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3 장 16 절부터 보겠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말하기를 “오 느부캇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게 담대히 말하나이다. 만일 그렇게 된다 해도 우리가 섬기는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불타는 뜨거운 용광로에서 우리를 구해 내실 수 있으며, 오 왕이여, 그분께서는 우리를 왕의 손에서 구해 내실 것이니이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되지 아니할지라도, 오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할 것이며 왕께서 세우신 금상에 경배하지도 아니할 것을 왕께서는 아소서.” 하더라. 그러자 느부캇네살이 분이 가득 차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향한 그의 얼굴 모양이 변하더라. 그러므로 그가 명령하여 말하기를, 그 용광로를 평상시에 뜨거웠던 것보다 칠 배나 더 뜨겁게 하라고 하더라. 왕이 자기 군대에서 가장 힘센 사람들에게 명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묶어서 불타는 뜨거운 용광로 속으로 던져 넣으라고 하니, 이사람들이 그들의 겉옷과 속옷과 모자와 다른옷들을 입은 채로 묶여서 불타는 뜨거운 용광로 가운데에 던져졌더라. 왕의 명령이 엄격하여 용광로가 심히 뜨거우므로 불꽃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들어 간 사람들을 태워 죽였더라. 그리고 이 세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묶여서 불타는 뜨거운 용광로 가운데로 떨어졌더라. 그때 느부캇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그의 자문관들에게 일러 알하기를 “우리가 세 사람을 묶어서 불 가운데로 던지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그들이 대답하여 왕에게 말하기를“오, 왕이여, 옳소이다.” 하더라. 왕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보라, 내가 보니, 네 사람이 풀려서 불 가운데서 걸어다니고 있는데, 그들이 다치지도 않았으며, 그 넷째의 모습은 하나님의 아들과 같도다.” 하더라.]
참 이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 모습입니다.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위대한 간증입니다. 이들은 당당하고 또 흥분도 하지 않고 잠잠한 가운데 그러면서도 두려움이 없는 태도로 권위있는 목소리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렇지요. 그리스도인들의 간증은 이런 간증을 해야합니다, 뭐, 열심히 뭘 했더니 하나님이 돈을 많이 주시더라 이런 간증이 아니라 정말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간증하는 것이지요. 여기 느부갓네살이 너희를 구해내신 신이 누구겠느냐? 하는 질문에 이들의 말이 얼마나 담대합니까? 여러분, 느부갓네살 왕은 그 당시에 엄청난 왕이었습니다. 어떻게 감히 그 앞에서 그런 말을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허락해서 그를 세워놨지요. 그런데 느부갓네살은 교만했어요. 교만하다가 나중에 경을 치는데 이 세사람은 우리가 왕께 대하여 담대히 말하나이다. 우물쭈물하지 않았습니다. 즉시 입을 열었습니다. 한참 있다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움찔하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은 세상에 히틀러 말이죠. 그의 부하들도 히틀러에게 맹세를 하고 말이죠. 그들 하고는 전혀 다릅니다. 이 담대함이란 것은 두려움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전혀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말소리 목소리도 떨리지 않았다는 예기죠. 그대로 얘기했다는거죠. 이 사람들은 우리를 던져 넣어도 하나님이 우리를 구해내실 수 있다. 이렇게 얘길 했습니다. 그런데 뭐라고 말했습니까? 그렇게 되지 아니할지라도 오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겠나이다. 아,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말이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하면 우리의 책임이 끝나는거에요. 살든지 죽든지 말씀에 순종하면되는거예요. 아픈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도 우리는 기도하면 되는거지 하나님이 고치시고 안고치시고는 하나님 마음이에요. 안고쳐주셨다고 실망할 것도 없고 고쳐주셨다고 우쭐댈 것도 없어요. 하나님이 하시는거니까. 그런데 요즘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냐면 뭐가 안되면 하나님이 능력이 없는건가 생각하는 거에요. 이들은 하나님이 건져낼 수도 있고 안건져 낼 수도 있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절대로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않겠다.고백하는 거에요. 이게 바로 하나님을 기뻐하는자들의 태도죠. 그렇기때문에 사람들이 기도하다가 뭐가 안되잖아요. 뭐가 안되면 그냥 믿음이 떨어져가지고 겁을 집어먹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놀리는것 같습니다. 그러나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그다음에 하나님이 알아서 하십니다. 어떤 기도를 할때 하나님의 뜻대로 할때 하나님의 말씀에 이렇게 기도하라고 할때 그것이 이루어지던 안 이루어지던 상관이 없어요. 당장 이루어지던 한달후에 이루어지던 10 년후에 이루어지던 상관이 없어요. 지금까지 목회를 하면서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하려고 노력했는데, 그 말씀으로 인도하는데 어떤 말씀은 말이죠. 20 년만에 이루어지더라고요. 어떤 말씀은. 그러기 때문에 그 말씀을 붙잡고 기도할 때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반드시 이루어지는데 또 마찬가지로 우리가 믿지 않는 가족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는거 있잖아요. 분명히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이루어지지 않는게 아니에요.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지 절대 우리가 생각하는 그때 우리의 방법으로 안하십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뭐예요. 말씀이 그렇다하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너와 네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이것은 바로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위해서 기도하면 되요. 말씀에 있는 것들을 가지고 기도해야죠. 내 생각들을 가지고 기도하면 기도가 아니에요. 자, 이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한게 아니에요. 그렇게 아니하실지라도 이럴때 하나님의 능력이 없을지라도 이런뜻이 아니에요. 하나님은 구할 수있다. 이런 능력이 있다. 이렇게 한 다음에 그렇지아니 하실지라도 그 능력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하나님께 완전히 의탁한거죠. 하나님의 능력을 한 터럭 만큼도 의심하지 않았단거죠. 다만 중요한 것은하나님께서 그 당시에 그들을 천국에 올려보낼거냐 그렇지 않으면 그들을 살려낼거냐.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달려있다는거죠.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고 의심치 말라고 그랬죠. 그것은 하나님만 아시는겁니다. 그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들을 용광로에서 구해내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에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어떠하냐 이것이 바로 문제라는거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어떤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가 바로 뭐냐면 하나님의 능력과 상관이 없다는거에요. 하나님의 능력이 없어서 우리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는게 아니란 말이죠. 그런데 사탄이 시험하죠. 아, 이렇게 기도했는데 안 들어주시네. 그래가지고 사탄이 결국 옆에서 속삭입니다. 마치 에덴 동산에서 과일을 먹지 말라 하시더냐? 이렇게 한 것처럼, 아이, 하나님이 기도하면 다 응답해 준다는데 왜그러냐. 이렇게 해가지고 결국 미혹을 합니다. 사탄은 꼭 말씀을 가지고 미혹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을 미혹합니다. 낙심하게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결국은 이것이 바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시험에 들고 미혹에 빠지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그 뜻이 어떤가 이 것만을 알아야되고 그건 하나님밖에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좋지 않은일, 우리에게 응답이 되지 않는 일이 있더라도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면 거기에 순응하면 되는거에요. 그래서 모든 일에 감사하라. 이렇게 하는거죠. 결과에 대해서는 우리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날 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시는거죠. 이 유대청년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금상에 절하는 우를 절대 범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죠.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했으니까.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그 말씀. 그 말씀 하나 붙잡고 순종하기만 하면 그 다음은 하나님이 알아서 하니까. 어자피 사람은 한번 죽잖아요. 그 다음에 심판이 중요하니까. 죽는 것 보다도 심판이 중요한거죠. 그렇기 때문에 이런 믿음을 가진사람은 걸릴게 없어요. 옛날 일제시대 때 신사참배를 해야 되느냐 안해야 되느냐 이걸 얘기할 필요가 없는거에요. 어떻게 그걸 하겠습니까? 그런데 그걸가지고 회의를 했단 말에요. 교회 전체가. 그걸 회의해가지고 아 이거는 우상숭배가 아니다. 그래가지고 가결을 한거죠. 그, 완전히 비겁한 사람들이죠. 그래가지고 모두가 했고 결국은 신사참배를 안한 사람은 주기철 목사를 포함해서 소수의 사람들밖에 없었어요. 오늘날도 마찬가지에요. 그렇기 때문에 합리화시킵니다. 아, 그거 우리가 절은 하지만 마음만 그렇지 않으면 된다. 심지어는 주기철 목사를 일본 순사들이 협박을 하고 고문을 하고 그랬잖아요. 그래도 안되니까 “안하셔도 됩니다. 그러나 집에 차를 타고 가시다가 신사를 지나면서 차 안에서 그냥 묵념만 하십시요.” 그것도 안했습니다. 이렇게 사탄이 속입니다. 이렇게 한 번 속고나면 엄청난 고통이 오는데 그걸 참 모르는거죠. 자, 여기보니까 포로로 잡혀온 젊은이들이 말이죠. 그 당시에 왕중의 왕인 느부갓네살 앞에서 담대하게 얘기하니까. 예를 들면 설명해도 아 좀 봐주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니 안됩니다. 어떻게 봐 줄 수 없습니까. 이렇게 한게 아닙니다. 그냥 앞에 대놓고 우리는 못한다. 그렇게 한거에요. 당신이 날 던져도 못한다. 이렇게 말하니까 얼마나 화가 났으면 얼굴이 변하죠. 권세있는 사람이 말이죠. 자기앞에서 별 것도 아닌 사람이 한마디 하면 얼굴이 싹 변합니다. 얼굴이 푸르락 붉으락 합니다. 당연한거죠. 일곱 배나 뜨겁게 했는데 그게 얼마나 뜨거웠는지 사람들을 던지는 사람들이 불에 타 죽었습니다. 참 그러니까 정말 얼마나 화가났는지 어짜피 일곱 배로 안해도 죽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화가 나가지고 그렇게 했는데 얼마나 화가 났는지 보통 거기에 던질 때는 다 옷을 벗기고 모자도 벗기고 벌거숭이로 던지거든요. 그런데 얼마나 화가났는지 그냥 입은 채로 다 던진거에요. 거기에 들어가면 순식간에 사람이 그냥 녹아 버리죠. 완전히 녹아버려 가지고 아, 그 용광로라는 건 말이죠. 철광석이 들어가도 녹아 내려가는 거에요. 그런데 사람 살하고 뼈 뭐 별거 아니잖아요. 그냥 녹아가지고 자취가 없어지는거에요. 아 그러면 그렇게 될 때 속이 시원할거라 생각했는데 참 보니까 묶어서 했는데도 이 형제들은 가만히 들어가는거에요. 보통 그러면 난리를 치다 들어갈텐데 그대로 들어간거죠. 중세 암흑시대에도 많은 성도들이 장작더미에서 불타서 죽었습니다. 기둥에 묶어놓고 장작더미를 놓고 불에 태웠어요. 그러면 불이 막 타지요. 불이 서서히 타다가 나중에 뜨겁게 타가지고 완전히 스테이크가 되가지고 재가 되는거에요. 이런데도 그사람들이 껄껄껄 웃었어요. 여러분, 오늘날 정말 교회다니는 사람들을 볼 때에 사드락 매삭 아벳느고 같은 사람들이 몇 사람이나 될까요. 다니엘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참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간단해요. 성령이 계시면 할수 있어요. 성령의 능력으로 되는거지요. 우리 힘으로는 절대 안되요. 여러분, 되겠습니까? 우리 힘으로. 절대 안되요. 우리 육신은 절대 이길 수 없어요. 그러나 때가 되면 성령께서 능력을 주시기 때문에 사도바울은 능력주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가 모든 것을 할수 있다고 했어요. 모든 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경을 그리스도가 주시는 능력을 가지고 이겼지, 자기 힘으로 이긴게 아니에요. 우린 유사시에 진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보통 때 보면 별것도 아닌 것처럼 보여요. 연약해 보여요. 그러나 때가 되어 핍박이 오잖아요. 그럴때 강해집니다. 이북에 있는 지하교회 성도들이 바로 그런거죠. 느부갓네살이 얼마나 놀랬겠습니까. 아니 세 사람이 들어갔는데, 결박을 했는데 다 풀려져가지고 그냥 걸어다니고 있고 또 한사람이 같이 있는거에요. 네 사람이 풀려서 불 가운데 걸어다니고 있다. 그런데 이 넷째의 모습은 하나님의 아들과 같도다. 우리 개역에 보면 신들의 아들과 같다 그랬어요. 신들의 아들 같다. 예수님이 거기서 같이 걸으신거에요. 그런데 신학자들이 볼 때에는 신들의 아들인데,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그랬어요. 그런데 신학자들이 볼 때는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거기에 들어가시겠느냐고 생각한 모양이에요. 그래서 신들의 아들이라고 그랬어요. 기가 막힌 얘기죠. 그래가지고 말씀을 바꿔놓았죠. 분명히 킹제임스 성경에는 the Son of God 대문자 the Son of God 그렇게 되있어요. the Son of God, the 라는 것은 정관사에요. 정관사라는 것은 어떤 특정한것을 지목하는 거에요. a 라는 것은 부정관사에요. 그게 뭔가하면, 신들 중의 하나같다. A son of god 그랬어요. 소문자로 이렇게 고쳐놓았어요. 다른 NIV 같은 성경은. 그러니까 이거는 완전히. 지금의 신학자들이 말이죠. 느부갓네살보다 더 못한거에요.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을 안 믿어서 그렇지 하나님을 인정했단 말이죠. 하나님께 경배했잖습니까.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에게까지 경배 했잖아요. 그렇기때문에 이 신학자들이 성경을 바꿔 놓은거에요. 자기들이 이해가 안가면 바꿨어요. 말이 안되는 얘기죠. 구약에서 보면 천사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른 경우가 있어요. 그때는 소문자에요. 그런데 그 천사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킬 때는 대문자로 나옵니다. 여러분 갈라디아서 4 장 14 절 보세요. [ 또 너희는 나의 육체 안에 있는 나의 시련을 무시하거나, 거절하지도 아니하였고 오히려 하나님의 천사같이 곧 그리스도 예수같이 나를 영접하였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이, 바울이 육체에 병이 있었잖아요. 뭐, 다른 사람은 기도하면 병이 펄펄 났는데 바울의 그림자만 지나가도 병이 났는데 자기는 아프단 말에요. 요즘 같으면 뭐라 그러겠어요. 너나 고쳐라 그러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그것을 무시하거나 거절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천사같이 꼭 예수님처럼 그렇게 나를 영접하였도다. 이렇게 말씀한게 있죠. 또 사도행전 27 장 23 절 보면 [내가 속해 있고 또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천사가 간밤에 내 곁에 서서] 하나님의 천사가. 이것도 주님이 나타난 거에요. 주님이 천사같이 나타난거에요. 자, 그러기때문에 이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서 알고 있을리 만무하다. 신학자들이, 아휴, 느브갓네살 같은 왕이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있냐? 사실 느부갓네살이 그들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다니엘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하고 그렇게 했잖아요. 그러니까 참 옛날의 그런 왕들 보다도 고레스왕 보다도 다리오 왕보다도 느부갓네살 왕보다도 오히려 더 많은 신학자들이 하나님을 모르느데도 자기들은 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게 말이죠, 세상 신은 마음을 혼미하게 해가지고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해요. 다시 말해서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배우고 그래요. 그런데 그게 머리에 있는데 머리에 있다가 가슴까지 못가게 만들어요. 왜그런가하면 따지는 거에요 여기서. 그러니까 깨닫지 못하는거에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듣습니까. 얼마나 젊은이들이 말씀을 듣습니까. 그런데도 젊은이들이 깨닫지 못하는것은 여기서 머리에 있는데 마귀가 딱 머리에서 역사해가지고 그럴수가 있느냐. 이렇게 따지니까 학교에서 배운 세상지식 가지고 따지니까 결국 마음으로 못 내려가는거에요. 죄인임을 못 깨달아요. 아무리 복음을 들어도 그들이 죄인임을 못 깨닫는게 그 복음, 왜 예수님이 나 때문에 죽었을까? 뭐 그런게 어딨어. 2 천년전에 왜 날 위해 죽을수 있냐. 거 말도 안된다. 이렇게 하니까 내가 죄인임을 못깨닫는거에요. 이런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 시대 사탄이 정말 끝이 됐기 때문에 한 사람이라도 더 미혹해 가지고 죄인임을 못깨닫게 해서 예수님을 못 믿게 합니다. 입술로만 영접을 하게 만드는거죠. 자, 느부갓네살이 태어나기도 천년 전에 구약시대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있었죠. 여러분 욥기 보세요. 욥기 38 장 7 절 [언제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했으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모두 기뻐서 소리쳤느냐?] 성경에서 별들을 천사라고 그러죠. 하나님의 아들들로 묘사하죠. 그런가하면 예수 그리스도라 하는 그 아들을 하나님께서 소유하고 계셨단 것을 느부갓네살보다 400 년전에 솔로몬왕이 이미 알고 있었어요. 솔로몬왕이 그 잠언을 기록했잖아요. 잠언 8 장 22,23 절 보면 [주께서 태초에 일하실 때에, 옛적에 그의 일을 시작하시기 전에 나를 소유하셨느니라. 영원부터, 태초부터, 땅이 있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느니라.] 여기 ‘내’라는것은 솔로몬이 아닙니다. 예수님입니다 바로. 성령을 통해서 알았어요 이 사람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했단 말에요. 다윗도 그랬죠. 여기서 나라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금방 알수 있죠? 영원부터, 태초부터 하나님이 소유한 분이 누가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죠. 말씀이신 하나님밖에 없죠. 그러기 때문에 잠언은 느부갓네살 왕보다도 400 년전에 솔로몬이 기록한 책이죠. 그런 그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얼마나 소상하게 알고 있습니까? 이건 성령을 통해서 밖에 모르죠. 성령은 영원하시기 때문에 과거 현재 미래를 다 내다볼 수 있거든요. 잠언 30 장 4 절 보면 또 이렇게 솔로몬이 성령 안에서 고백했죠.[하늘에 올라가셨다가 내려오신 분이 누구신가? 바람을 자기의 주먹 안에다 모으시는 분이 누구신가? 옷으로 물들을 싸매신 분이 누구신가? 땅의 모든 끝들을 정해 좋으신 분이 누구신가? 그분의 이름은 무엇이며, 그분의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네가 말할 수 있느냐?] 그분의 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아닙니까. 네가 아느냐? 이런 얘기죠. 그 분의 아들의 이름이 누구신지 네가 말할수 있느냐 할때 “네”라고 대답 할 수 있는 사람이 정말 하나님의 사람이죠. 하나님의 말씀 아닙니까. 정말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이죠? 바로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느부갓네살 왕보다 천년 전 사람 욥에게 알려졌고 400 년 전 솔로몬에게도 알려져 있었던 하나님의 아들을 느부갓네살이 혼자 몰랐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요즘 사람들은 몰랐다고 말하죠 신학자들은.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에. 성령이 없으면 죽었다 깨나도 몰라요. 알 수가 없어요. 신학이란건 말이죠. 사람이 만든거에요. 우린 성경만 보면 되는거지요. 신학은 학문이에요. 학문. 하나님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이게 바로 옛날의 철학입니다. 말도 안되는 얘기죠. 느부갓네살 눈에는 그 네 번째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로 보였단 얘기 아녜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아들 같도다 그랬잖아요. 그렇잖아요? 보이지 않는거에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결국은 그분이 주의 천사로 나타난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자, 그러니까 이제 어떻게 됐습니까? 26 절 보니까 [그때에 느부갓네살이 불타는 뜨거운 용광로 입구에 가까이 와서 일러 말하기를 “너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 오라.” 하니,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서 나오더라. 고관들과 총독들과 군대 대장들과 왕의 의논자들이 함께 모여 이 사람들을 보니, 불이 그 사람들의 몸에는 힘을 쓰지 못했으며 그들의 머리카락 하나도 그슬리지 못하였고 그들의 옷도 변하지 않았으며 그들에게 불탄 냄새조차 없더라. 그러자 느부캇네살이 일러 말하기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송축할지로다. 그분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시어, 자기를 의뢰하며 왕의 명령을 바꾸고 자기들의 몸을 내어준 그의 종들을 구해 내셨으니, 이는 그들로 그들의 하나님 말고는 어떤 다른 신도 섬기거나 경배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얼마나 멋진 설교입니까. 참 우리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이야기에서 참 엄청난 영적인 교훈을 얻습니다. 베드로가 뭐라고 그랬습니까. 베드로전서 4 장에 12,13 절 보면 우리가 잘아는 말씀이죠.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시키려는 불 같은 시련에 관하여 너희에게 어떤 이상한 일이 일어자는 것처럼 이상하게 여기지 말고 도리어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는 것이니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이 나타나실 때에 너희도 큰 기쁨으로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도 이렇게 불 속에는 안들어가지만 불같은 시련을 받습니다. 그래도 이 세사람이 용광로에 들어갔을 때 함께 하신 것처럼 우리 주님께서도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어려운데 나중에 보니까 상한게 없어요. 지나고 보니까. 저도 그래요. 어려움이 많았지만 지나고 보니까 상한게 하나도 없어요. 참, 이게 주님이 함께 하셨다는 거고 불같은 시험 시련을 당할때 주님이 함께하는 것을 경험하는겁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이런일이 없었다면 주님과 함게 동행하는 것을 경험 못했을 거에요. 어려움 가운데 있을때 주님이 동행하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에게 어려움을 허락하시는 거에요.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하는거에요. 여러분, 용광로가 뭐죠? 큰 용광로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요. 금이 정금이 되요. 그래서 욥이 그랬잖아요. [나를 단련하신후에는 내가 금처럼 나오리라] 정금처럼 나오리라 이렇게 한거죠. 때로는 우리에게 어려움을 허락한 것은 그걸 통해서 더 연단해서 찌꺼기를 다 멸하고 그 다음에 정말 주님이 함께 한다는 그러한 확신을 주기 위해서 그런거죠. 그러기 때문에 감사하라는 거죠. 28 절 보니까 [그분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시여, 자기를 의뢰하며 왕의 명령을 바꾸고 자기들의 몸을 내어준 그의 종들을 구해 내셨으니] 참 그러니까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을 알았죠. 여러분, 천사라는것은 하나님의 현현이에요. 하나님이 나타날 때 천사를 보내시는거에요. 그러면 그의 천사가 온것은 하나님이 거기에 계신거와 똑같은 거에요. 이걸 알아야 되요. 옛날에도 여호수아가 갈 때 주의 천사가 나타났죠. 칼을 들고 나타났잖습니까? 발람이 갈 때도 그랬고요. 주의 천사라는것은 주님이 직접 나타나신거에요. 이걸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이걸 모르고 여호와 증인들은 예수님은 천사라는거에요. 하나님이 아니라는 거에요. 이렇게 이 사람들이 무지한겁니다. 성령이 없으니까. 하나님의 천사가 이 세상 신들의 한 이름 밖에 여겨지지 않게 깨닫는 것은 성령이 안에 없는거죠.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났다는것은 하나님이 직접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났다는것을 알 수가 있고 우리 주님께서는 2 천년전에 성육신하기 전에도 아브라함에게 그 2 천년, 그러니까4 천년전에 아브라함에게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다고 창세기 18 장 19 장 보면 나와있죠. 자, 28 절 보니까 [그분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시어, 자기를 의뢰하며 왕의 명령을 바꾸고 자기들의 몸을 내어준 그의 종들을 구해 내셨으니, 이는 그들로 그들의 하나님 말고는 어떤 다른 신도 섬기거나 경배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멋진 설교죠. 이렇게 설교한 사람이 별로 없죠.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한 가운데 의뢰했죠. 완전 100% 믿어서 하나님께 몸을 내어 드렸죠. 하나님이 구해 내셨죠. 왜 구해내셨습니까? 첫째는 그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했죠. 둘째는 그들은 사람을 무서워 하지 않고 하나님만 두려워 했습니다. 셋째는 하나님께 몸을 내어 드렸습니다. 몸을 내어 드렸죠. 그래서 사도바을은 로마서 12 장 1,2 절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에게 권고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게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것이 너희가 드릴 합당한 예배니라.] 우리가 주일날 예배 드리잖아요? 이건 사실 예배가 아니고 우리몸을 완전히 내어 드리는게 예배에요. 예배 때 아무리 멋지게 예배 드려도 우리 몸을 내어 드리지 않으면 예배가 아니에요. 예배자가 아니에요. [너희는 이 세상과 일치하지 말고 너희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하도록 하라.] 이건 뭐죠? 우리 몸을 드리잖아요.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도 몸을 그냥 드리는거에요. 환란 속에서도 우리를 드리는 거에요. 그럴 때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나타나는 거에요. 하나님이 어떻게 함께 하신게 나타나요. 몸을 드리는 겁니다. 산 제물로 드리는 거에요. 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하나님께 몸을 산 제사로 드려 버렸습니다. 합당한 예배입니다. 그런데 요즘 보면 대부분의 예배가 종교 의식으로 끝나 버려요. 몸은 아무도 안 드리면서도 입술로만 노래하고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첫째로 주님을 신뢰하고 의뢰해야 됩니다. 완전히 100% 의뢰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우리의 몸을 드려야 됩니다. 죽을 입장에 와 있더라도 그냥 드려야 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구해 내실겁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우리 육신이 죽으면 바로 주님을 만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을 의뢰했기 때문에 왕의 명령을 바꿀 정도로 됐죠. 이 왕이 누굽니까? 앞으로 적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앞으로 말이죠. 유대인들이 이제 대환란 때에 이 세청년들 처럼 이렇게 할 사람이 나옵니다. 이 사람들이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겁니다. 이 세청년은 대환란 때에 남은자들의 모형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알게 될 때에 이렇게 담대하게 할 것입니다. 참,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게서는 이런자들을 택해서 대환란을 통해서 연단해가지고 그들을 천년왕국으로 보낼려고 지금 계획 중이신 거에요. 그래서 대환란 이라는것은 말이죠. 마지막 용광로입니다. 유대인들을 위한 용광로입니다. 그래서 그때의 적그리스도는 느부갓네살왕 이상입니다. 그러나 유대청년들, 유대인들은 14 만 4 천 같은 사람들은 말이죠. 청년들 아닙니까. 남자 처녀들, 동정들. 이사람들이 인을 받으니까 절대 죽지 않습니다. 절대 죽지 않습니다. 이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고 엘리야와 또 모세도 내려 와서 복음을 전하고 또 적그리스도 앞에서 막 책망하는 설교도 하고 그들은 죽었다가 셋째 날에 또 부활하죠. 올라가는 겁니다. 마지막 한 이레가 지금 우리 눈 앞에 남았고 그래서 지금 오늘 다 거듭나서 주님 오실 때 주님을 공중에서 만나는 축복을 다 받아야 되는거에요. 그래서 오늘이 구원의 날이요 은혜받을 날인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맞습니다. 주님만을 온전히 신뢰하고 우리 썩을 몸을 주님앞에 온전히 드리기를 원하시는 주님. 그럴 때 주님께서 구해내시고 영광 받으시는 주님. 우리가 온전히 주님만을 신뢰하길 원합니다. 아버지, 그러므로 우리도 이들처럼 아버지 하나님이여 어려움 가운데서도 불시험을 우리가 겁내지 않고 불시험이 올지라도 우리가 감사함으로 우리의 몸을 던져서 하나님의 뜻에 맞기는 저희가 되기를 원합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고 궁핍하고 곤경에 처해 있을지라도 이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이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에게 이런 믿음을 주시옵고 이 믿음 가운데서 승리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어렵다 할지라도 입을 다물고 주님 앞에서 꾹 참으며 감사의 제사를 드릴 수 있는 믿음의 용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러므로 한길로 왔던 사탄이 뱀같은 사탄이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물러가는 역사가 나타날 때에 주님을 찬양케 도와 주시옵소서. 그러므로 아버지, 주님 오시기 전에 연단을 받아서 우리도 깨끗하게 되어 우리 안의 모든 불신이 없어지고 100% 주님을 믿는 믿음 가운데 몸을 드림으로 참 예배를 드리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이 수가성 여인에게 말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영과 진리로 경배드리는 사람을 기뻐하신다.] 성령으로 거듭나서 진리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이런 사람들의 예배를 받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하셨나이다. 이곳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이 진정으로 영과 진리로 경배드리며 아버지여, 세상에 나가서 몸을 드려서 참된 예배를 드리는 합당한 예배를 드리는 진정한 예배자들이 될 수 있도록 주님 도와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