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주일 동안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평안하셨습니까? 계속해서 여러분과 함께 요한계시록을 공부합니다. 이 요한계시록은 주님이 직접 사도 요한에게 나타나셔서 앞으로 될 일을 말씀하신 겁니다. 성령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고 그리고 또한 앞으로 일어날 장래 일을 알려 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면 참 평안과 위로를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위로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가지 아니하면 위로자(comforter)가 너에게 오지 않을 것이다. 성경에 보면 보혜사(保惠師)라고 한자로 되어 있지만 영어로 보면 comforter입니다. 위로자. 진정한 위로를 주시는 분이다. 임시적인 위로가 아니라 진정한 위로요 영원한 위로다. 세상이 주는 위로는 잠깐 있다가 금방 문제가 생기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는 영원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요한계시록의 말씀, 앞에 일어날 일을 알 때 위로를 받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앞으로 영원한 축복이 있다는 말에 진정한 위로를 받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주님은 사도 요한에게 나타나셔서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리고 그 가운데 기록된 말씀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때가 가까움이라. 2천년 전에 말씀하셨는데 지금은 얼마나 때가 가깝습니까? 라오디게아 교회 천사에게 편지할 때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노니, 바로 문 앞에 서 계십니다. 우리 주님의 음성을 이 말씀을 통하여 들으시기 바랍니다.
자 사도 요한이 2천 년 전에 그의 영이 성령 안에서 휴거되서 환란 때에 일어날 일을 그가 보았고 또 그것을 보기 전에 하늘 보좌에서 일어나는 광경들을 보고 기록했습니다. 여러분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까? 그러면 이 말씀을 통하여 지금 성령 안에서 우리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오른쪽에 앉아 계신 바로 그 하늘 보좌, 셋째 하늘, 요한과 바울이 갔다 온 셋째 하늘, 또 엘리야가 불말과 불병거를 타고 올라갔던 셋째 하늘을 여러분 가시지 않겠습니까? 오늘은 계속해서 요한계시록 5장부터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진리란 참입니다. 성경 말씀에 사도 바울이 증거했죠? 로마서 3장에 기록된 바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지만 하나님만이 참되시다. 바로 참되신 이 진리의 말씀을 듣고 우리가 행할 때 우리가 정결케 됩니다. 우리 주님의 마지막 기도 요한복음 17장 17절에 아버지의말씀으로저들을거룩하게하옵소서. 아버지의말씀은진리이니이다. 우리가 거룩함을 받는 것은 진리의 말씀을 깨닫고 진리의 말씀 안에 행할 때 바로 주 안에 행할 때 우리는 바로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거룩과는 다릅니다. 종교인들이 주장하는 거룩과는 다릅니다. 겉만 잠깐 번지르한 것과는 다릅니다. 하나님 말씀을 깨닫고 순종하고 그 말씀 안에 있는 물로 씻김 받아야만 우리의 모든 주름과 점과 티가 다 씻겨지고 주님 오실 때 주님의 신부로 우리가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자 5장부터는 일곱 가지 봉인된 책이 나옵니다. 일곱 가지 인으로 seal이 된 책이 나옵니다. 봉한 것이 일곱 번 됐습니다. 한 번만 봉해진 것이 아닙니다. 왜 일곱 번 봉해졌습니까? 일곱은 바로 하나님의 숫자입니다. 완전 수입니다. 5장 1절부터 4절까지 읽어 드리겠습니다. [또내가보좌에앉으신분의오른손에서한권의책을보았는데안팎으로기록되었고일곱인으로봉해졌더라. 내가큰음성으로선포하는힘센한천사를보았는데누가그책을펴며그봉인들을떼기에합당한가? 라고하더라. 하늘이나땅이나땅아래에서그책을펴거나볼수있는사람은아무도없더라. 그책을펴거나읽거나또는그것을볼만한사람이아무도보이지않기에내가심히울었더니]
사도 요한이 왜 울었을까요? 엉엉 운 것입니다. 어떤 사람도 인을 뗄 수가 없어서 입니다. 어떤 사람도. 자 그런데 어떤 사건이 벌어집니다. 어린 양이 나타난 것을 봅니다. 이 환상 가운데서 요한은 보좌에 앉으신 사람 같은 형상을 봅니다. 이렇게 나옵니다. 사람같이 생겼는데 형상이 나타났다. 그의 오른손에는 안팎으로 기록되고 일곱 인으로 봉인된 책이 있다. 이 책이 무엇일까요? 요한에게 계시된 말씀이 요한계시록이죠? 이 계시록의 말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옛날 다니엘 때는 그 말씀을 봉인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요한에게 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이 요한계시록의 말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러분 깨닫는 대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자 여기 보면 그 인을 뗄 자가 하늘에도 없다. 어떤 천사나 또 먼저 간 성도들이나 아무도 하늘에 있는 어떤 존재도 뗄 수 없다. 또 땅이나 이 땅에 살고 있는 유명한 설교자나 학자, 교황, 주교나 신부도 어떤 목사도 이 인을 뗄 수가 없다. 또 땅 아래입니다. 땅 아래는 어떤 마귀나 구원 받지 못한 혼들이나 귀신들도 이 인을 뗄 수가 없다. 그 책을 펴거나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더라. 편다. 이것은 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여는 것이죠? 요한복음 24장 45절 보면 주님께서 부활하셔서 물고기 잡으러 간 제자들을 만나셨습니다. 함께 생선을 드시면서 주님께서 말씀하셨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에 관한 기록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시면서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죽은 자 가운데 셋째 날에 살아날 것이 기록이 되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 모든 일에 증인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죠? 그러면서 그들의 지각을 열어 줄 때에 그들이 말씀을 깨달았다 그랬습니다. 또 바울이 마케도니아 쪽 빌립보에 가서 루디아를 전도했을때 루디아의 눈을 여셨습니다. 성령께서 루디아의 지각을 여시니까 말씀을 깨닫고 그 사도바울을 대접하고 자기 집에 머물게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말씀을 들을 때 성령님께서 지각을 열어 주지 않으면 아무도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볼 수도 펼 수도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러분 듣는게 무엇입니까? 이 청각을 사용해서 뭔가 소리를 듣는 게 아니죠? 들은 사람은 응답을 하게 되 있죠? 하나님 말씀을 들은 사람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말씀을 들어서 이해하고 깨달은 사람은 말씀대로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주일마다 수요일마다 또 새벽에 가서 말씀 듣습니다. 말씀을 귀로 듣긴 듣는데 왜 행하지 못합니까? 깨닫지 못한 것이요 이것은 실질적으로 들은 게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귀가 다 가져가요. 새들이 다 먹어 버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지각을 열어 주시도록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성령께서 열어 주시지 않으면 안됩니다. 겸손한 자가 이러한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겁니다. 자 그런데 요한계시록 5장 5절에 어떤 자가 바로 일곱 인을 뗄 것이 나옵니다. 보십시다. [그장로가운데하나가나에게말하기를울지마라. 보라유다지파의사자인다윗의뿌리가이겼으니그책을펴고또그책의일곱봉인을떼리라고하더라. ]
유다 지파의 사자가 누굽니까?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가 이겼다 그랬습니다. 다윗의 뿌리가 이겼다. 육신적으로는 다윗의 자손이지만 사람으로서는 다윗의 자손이지만 그러나 하나님 으로서는 다윗의 뿌리가 되시는 것입니다. 다윗의 뿌리요 다윗의 자손인, 완전한 하나님이시면서 완전한 사람으로 나타나신 우리 주님. 어찌 알겠습니까?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할 자가 없다. 이게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창조주 하나님이란 걸 시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성령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주님을 요셉의 아들로 취급해서 죽인 것입니다.그렇게 취급한 거죠. 자 그 분께서 이겼으니 그 책을 펴고 또 그 책의 일곱 봉인을 떼리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육신으로 계실 때 광야에서 사탄을 이기셨습니다. 또 갈보리에서 세상 죄를 몸에 다 전가 받으시고 죽으셨을 때 이 세상 죄를 다 이기셨습니다. 부활할 때 다 이긴 것입니다. 부활을 못했다면 이기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할 때는 죄만 이긴 것이 아니라 바로 사망을 이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기만 하면 죄가 없어지고 생명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영접하는 자 그 아들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고 이것은 혈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았고 하나님께로 난 것이다. 다시 태어난 것이다. 옛 사람은 죽었다. 아담의 자손이 아니라 예수 스리스도 하나님이 자손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인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 아직도 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아서 안에 생명이 없는 분은 이 시간에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십시요. 그 분이 하나님이신데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내 죄를 담당하시고 죽으시고 셋째 날에 부활하신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고 영접하십시오. 전심으로 하십시오. 99.9%도 아닙니다. 나는 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절실한 마음을 가지고 떨리는 마음을 가지고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영접할 때에 주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여러분 안에 들어가셔서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피가 여러분의 양심을 깨끗하게 해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도우실 겁니다. 자 갈보리에서 세상 죄를 이기셨습니다. 또 겟세마네에서 이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아담이 죄 때문에 잃어버린 낙원을, 하나님의 나라 킹덤(kingdom)을 그 분이 회복했습니다. 여러분 시편에 봐도 얼마나 이런 말씀이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시편은 우리가 뭐 기도하면서 이 땅에서 위로 받는 정도가 아닙니다. 시편에 보면 우리 주님이 고난 받는 것도 들어있고 우리 주님이 이 땅에서 천년 동안 통치하는 것도 들어있고 이 땅에 환란이 올 것도 들었고 또 영원한 세계가 올 것도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주님이 오신 것은 마지막 아담으로 오셔서 아담이 진 죄와 사망, 이것을 멸하고 다시 천지가 회복되는 것, 그래 가지고 천지가 영원히 갑니다. 잠시 동안 우리가 고생하는 것, 이 세상이 육천 년이라 해도, 잠깐 동안 6일밖에 안됐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일곱째 날에 주님이 쉬신 것처럼 일곱째 천년에 주님께서는 다시 이 땅에 왕으로 오실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사람은 바로 킹덤이 임해요. 다이 킹덤 캄(Thy kingdom come)이 무엇입니까? 나라가 임하옵시며, 즉 주의 왕국이 임하옵시며 하늘에서 뜻이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뜻이 이루어지이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는 예배 끝나고 모임 끝날 때 줄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정말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당신의 나라 당신의 킹덤이 임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땅은 소망이 없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마귀를 쫒아낸 것처럼 이제는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절실하게 기도할 때 하나님의 천사가 금대접에 여러분의 기도를 받아서 바로 하늘 보좌 제단에 부을 것입니다. 그러면 7년 환란 때 천사들이 이 땅에 부을 때 하나님의 자녀들의 원수를 갚아줄 것입니다. 주기도문은 줄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절실하게 한절 한절을 이렇게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은 내가 갚아 준다고 했습니다. 하늘과 땅에 주의 나라가 임하는 이것을 진정으로 바라보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거룩되이 여기는 이런 사람, 그 왕국(나라)과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만 있다는 이 놀라우신 하나님의 자녀의 고벡이 주님 앞에 상달된 것이요 이런 자들을 시험에서 건져줄 것이요 악에서 건져 줄 것이요 이런자들을 모든 죄에서 씻어 주셔 가지고 항상 거룩한 삶을 살게 하시는 겁니다. 시편 8편에 보게 되면 아담이 잃어버린 천지가 회복되는 것을 우리가 볼수 있습니다. 마지막 9절 보면 오 주여 우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뛰어나신지요. 온 땅에 주의 이름이 뛰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죠. 안 믿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어딜 가도 주의 이름을 찬송합니다. 악인이 하나도 없습니다. 의가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시편 8편의 내용입니다. 여러분 시편 8편을 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마음에 두시고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십니까?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기 때문에 죄를 지었을지라도 다시 회복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해서 의가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 바로 사도 베드로가 분명하게 하신 말씀입니다. 성령께서 그를 통하여 말씀했어요.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다. 이제는 너희가 의가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땅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이 땅은 하나님의 성도들이 살만한 곳이 못됩니다. 어딜 가도 죄가 부딪힙니다. 그러기 때문에 죄가 없는 회복된 나라에서 살기를 원하는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항상 나는 몸을 떠나 주와 합하는 것이 좋다라고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러한 믿음이 있을 때 이런 소망이 있어야만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보좌에 대한 아름다운 광경, 또 주님이 어떻게 오셔서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가 들어 있는데 이 말씀을 읽지 않고 어떻게 세상을 이기겠습니까? 이길 수가 없습니다. 비참한 일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환경이 바뀌겠습니까? 주님이 오시는 것밖에 없습니다. 미국 땅에 사는 사람들은 그저 안일하게 살고 있어서 그렇지만 저 중국이나 모슬렘권이나 북한 저 가난한 나라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생각해 보세요. 그들의 소망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이 킹덤캄, 주의 나라가 임하시옵소서. 그 길밖에 없습니다. 미국이 임해도 안돼요. 그들은 주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가 왕이 되는 그 나라가 임하지 않으면 소망이 없다는 기도를 얼마나 많이 하겠습니까? 미국에 사는 사람들은 이 땅이 좋으니까 그런 기도가 잘 안 돼죠. 이것이 문젭니다. 여러분 다시 한번 깨달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자 5장 6,7절을 보겠습니다. [이에내가보니보라, 보좌와네짐승의한가운데와장로들의한가운데도살당하였던것같은한어린양이서있는데일곱뿔과일곱눈을가졌더라. 그일곱눈은온땅에보내심을받은하나님의일곱영이라. 그가와서보좌에앉으신분의오른손에서그책을취하더라.] 옛날에 죽었었는데 살아있다 그 말이죠? 어린 양의 형상으로 나타났습니다. 환상 가운데 요한은 그리스도가 실제 양으로 묘사된 것을 봅니다. 영적으로 주님이 그렇게 보여준거죠?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킹제임스에 보면 “지고 가는”(개역성경)이 아니라 “제거하는”으로 나와 있죠? 세상 죄를 송두리째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양, 그 피는 모든 세상 죄를 제거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이 찬송은 바로 이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만든 찬송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함을 받아야 합니다. 저희 교회에 다섯 살짜리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가 원로 목사님의 손자입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두 살때 한국말로 주의 보혈 능력있도다. 202장 찬송을 두 시간 동안이나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할머니가 너 왜 그 찬송을 계속 부르고 있냐? 물었더니 그 아이가 내 안에 죄가 많아요. 두 살짜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성령이 아니고서는 모릅니다. 아무리 나이가 먹었어도 도덕군자일지라도 내 속에 죄를 보지 못하면 아직 눈이 먼 자요. 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소용 없습니다. 죄인임을 깨닫고 내가 죄인임을 아는 사람이 그 피를 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피가 없으면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사탄도 여러가지 모양으로 나타나죠? 뱀으로 용으로 빛의 천사로 그룹의 모양으로 나타나죠? 주님도 어린 양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왜 못 나타납니까? 여우도 둔갑하는데 왜 주님이 그런 형상으로 나타나지 못하시겠습니까? 사도 요한에게 바로 어린 양처럼 죽임을 당하셨던 예수, 바로 그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옛날이 아니에요. 사도 요한에게 보여주신 것은 지금 우리에게 보여 주시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이 얼마나 고난 받았습니까? 우리를 위해서. 도살당하였던 것같은 어린양이다. 일찍 죽임을 당한 것같은 어린양이다. 바로 제물로 드려진 어린양입니다. 이것이 문자 그대로 어린양을 의미합니다. 사도요한은 이 어린양이 목이 따진채 피를 흘리는 모습을 묘사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있는 십자가의 상흔들을 묘사한 것입니다. 그때 피가 나지 않았다면 그 십자가에서 입은 상처 손과 발의 못 자국과 그 가슴에 있는 허리에 있는 창 자국을 묘사한 것 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구속의 증거로 십자가의 상흔들을 영원에서도 지니고 계실 것을 보여 준 것입니다. 여러분 찬송에 보면 그의 못 자국을 보아 알겠네.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사도 바울과 사도 요한이 증거한 것처럼 앞으로 주님 오실 때 주님의 형상으로 동일한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라고 말씀했죠? 그러면 주님과 똑같은데 어떻게 구별하겠습니까? 주님과 이 하나님이 자녀들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겠습니까? 그 분은 손과 발에 못 자국이 있고 옆구리에 창 자국이 있는데 이거 아니면 그분이 예수님인 걸 알지 못한다. 이걸 생각하면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황송하고 이건 정말 주장하기 힘든 말씀이죠? 그러나 분명 하나님의 말씀에 그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신부기때문에 동일한 형상으로 변화될 것이다.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날이 되면 우리도 그리스도와 동일한 형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분명히 사도 요한과 사도 바울이 증거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자 그러니 하늘에서 유일하게 불완전한 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일지 모릅니다. 여기 불완전하단 것은 무슨 죄나 흠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한 몸에, 그 분이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시기 전, 십자가 수난의 일부인 못 자국과 창 자국을 여전히 지니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 받으신 몸은 십자가 상흔들을 여전히 지니고 계실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영원에 들어가서 수십억 년 수백억 년에 이르러도 우리가 이 땅에서 겪은 모든 문제들 재난들을 오래 전에 잊었을지라도 우리는 보좌를 지날 때마다 우리의 죄들과 구속의 흔적을 지니신 그분을 여전히 뵙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영원토록 주님께 감사하고 찬송하지 않겠습니까? 그 은혜의 영광을 찬양케함이라고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1장에 분명히 기록했습니다. 그 은혜를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 은혜를 영원히 찬송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에 가서 우리가 할 일인 것입니다. 만일 영원에서 자기가 죄인이었을 때에 주님께서 그를 위하여 성취하신 일들을 망각하려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그가 상흔을 여전히 지니신 예수 그리스도를 뵐 때마다 자기가 죄인 이었으며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받았다는 것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 하겠습니까. 계속 눈을 감고 하늘의 보좌를 생각해 보세요. 일찍 죽임당하였던 것같은 어린양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요. 우리 때문에 못 자국과 창 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상해 보십시요. 지금 기도해 보십시요. 지금 주님 앞에 은혜를 구해 보십시요. 성령 안에서 여러분도 보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영 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육신으로는 떨어져 있지만 영으로는 하나라 그랬습니다. 우리는 누구든 감옥에 있든지 어디에 있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성도들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을지라도 주님의 몸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주님의 몸이 실질적으로는 물질적으로는 하늘에 있습니다. 그의 영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믿는 자들 속에 있죠? 그래서 연결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목 잘린 시체가 아니란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영 안에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모습을 보고 감사하게 되고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주님의 고난을 생각할 때 우리의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주님 앞에 감사함으로 고백해야 될 것입니다
. 자 8절과 9절을 보면 네 짐승과 장로들이 하나님 앞에 경배드리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가그책을취하니네짐승과스물네장로가각자하프와향으로가득한금호리병들을가지고그어린양앞에엎드렸으니그향은성도들의기도라. 그들이새노래를부르며말하기를주께서그책을취하시며그봉인들을열기에합당하시니이다. 이는죽임당하셨던주께서하나님께로각족속과언어와백성과민족가운데서우리를주의피로구속하여] 주의 피를 의지하지 않고는 아무도 하늘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선행을 해보십시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 선행하는 것 때문에 여러분이 이 땅에서는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피를 신뢰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하늘에 있는 성도들은 예수의 피밖에 어떤 것도 노래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교회에서 노래하는 어떤 성사나 아베 마리아도 노래하지 않습니다. 바로 예수의 피만을 찬송합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1장 14절과 20절에 이렇게 증거를 했습니다. 그 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죠? 그안에서보혈을통하여구속곧죄들의용서함을받았느니라. 바로 그 피 때문에 우리가 죄와 사망과 지옥으로부터 끄집어 냄을 받았습니다. 딜리버(deliver) 됐습니다. 구원받았습니다. 십자가의 보혈을 통하여 화평을 이루고 땅에 있는 것이나 하늘에 있는 것이나 그에 의하여 자신과 화해하는 것이라. 이 얼마나 감격적인 말씀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절대로 잊어버려서는 안될 것입니다.
계속해서 5장 10절을 보겠습니다. [우리하나님앞에우리를왕들과제사장들로삼으셨음이니우리가땅위에서통치하리이다라고하니라.] 통치하리라. 이것은 앞으로 할 것입니다. 주님이 오실 때 주님과 함께 다스릴 것입니다. 성경을 바꾼 사람들이 많습니다. 천년왕국을 믿지 않고 영적으로 푸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지금 땅에서 통치한다고 그럽니다. 아닙니다. 땅에서 어떻게 통치를 합니까? 이 땅에서 통치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오히려 정사와 권세와 어둠의 주관자들은 마귀에게 속해 있습니다. 우리는 정치에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속한 자들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 너희를 핍박할 것이라 했습니다. 이 땅에서 통치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성경을 변개하여서 이 땅에서 영광을 누려야 한다. 잘먹고 잘 살아야 한다. 부자로 살아야 된다. 좋은 차를 타고 다녀야 한다. 좋은 집에 살아야 된다. 아브라함도 부자 아니었냐?그러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구약시대입니다. 지금은 신약시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십자가를 지고 어려움을 다 감당해내고 가서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핍박을 받아야 합니다. 세상이 나를 핍박한 것처럼 너희도 핍박할 것이다. 제자가 선생보다 나은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선생인 주님도 핍박하며 바알세불이라 했는데 어찌 너희를 핍박하지 않겠느냐. 지금 십자가를 감당해야만 면류관을 쓸 수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그 분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 그분의 십자가를 지셔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나를 따라 오는 자는 나의 제자가 될수 없느니라. 지지않고 따라가면 아무 소용 없어요. 아무리 찬송 잘하고 예배 잘 드리고 봉사를 많이 해도 십자가를 버리고 혼자 따라가는 사람은 나의 제자가 될수 없다. 바로 고난받는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과 함께 하늘이 아닌 땅에서 천년 동안 통치함으로써 이 땅에서 고난 받은 모든 것들을 보상 받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이 상은 reward가 아니라 table입니다. 밥상을 베푸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잘먹지 못하고 고통 받은 사람들에게 테이블을 베푸는 것입니다. 영어로 성경을 잘 보십시요. 그것은 절대로 상급이 아니라 테이블, 밥상입니다. 영적인 통치, 하늘의 통치가 아닙니다. 땅 위에서 통치. 하늘에 올라가면 우리는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삽니다. 하늘에서 어떻게 통치합니까? 하늘에서는 주님과 함께 주님의 신부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2장 12절에 [우리가참으면우리도그와함께다스릴것이요우리가그를부인하면그도우리를부인할것이라.] 그와 함께 어디서 다스릴 것입니까? 바로 땅에서 다스립니다. 이것이야말로 믿고 주의 일을 넘치게 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상급인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1장 15절 보니 [그후에일곱째천사가나팔을부니하늘에서큰음성들이있어말하기를이세상의나라들이우리주와그의그리스도의왕국들이되어서그분이영원무궁토록통치하시리라고하더라.] 언제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까? 스가랴서 14장 1절과 9절에 보면 그의 발이 그 날에 예루살렘 앞 동편에 있는 올리브 산 위에 서시리니… 주께서는 온 땅, 지구입니다. All the earth, 지구를 치리할 왕이 되시리니 그날에는 한 분 주께서 계실 것이며 그의 이름 하나만 있으리라. 다윗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이렇게 경고합니다. 어찌하여 이방이 분노하고 백성들이 헛된 일을 꾀하는가? 하늘에 앉으신 분이 웃으실 것이요 주께서 그들을 조롱하시리로다. 내가 나의 거룩한 산 시온에, 예루살렘이죠. 내 왕을 세웠도다.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예수님께 입 맞추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노하실 것이요 그가 조금만 격분하셔도 너희가 그 길에서 망하리라. 그를 신뢰하는 모든 사람은 복이 있도다. 시편 2편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다음 시간에 좀 더 자세하게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이 소망을 붙드는 분이 복이 있습니다. 그래야만 이 땅에서 고생하는 것이 문제가 안됩니다. 우리는 영원한 축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잠시 잠깐 받는 이 고난은 앞으로 올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 이 말씀의 뜻을 깨닫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