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 동안도 주 안에서 평안하셨습니까? 오늘도 우리 주님이 말씀하신 예언의 말씀 요한계시록을 공부하는 시간입니다.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된 말씀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때가 가까움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반드시 오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천 년 전에 성도들이나 지금의 성도들이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기 때문에 구원받은 사람들의 소망은 디도서 말씀에 있는 것처럼 [복된 소망, 위대한 하나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나왔을 때 그들은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시 돌아갈 수 없고 오직 소망은 가나안 땅밖에 없었습니다. 여호수아를 통하여 들어가는 가나안 땅밖에 없었죠. 마찬가지로 지금 구원받은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김 받고 모든 죄를 용서함 받고 성령을 통해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미 세상에서 떠난 사람들이죠? 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영은 에베소 2장에 있는 것처럼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히셨다]고 그랬습니다. 영적으로 앉히셨죠? 그러기 때문에 주님의 몸은 하늘에 있고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몸은 이 땅에 있지만 그러나 영을 통해서 성령과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영적인 몸이 되고 예수님은 머리가 되시는 거죠. 그래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다. 이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 우리의 소망은 주님이 오셔서 하늘과 땅을 회복하시고 하늘에서 뜻이 이룬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짐으로써 하늘과 땅이 그리스도 안에서 죄도 없고 마귀도 없고 악한 자도 없는 의가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되고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은 새예루살렘에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은 받았지만 거듭나지 못한 유대인들은 남은 자들이 되어서 이땅에서 영원히 제사장 민족이 되는 것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고 열두 사도들은 열두 지파의 보좌에 앉아서 그들을 영원히 통치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무조건 하늘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이땅에 주님이 오실 때 성도들도 함께 와서 천년 동안 주님과 함께 다스리는 기간이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거듭난 성도들이 이 땅에서 일한 만큼 주님이 주시는 상급입니다. 이 상급은 통치권을 말씀합니다. 왕같은 제사장으로서 믿지 않은 사람들 죄인들 소망없는 사람들을 복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해서 저들의 죄를 용서받는 길을 열어주는 제사장 역할을 한 사람들은 결국 왕이 되어서 주님과 함께 더불어 다스린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9장에서 이런 수많은 성도들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주님을 따라서 이 땅에 올것이라고 했고 사도바울은 골로새서 3장에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스럽게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또 주께서 그들을 데리고 오신다고 했습니다. 유다서에서도 에녹을 통해서 [주께서 수만 성도와 함께 오신다]라고 증거했습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앞으로 될 일들을 우리가 알지 못하면 이 지상에 사는 동안에 한시도 평안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육신이 주는 평안은 잠시잠깐이면 사라져 버리지만 주님이 주시는 평강은 어느 누구도 뺏어갈 수 없기 때문에 참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리면서 살아야 될 것입니다.
자 오늘은 계속해서 요한계시록 14장 4절부터 보겠습니다. 여기서는 14만 4천에 대해서 나옵니다. 이들은 7장에서 먼저 나왔는데 하나님의 인을 받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죽지 않고 환란 때 남아서 전도자로서 활약하며 여자와 더불어 몸을 더럽히지 않은 남자 처녀들(동정)입니다. 요한계시록 14장에서 이들은 임무를 마치고 하늘의 시온산에 올라가 있습니다. 그들의 이마에는 아버지의 이름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 14장 4절부터 한 절씩 읽어 가면서 말씀을 상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들은 여자들과 더불어 더럽혀지지 아니한 자들이니 이는 그들이 동정들임이라.] 동정들, vergins는 남자 처녀들이란 말입니다. [이들은 어린양이 어디로 가든지 따라가는 자들로 하나님과 어린양께 첫열매들이 되어 사람들 가운데서 구속을 받았느니라.] 선택된 모든 사람들 14만 4천 명, 이 사람들은 각각 열두지파에서 1만 2천명씩이었습니다. 이들은 여호와 증인도 몰몬교도 안식교도도 아닙니다. 이들은 미혼 남성으로서 여자와 더불어 더럽혀지지 아니하였다는 것에 우리가 주목을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이들은 카톨릭 신부나 수도승이 아닙니다. 그들은 남성 그리스도인들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신부 가운데 한 사람도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 어디에도 그리스도인들이 동정들로 언급된 곳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뜻하는 그리스도의 몸은 고린도후서 11장 2절에서 순결한 한 처녀로 불리고 있습니다. 교회들과 거듭난 성도들은 많지만 단 한 사람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몸이죠? 거듭난 성도들이 주님의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온 세상에는 교회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을 뿐이죠?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녀도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주님의 몸의 지체가 될 수 없습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교회의 멤버가 될 수 없습니다. 교회의 멤버라는 것은 주님의 몸의 지체인데 아직 생명을 얻지 못한 사람은 교회에 나와도 또 직분이 있어도 그 사람은 교회의 멤버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나 멤버를 삼으면 안되죠? 미국의 전통적인 교회들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교회의 멤버로 등록시키지 않습니다. 한국 교회들은 그냥 오기만 하면 오는 날부터 등록을 받는데 함부로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몸된 교회, 즉 생명을 받은 사람, 예수의 피로 씻김 받은 사람들을 세워야죠.
자 마태복음 25장 열 처녀 비유가 나오죠? 이것도 우리가 많이 들은 말씀인데 조금 바로 잡아야 되죠. 읽어 보겠습니다. 1절 [그때에 천국은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명의 처녀들과 같으니라.] 한 처녀가 아니라 열 명의 처녀들과 같으니라. 즉 열 명의 처녀들은 복수죠? 보라, 신랑이 오니. 신랑이 올 때 그들은 결혼하기 위해서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신랑을 맞으러 나갑니다. 6절에 [한 밤중에 소리가 나기를 ‘보라 신랑이 오니 나가서 맞으라.’ 하더라.] 이들은 대 환란 때 일어날 유대인 성도들입니다. 이들은 환란 때 끝까지 견뎌서 신랑이 오실 때 그를 맞기 위해 들림 받는 처녀들입니다. 어떻게 보면 들러리들이죠? 신부는 하나고 들러리들은 여러 명인데 유대인들이에요. 이들은 그리스도가 교회와 함께 올 때 그들을 맞이하는 유대인 처녀들이지 하나님의 몸을 구성하는 참된 신부, 교회의 구성원이 아닙니다. 오늘날 은혜시대 교회 구성원이 아닙니다. 결혼식에서 보면 들러리들이 입장하고 그 다음에 신랑이 입장하고 나중에 아름다운 신부가 입장하죠? 그때 다 일어서서 박수를 치지 않습니까? 가장 주님이 귀하게 보시는게 신부죠? 그래서 유대인 처녀들은 환란 때 끝까지 견뎌서 모세의 율법을 지키고 모세의 노래를 부르는 처녀들입니다. 지난 시간에 신명기 32장의 말씀을 읽어 드렸죠. 이게 모세의 노래입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이 심판하고 땅을 차지하시려고 돌아 오실 때 그를 맞기위해 나오는 유대인 처녀들입니다. 성경은 교회시대 이방인 무리들을 위해서만 쓰여진게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공부하는 구절은 교회와 상관이 없는 거죠. 교회는 이미 하늘로 들림받은 후의 얘기입니다. 이 성경을 잘 나누어서 진리의 말씀을 공부하지 않으면 안되죠. 에덴동산 시대가 있었죠? 그 다음 양심 시대가 있었죠? 그리고 율법 시대가 있었죠? 또 은혜시대에 우리가 지금 살고 있고, 앞으로 환란시대가 오고, 환란 시대가 끝나면 주님이 오셔서 심판을 하시고, 심판이 끝나면 천년왕국 시대가 이루어지고, 그것이 끝나게 되면 영원세계가 펼쳐지는 이 시대적인 구분을 우리가 잘해야 합니다. 물론 은혜시대뿐만 아니라 모든 시대에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죠. 참고로 시편 45편 13,14절에 보면 처녀들이란 말씀이 나오죠. 시편도 대부분이 성령께서 다윗을 포함한 시편 기자들을 통해서 휴거. 환란, 재림, 천년왕국 때의 일, 영원한 세계에서의 모든 일들을 다 쓰게 하셨어요. 그래서 다윗이 기도할 때 자기를 위해 기도했는데 성령이 그의 입을 사로잡아서 앞으로 될 일들을 다 예언하게 했지요? 그래서 주님이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누가복음 24장에서 [모세의 율법과 선지서의 글과 시편에 나에 관하여 기록된 모든 말씀이 이루어져야한다.]그러기 때문에 참 모세오경을 비롯해 구약 성경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이에요. 그가 초림해서 어떻게 돌아가시고 부활하시고 또 어떻게 다시 심판하러 오시고 어떻게 우리를 통치하시고 어떻게 영원한 세계에서 하나님의 자녀들과 사시는가? 그래서 요한복음 14장에 보면 내가 처소를 마련하러 간다는 말씀은 새예루살렘을 준비하러 가신다는 말이죠? 그러나 거기 살기 전에 주님은 하나님의 자녀들, 신부와 함께 오셔서 그들이 이 땅에서 주님을 위하여 고난받은 만큼 상급을 주시는 즉 주님과 함께 다스리는 왕비같은 존재로, 참 우리 주님은 왕이시죠? 그래서 우리는 왕비같은 존재로 주님과 함께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그때가 되어야 아 그렇구나! 알게 되겠지요? 지금은 상상이 가지 않죠? 신비로운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미 셋째 하늘에 갔다 와서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는 [지금 받는 고난은 앞으로 올 영광과 비교할수 없디고] 했습니다. 상상도 못한다는 말이죠? 지금 우리가 좋아하는 것, 맛있다고 하는것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은 아무리 좋아도 그때와는 비교도 안되요. 그때 죄없이 정말 깨끗한 상태에서 누리는 행복감 그 기쁨은 상상할수 없죠.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고난을 받을 때에 성령을 통해서 평강을 주실 때에 그 기쁨을 조금씩 조금씩 맛보기는 하죠? 그래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5장에서 열매 맺으라. 열매 맺지 못한 가지는 찍혀서 불에 태워진다. 내가 이 모든 말을 이르는 것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머물러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케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기쁨이 어떤 것이겠습니까? 주님의 기쁨은 완전한 기쁨이죠. 환경과 느낌에 좌우되는 기쁨이 아니죠. 주님의 기쁨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요 우리가 몸을 벗고 변화되서 부활, 휴거될 때에 그때에 가서 비로서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순간을 바라보면서 지금 어렵고 힘들지라도 우리가 끝까지 이 믿음을 지키면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세상과 간음하지 않고 순결한 주님의 처녀로 살아야 겠지요?
시편 45편 13,14절을 한번 읽어 드리겠습니다. [왕의 딸이 안에서 온갖 영화를 누리나니 그녀의 옷은 금으로 수놓았도다. 그녀가 수놓은 옷을 입은 왕께로 인도될 것이요, 그녀를 따르는 그녀의 동료 처녀들도 왕께로 인도되리니] 여기 보면 처녀들이 또 나오죠? 마태복음 25장에 열 처녀가 나오는 것처럼 처녀들이 나옵니다. 결국 시편 45편에 나오는 처녀들은 왕의 딸, 그리스도의 신부이자 왕비된, 왕의 딸을 뒤 따라가는 처녀들이란 것을 알수 있어요. 들러리들이죠. 그들은 그리스도의 신부 안에 들어가 있는게 아니죠? 자 14만 4천 순결한 동정들은 결코 카톨릭 신부도 아니고 여호와 증인, 안식교, 몰몬교 신자가 아니란걸 알수 있죠. 또 솔로몬 아가서 6장 8,9절을 보게 되면 동일하게 왕의 신부가 있고 들러리 처녀들이 있다는 것이 나오죠? 성경 전체에서 요한계시록의 말씀이 다 풀리죠? 그러니까 결국은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구약성경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솔로몬의 아가서 6장 8,9절을 제가 한번 읽어 드리겠습니다. [왕후가 육십이요 후궁이 팔십이요 처녀들은 셀수도 없으나 나의 비둘기, 나의 더럽혀지지 않은 자는 오직 하나요, 그녀는 그 어머니의 외동딸이며 그녀를 낳은 어머니의 귀한 사람이라. 딸들이 그녀를 보고 그녀를 축복하니 정녕, 왕후들과 후궁들과 그들이 그녀를 칭찬하는도다.] 여기 분명히 한 사람이 나오죠?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나의 비둘기 나의 더럽혀지지 않는 자는 오직 하나다. 순결한 처녀 교회를 얘기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성도들은 주님 오실 때까지 말씀과 주님의 피로 씻김받고 성령으로 기름부음 받아서 주님 오실 때 아름다운 신부가 되는 준비를 해야죠? 말씀으로 순종하고 이제는 세상에 물들지 않아야 되는데 참 안타깝습니다. 요즘에 구원받은 사람들도 보면 세상 따라가느라 정신들이 없어요. 에베소서 4장에 있는 말씀처럼 말씀에 의한 물로 씻김 받아서 정말 순결한 처녀가 되어야 할텐데 참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연세드신 분들은 이것을 알고 신부 단장을 잘하죠? 천국제 화장품으로, 주님의 씻기는 피가 있죠? 말씀 안의 생명수가 있죠? 그리고 어떤 향수보다도 더 향기나는 성령의 기름부음과 성령의 충만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사도바울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자 아가서에서 나오는 한 사람 이게 바로 그리스도의 신부죠? 그래서 요한계시록 14장의 동정들(vergins)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 (Authorized 1611년판 최초의 영어 성경 제임스왕 때 종교 개혁판으로 만든 영어 성경)이나 한글 킹제임스성경에서 분명히 확인됩니다. 그런데 다른 개역 성경이나 번역 성경들은 그것을 잘 나타내지 않은것을 봅니다.
14장 4절을 다시한번 읽으면 [이들은 여자들과 더불어 더럽혀지지 아니한 자들이니 이는 그들이 동정들임이라.] 14장 5절 보겠습니다. [그들의 입에서 교활함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흠이 없기 때문이라.] 이 구절은 재림 직전의 한 장면으로 보고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 직전입니다. 환란때는 마태복음 24장에 있는 것처럼 끝까지 견뎌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그 날을 감하지 않으면 아무도 구원받을 자가 없을 정도로 환란이 엄청난 것을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알 수가 있고 심지어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인 마태복음 24장에서는 태양이 검은 천처럼 새까맣게 되고 빛을 발하지 않고 달은 피빛으로 된다고 했습니다. 얼마 전에 달이 월식을 하는데 크림슨레드(creamson red)로 바꼈죠? 이것을 예사로 볼 것이 아닙니다. 왜 끝까지 견뎌야 합니까? 짐승의 표 666을 받지 않기 위해서죠? 표를 받지 않기 위해서 고통 속에서 땅의 풀뿌리를 캐먹으면서까지도 사탄의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이북의 지하교회 성도들이 지금 그렇게 하고 있죠. 모세의 율법을 지키고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구세주로 믿어서 환란 때 구원받는 거죠. 그들은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에 끝까지 행위로 견뎌야 하는거죠. 지금 은혜의 시대는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받죠.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선물로 받는 거에요. 정말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는 도저히 회생할수 없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죄를 이길 수 없고 내 안은 죄로 가득찼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선 방법이 없다. 그리고 주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구원을 받죠.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한편 강도는 이것을 깨닫고 다른편 강도에게 우리는 우리가 행한 걸로 죽지만 이분은 아무죄가 없는 분이다. 이렇게 죄없는 분이 자기를 위해서 돌아가시는 것을 믿고는 [주여 주의 나라가 임할 때 나를 기억하소서.] 이렇게 말할 때 주님께서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구원받은 거죠. 그는 세례나 침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백한 그 순간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환란 때가 되면 더이상 은혜의 복음이 없지요. 그때는 천사들이 영원한 복음을 전한다고 요한계시록에 나와있고 그 복음의 내용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섬기라] 그때 사람들이 악해져가지고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장면을 앞으로 볼것입니다. 마태복음 22,24,25장에서 비슷한 말씀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시대를 잘 분별하지 못하면 마태복음 24장에 있는 말씀을 혼동하죠.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이 무너지는 사건, 휴거의 사건, 재림의 사건, 환란 때에 일어나는 세가지 사건을 주님이 동시에 말씀하셨기 때문에 특별히 마태복음 24장은 성령님의 기름부음이 없이는 깨달을 수 없고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잘 나누어서 보면 분명하게 알수가 있습니다.
자 계속해서 요한계시록 14 장 6,7절을 보겠습니다. [또 내가 보니 다른 천사가 하늘 한 가운데로 날아가는데 그가 땅에 사는 자들과 모든 민족과 족속과 언어와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큰 음성으로 말하기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분의 심판의 때가 이르렀음이라.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의 원천들을 지으신 그분께 경배드리라.” 고 하더라.] 금방 말씀드린 대로 환란 때는 은혜의 복음이 아니고 영원한 복음인데 천사들이 전하죠? 지금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전하지만 그때는 그리스도인들이 전부 올라가고 없기 때문에 하늘 한 가운데를 날아가는 천사가 복음을 전하는데 이 복음은 바울이 전한 복음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그러나 은혜의 시대에는 그리스도의 복음밖에 없죠. 그래서 갈라디아서 1장 8절에 성령께서 사도바울을 통하여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것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으리라.] 하늘에 있는 천사가 계시록에서는 영원한 복음을 전하죠. 그러나 이것을 지금 전하면 안되죠? 성도들이 휴거되고 난 다음에 천사들이 전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천사들이 은혜의 복음을 전할 수가 없죠. 천사들은 죄 가운데 있다가 구원받은 경험이 없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증거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같은 죄인들은 이 은혜를 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받은 것을 거저 주는거죠. 간증하는 거죠. 이것이 바로 복음을 전하는 거 아닙니까? 복음 전하는 것은 내가 받은 은혜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죄를 용서해 주셨다. 그리고 내가 그분을 받아들여서 성령께서 내 안에 들어 오셔서 내가 거듭났다. 이제 나의 소망은 하늘에 있다. 이거 너무나 쉬운거죠. 그런데 왜 전도가 안됩니까? 둘 중의 하나입니다. 거듭나지 않았거나 기도하지 않아서 능력을 잃어버렸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오늘 이 시간에 만일 이 세상을 떠나신다면 여러분 분명히 주님을 만날 소망이 있습니까? 99%도 아니고 100%여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안에 주님이 계시는 분은 그것을 확실히 알죠. 누가 가르켜서 되는게 아닙니다. 어떤 분은 내가 구원을 받았나요? 라고 묻는 분이 있어요. 그러면 저는 그래요. 아직 구원을 못받은 것 같으니 구원받고 확신 가운데 거하라고 해요. 성령이 임하시면 그 성령은 예언의 영이기 때문에 나 하나 구원받은 것 분명히 예언해 주십니다. 그래서 [성령이 오시면 모든 진리로 인도해 주시고 앞으로 장래 일어날 일들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신다]라고 했습니다. 너희에게는 구원받은 사람들을 말하는거죠. 구원받은 사람들이나 그걸 알죠.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니고 직분이 있어도 심지어는 목회자의 직분이 있더라도 거듭나지 못하면 알 수가 없습니다. 옛날 바리새인들이 그 당시에 다 목회자들이요 성경 박사들이었죠? 그러나 거듭나지 못하였고 겨우 니고데모 한 사람만 겸손하게 와서 말씀을 들었을 때 거듭나게 됐고 주님이 돌아가셨을 때 침향(Aloe)을 이백근인가 가져와서 주님의 장사에 써달라고 했고 주님을 비판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책망하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자 여기 갈라디아서에서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했는데 참 갈라디아서 1장이 마태복음 1장부터 요한복음 21장까지 은혜복음을 말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이 말씀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 1장부터 27장까지는 주님이 돌아가시기 전 율법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잘 알아야 됩니다. 신약은 예수님이 피를 흘리시고 돌아가신 다음에 신약시대가 된거죠. 신약은 피로 된 새 언약, 율법 시대의 동물의 피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된 언약입니다. 그렇다고 신약 마태복음 1장에서 요한계시록 22장 전체가 은혜 복음은 아닙니다. 주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마태1장~27장)는 은혜복음을 전하지 않았고 또 오순절 날(사도행전 2장)에도 유대인들에게 우리와 똑같은 은혜 복음을 아직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죄를 회개할 때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고 말씀했죠. 그러나 은혜시대에는 사도바울을 통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계속해서 더 보죠? 자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마태복음 10장에서 제자들에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만 가라고 하셨죠? [너희는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말고 사마리아의 고을로도 가지말고 오직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에게 가라.] 여하튼 유대인의 왕으로서의 왕국 복음을 전파하신 거죠. 이때는 은혜의 복음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살아계실 때는 은혜의 복음을 전하지 않았죠. 그래서 갈라디아서 1장에 나오는 복음은 계시록 14장의 천사가 전한 복음이 아닙니다. 갈라디아서 1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복음을 전했죠.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믿기만 하면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은혜 복음을 전했고 [그외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자 오순절날 사도 베드로를 통해서 설교한 것을 보십시다. 어떤 복음을 전했나? 사도행전 2장 38,39절을 보면 [베드로가 그들에게 답변하기를 “회개하라, 그리고 죄들을 사함받은 것으로 인하여 너희 각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 여기에 성부 성자 성령이라고 안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고 했죠? [그리하면 너희가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에게 한 것이며] 이스라엘 집이죠? [또한 먼 곳에 있는 모든 사람, 즉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에게 하신 것이라.”고 하더라.] 결국 사도행전 2장의 전체 문맥은 이스라엘 집에 주어진 것입니다.. 그때 오순절날에는 이스라엘의 여러 지역에 (약 14개군데)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만 이야기 했고 사도베드로는 [이스라엘의 온 집이 분명히 알 것은(36절)]이라 그랬습니다. 사도행전 2장의 복음도 은혜 복음이 전파되기 전입니다. 그들은 성령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습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야만 성령이 임한다고 사도베드로가 복음을 전한거죠.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에서 하나님의 은혜복음을 말하고 있죠. 이 갈라디아서 1장은 오순절이 지나고 수 년이 지난 후에 쓰여 졌습니다. 그래서 오순절 때 사도베드로도 이 은혜의 복음이 뭔지 몰랐습니다. 사도바울이 이 은혜의 복음을 받아 가지고 다른 사도들, 베드로에게도 그것을 가르쳐 줬죠. 그래서 사도행전 15장 11절 보면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 집에서 이방인들이 구원 받는 것을 보고 이제 그걸 깨닫고 한 말이죠.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을 믿으며 그들도 마찬가지니라.] 결국 사도바울이 사도 베드로에게 이 복음을 가르쳤죠. 왜냐하면 주님께서 바울에게 은혜의 복음을 직접 주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순절과 사도바울의 은혜의 복음 사이에는 과도기가 있습니다. 또 주님이 살아계실 때 마태복음 1장에서 27장까지도 과도기 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잘 알고 가르쳐야죠. 지금은 은혜의 시대 마지막에 와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이야말로 은혜를 받지 못하면 환란 때로 넘어가서 엄청난 고초를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공부하게 되면 우선 내 자신이 구원을 받았나 다시 확증하게 되고 그 다음에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이런 열심이 생기게 되고 주님의 마음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절대로 요한계시록은 무서운 말씀이 아닙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에게는 무서운 말씀이죠. 그러나 분명히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무서운 말씀이 아니라 축복의 복음이죠. 아! 우리 주님이 이런 환란이 오기 전에 나를 데려가시는구나. 이런 위로의 말씀이죠. 그러기 때문에 성경을 잘 깨닫지 못하면 괜히 두려워지게 되는데 공부하셔야죠. 자 여러분 오늘 이 세상을 떠나신다면 분명히 주님과 함께 하실 확신이 있습니까? 이 확신을 분명히 하셔야 합니다. [믿는 자 속에는 증거가 있고 증거는 바로 영원한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 말씀을 들으신 후에 주님을 영접하고 구원받으심으로 영원한 축복에 들어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