나타난 자들입니다. 그래서 에스겔 1장 6절에 봐도 각기 네 얼굴을 가졌고 각기 네 날개를 가졌더라. 요한계시록과 약간 다르게 묘사했지만 네 생물 모두가 각기 네 얼굴을 가졌다. 요한계시록에서는 한쪽만 봤기 때문에 그렇게 되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모두가 다 네 얼굴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여기에서 한 면만 봤기 때문에 그렇게 써 있지만 각자 네 얼굴을 가진 네 짐승이 있었다는 것을 여기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가 있죠? 얼마나 참 그 광경을 여러분 상상해보세요. 여러분 영적으로 한번 눈을 감고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그 네 생물이 얼굴이 네 얼굴을 가졌다. 사자, 송아지, 사람, 독수리의 얼굴을 각각 가졌다. 참 얼마나 신비로운 존잽니까? 자 에스겔서와 요한계시록이 통합니다. 시대가 수백년 정도 떨어져서 서로 본것을 기록했는데 결국 일치하게 되어 있습니다. 에스겔 10장 14절에 보면 에스겔은 이렇게 증거를 했습니다. [각기 네 얼굴을 가졌는데 첫째 얼굴은 그룹의 얼굴이고] 그룹이 나옵니다. [둘째 얼굴은 사람의 얼굴이며 셋째는 사자의 얼굴이고 넷째는 독수리의 얼굴이더라.] 그런데 에스겔서 1장 10절에 나타난 네 얼굴은 다르게 나타납니다. 사람, 사자, 황소가 나옵니다. 그리고 독수리가 나옵니다. 자 이것이 무엇입니까? 그룹 대신에 황소의 모습이 나옵니다. 다시 말해서 그 그룹은 황소의 모습임을 알수있고 이 황소는 아까 얘기한 사자 송아지 사람 독수리와 달리 다섯 번째 그룹의 얼굴은 황소인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말해서 하늘에서 하늘 보좌의 덮는 그룹으로 있던 황소 모양을 한 그룹은 타락해서 마귀가 됐고 사탄이 됐고 큰 용이 됐습니다. 이땅에 내려와서 이 세상에 죄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그 얼굴은 황소의 형상이다. 이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자 다시한번 요약을 해보겠습니다. 저 북쪽 셋째 하늘 유리바다 위에 있는 보좌에 하나님의 인격과 영광이 어떤 사람도 거하거나 접근하거나 볼수없는 빛 안에 지금도 좌정하고 계십니다. 자 그리고 불변의 생명의 오른쪽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앉아계십니다. 머리에 잘 상상해보십시요. 또 그 보좌 주위에는 네 그룹이 있습니다. 그런데 기름부음 받은 덮는 그룹은 황소의 얼굴을 가졌습니다. 그 이름이 바로 루시퍼입니다. 이사야 14장 12절에 오 아침의 아들 루시퍼야. 이 루시퍼는 죄 때문에 뱀이라 불리우는 붉은 용으로 타락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2장에 가보면 붉은용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 하는옛뱀 붉은 용이 바로 하늘에 있지 못하고 쫒겨납니다. 그 타락한 그는 옛날 광야에서는 금송아지 형태로 나타나서 아론과 그리고 그 후에 여로보암에게 경배를 받았죠? 그래서 바알이나 황소가 숭배자로부터 경배받았습니다. 그래서 영어로 바알은 뿔, 바로 황소를 이야기해요. 그러기 때문에 옛날 왜 송아지 형상을 만들고 섬겼는가? 그 이유를 알겠죠? 바알, 황소, 마귀를 섬기는 거에요. 사탄을 섬기는 자들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바알을 섬기는 자들에게 진노하시는겁니다. 성경을 보게되면 오늘날 황소의 정체, 인도에 가면 소를 죽이지 않고 신처럼 여겨요. 다 이유가 있습니다. 타락한 마귀의 옛날 형상이 바로 이 황소의 모습이었습니다. 여러분 캘리포니아에 파이어 플래이스(fire place) 위에 보면 꼭 황소의 뿔을 두개씩 걸어놓죠? 이게 우연한게 아닙니다. 다 사탄이 역사해서 뭔지도 모르고 갖다 놓는데 지금 이 방송을 들으면서 그 Fire Place 위에 황소의 두뿔이 있는 사람은 당장 제거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이것은 사탄이 속여서 그 뿔을 갖다놓게 해서 자꾸 보게 하죠? 이것은 바로 옛날 바알을 섬기던 사람들의 영이 사람들을 미혹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우리는 속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집에 절대로 우상이 있으면 안됩니다. 왜 뿔을 갖다가 거기에 둡니까? 이것은 원천적으로 보면 다 사탄의 형상입니다. 덮는 그룹이었다가 지금 타락했기 때문에 지금은 없습니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세 번 반복됩니다. 거룩하신 성부 하나님 거룩하신 성자 하나님 거룩하신 성령 하나님 우리도 이렇게 계속해서 이땅에서 찬송을 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4장 9절10절 11절을 시간 되는데까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짐승들이 보좌에 앉으시어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시는 분께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드릴때 스물 네 장로가 보좌에 앉으신 분께 경배하며 그들의 면류관을 그 보좌 앞에 던지며 말씀드리기를 오 주여 주께서는 영광과 존귀와 권세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니 이는 주께서 만물을 창조하셨고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으며 또 창조되었기 때문이니이다 라고 하더라.] 자 여기에서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생물들과 스물 네 장로들의 경배를 받으시는 장면을 봅니다. 자, 지난 번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스물 네장로는 12숫자는 바로 이스라엘 지파의 숫자요 신약시대의 12사도로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의 구원받은 사람들을 대표하는 숫자로 24장로들이 지금도 하나님께 면류관을 드리면서 찬송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면류관은 우리가 쓸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냥 선물로 받은 것이기 때문에 구원과 우리의 행한 여러가지는 절대로 우리가 받기에 합당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셨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스물 네장로들은 경배를 드립니다. 면류관을 던져 드리면서 경배를 드립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땅에 사는 동안에 면류관을 받을 때가 아닙니다. 이 땅에서는 주님처럼 십자가를 져야 할 때입니다. 십자가를 지지않고 나를 따라오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편안하게 사역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이땅에서 무룻 경건하게 주안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이 핍박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복음을 전해 보십시요 핍박받습니다. 고통 받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은 고난 받을 때요 주님이 오셔서 요한처럼 우리가 셋째 하늘로 들림 받아서 올라가게 될 때에 그때부터 우리가 면류관을 쓰고 주님과 같이 영광을 누리는 것입니다. 절대로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닙니다. 십자가가 없으면 면류관이 없습니다. No cross no crown입니다. 세상 말에도 no free lunch란 말이 있습니다. 공짜가 없다 이런 이야기 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려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태우고 다니는 나귀에 불과합니다. 주님을 보고 우리에게 박수를 칠지라도 우리가 박수를 받으면 안되고 주님께 영광 돌려야 되지 나귀가 그 박수를 받다가 펄쩍 뛰게 되면 바로 예수님이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얼마나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우린 절대 그래서는 안될 것입니다. 모든 영광을 주께 돌려야 될것입니다. 말로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 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정말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바로 주님의 보좌에 24장로들이 그런 사람들을 대표하는사람들로 참 주님이 앞으로 오시면 칭찬하실 것입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일에 충성하였으니 큰것을 맡긴다고 하였습니다. 이 땅에 있는 일은 다 적은 일입니다. 교회 숫자가 수만명된다 해도 다 작은 일입니다. 하늘에 가서 우리의 유업과 비교해보면 영원한 기업과 비교하면 다 작은일입니다. 그냥 맡겨주신만큼 열심히 일하다가 주님 만나는 사람이 축복된 사람인 줄 압니다. 이런 축복이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교회위에 넘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