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서 다니엘 4 장 28 절부터 보겠습니다. [이 모든 일이 느부갓네살왕에게 임하였느니라. 열두 달의 마지막에 그가 바빌론 왕국의 궁을 거닐다가 왕이 일러 말하기를 ‘이것이 내가 내 권세의 힘으로 내 위엄의 영예를 위하여 왕국의 집을 건설한 위대한 바빌론이 아니냐? 하였더니 그 말이 왕의 입에 아직 있는데 하늘에서 한 음성이 내려 말씀하시기를 오 느부갓네살왕아, 네게 말하노니, 그 왕국이 네게서 떠났느니라. 그들이 너를 사람들로부터 쫒아내리니, 너의 거처가 들의 짐승들과 함께 있게 되리라. 또 그들이 너를 소처럼 풀을 먹게 할 것이요. 일곱 때가 너에게 지나고 나서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인간들의 왕국을 다스리시며 그분께서 원하시는 자에게 그것을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 하였느니라. 그 시간에 그 일이 느부갓네살에게 이루어졌으니, 그가 사람들에게서 쫒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고 그의 몸이 하늘의 이슬로 젖었으며 그의 머리털은 독수리의 깃털같이 자랐고 그의 손톱은 새들의 발톱과 같이 되었느니라. 그 날들의 마지막에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향해 눈을 들었더니 내 명철이 내게 다시 돌아왔고 내가 지극히 높으신 분을 송축하며 영원히 사시는 분을 찬양하고 존경하였으니 그분의 통치권은 영원한 통치권이요 그분의 왕국은 대대에 이르리로다. 땅의 모든 거민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지나, 그분께서는 하늘의 군대에 있어서나 땅의 거민 가운데서나 자신의 뜻에 따라 행하시나니, 그분의 손을 치거나 그분께 말하기를 ‘당신은 무엇을 하는가?’ 할 자가 아무도 없느니라. 바로 그때에 내 이성이 내게 돌아왔고 또 내 왕국의 영광에 대하여도 내 위엄과 빛남이 내게로 돌아왔으며 또 나의 자문관들과 귀족들이 나를 찾았으니 내가 내 왕국에서 세움을 받았고 훌륭한 위엄이 내게 더해졌느니라. 이제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의 왕을 찬양하고 칭송하고 존경하노니 그분의 모든 일은 진리이고 그의 길들은 공의로우시니 교만하게 행하는 자들을 그분께서 능히 낮추시느니라.”] 실질적으로 역사적으로 분명히 있었던 사건이죠. 하나님께서 이 일을 통해서, 느부갓네살왕에게 일어난 일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주시는가 이것을 깨닫는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입니다. 여기에 보면 그 바벨론왕이 하나님께서 높이신 줄도 모르고 내가 내가 내가 계속 나라는 말을 합니다. 아무튼 모든 권세가 위로부터 나오는 것을 권력자들은 사실 알고 있으면서도 머리 속으로는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느브갓네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은 내가 건설한 바벨론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날 위정자들도 똑같죠? 마찬가집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조금만 잘 되고 높아지면 교만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항상 낮추십니다. 그 사람이 거듭났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가만히 안 두십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닐지라도 그 사람이 구원받게 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일들을 일으키십니다. 그런데 그것을 못 깨달아서 그래요. 세상 사람들이 그러죠. 살다보면 평생에 한 두 번정도 기회가 온다고 그런 말을 하는데 그 기회가 사실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기회를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거꾸로 알아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기회다. 출세할 수 있는 기회다. 사탄이 그렇게 세상의 통치자가 그렇게 하는거죠. 여기 지금 하늘에서 음성이 나죠? 그 왕국이 네게서 떠났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니까 온 세상을 지배하는 절대적인 독재자도 결국은 들의 짐승들과 함께 소처럼 풀을 먹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렇습니다. 명예가 떨어지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대 재벌들 말이죠. 명예가 떨어지면 비참하게 됩디다. 그러기 때문에 정말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는게 무언가 하면 구원을 받았으면 정말 두려움과 떨림 가운데 하나님 앞에 나가란 소리입니다. 잘못하게 되면 그냥 밑으로 떨어지게 되는 거죠. 사람들이 이걸 잘 몰라요. 여기 보면 머리털이 독수리털 같이 자랐어요. 손톱은 새의 발톱같이 되었어요. 어떻게 그런일이 있을 수 있을까. 지금도 일어납니다. 지금도 이렇게 비참한 사건이 일어난단 말이죠. 7 년동안 밖에 쫒겨 나가지고 집도 없이 홈리스가 된 것 아닙니까? 오늘날도 홈리스 들이 많습니다. 그사람들이 어떻게 홈리스가 됐는지 살펴보면 다 사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짐승과 함께 살면서 풀을 뜯어먹고 이슬 맞고 이렇게 살 수 있을까?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이럴때 느부갓네살이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사람은 아무것도 없을 때 자기자신을 알게 됩니다. 그때 결국은 영적으로 회복되고 하늘을 우러러 봅니다. 옛날 우리조상들도 하나님 몰라도 어렵게 되면 하나님 맙소사 그랬어요. 이게 뭡니까. 양심이 하나님이 만든 양심이 더럽혀졌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찾을만한 여지가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찾을 수 있습니다. 칼빈은, 사람이 전적인 타락 하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도 못 찾는다는 거에요. 예수님도 영접을 못 한다는 거에요. 전적 타락이기 때문에. 그러기 때문에 날 때부터 천국 갈 사람이 있고 지옥 갈 사람이 있다 그래요. 그래서 전도할 필요가 없다고 해요. 극단적인 칼빈주의자들이 그렇습니다. 얼마나 우서운 이야기입니까. 칼빈주의가 한국을 지배하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잖아요.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옛날에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칼빈주의가 온 교회를 주장하고 있었고 침례교회 들어가면 이단, 순복음 교회도 이단 성결교회도 이단 다 이단이라 그랬어요. 장로교회 외에는 다 이단이라 그랬어요. 다른 교회 근처에도 못가게 했어요 초등학교 다닐 때만해도 그랬습니다. 자 이렇게 사람이 갑자기 다 잃어버리니까 갑자기 밑으로 떨어지니까 이렇게 되는거죠. 자 고난을 겪고 난 다음에 그 날들에 마지막이 되어서 비로서 이렇게 했다는 걸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시는지 한 번 생각 해 볼 필요가 있죠. 사람이 위대해지면 위대해질수록 그 사람을 땅에서 아주 겸손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높이 올라갈수록 극심하게 됩니다. 바벨론왕은 전 세계를 통치하는 왕이기 때문에 그만큼 극심하게 하지 않으면 그가 돌아오지 못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자꾸 높혀 가는 사람은 끝까지 같다가 주님이 그냥 떨어뜨리죠. 그때가서 이제 자기 자신을 깨닫게 되는거죠.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결국은 자기자신이 남보다 낫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저사람 보다 낫다 라고 판단할 때 결국 자기가 교만해져요. 그렇다고 그 사람이 바벨론왕처럼 높아진 것도 아니데 사탄은 말이죠. 사람들을 그렇게 합니다. 그래가지고 사람들을 자꾸 판단하게 한단 말이죠. 그게 뭔가하면 내가 저사람보다 낫다는 거에요. 그런데 성경에서는 뭐라고 그러죠? 다른 사람을 너보다 낫게 여기라. 낮게가 아니라 낫게 여기라 그랬죠. 이렇게 해야 되는거에요. 항상 우리는 누가 와도 그 사람을 낫게 여겨야 되는 거에요. 그러지 않으면 내가 높아지는 거에요. 간단한 겁니다. 뭐 어떤 사람은 옛날에 이런 말 한적도 있어요. 아 우리 교회는 가난한 사람만 오느냐고. 간단한 얘기죠? 가난해야 말씀을 듣죠? 부자들은 말씀을 안 듣습니다.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까. 성경 말씀이 그래요. 그런데 자기도 가난하면서 그래요. 참 그런 사람들 보면 이해가 안돼요. 내가 부자면서 그러면 이해가 되는데 자기 혼자 부자고 다 가난하면 그러게 되겠지만 수준이 안 맞는다 뭐 이런 사람이 있어요. 무슨 수준인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자녀들 만큼 수준 높은 사람들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세상적으로 그렇게 수준을 따지는 거지요. 그러기 때문에 정말 하나님이 나를 높여줬다 물질적으로 높여줬고 명예도 높여 줬을 때 굉장히 조심해야 됩니다. 그게 바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거에요 이게. 구원을 잃어버릴까 그런게 아니라 높아졌을 때 조심하라 이런 얘기죠. 그리고 스스로 높이지 않도록 해라. 잠언에 나오죠. [너희 스스로 칭찬하지 말고 다른 사람이 칭찬하도록 해라] 어떤 사람을 칭찬하죠 사람들이? 겸손한 자를 칭찬합니다. 돈 많은 자를 칭찬하지 않습니다. 명예있는 자를 칭찬하지 않습니다. 겸손한 자를 칭찬합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5 장 6 절에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그 분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제가 목회를 시작했을 때 이 말씀을 주셨어요. 이 말씀을 주신것이 어떤 목사님이 아니라 어떤 평신도가 교회 나온지 몇 주 안되는 아주 초신자가 성경을 읽다가 “이 말씀을 목사님께 드리라고 하셨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아멘입니다. 그때 받고 제가 아직도 안 잊고 있어요. 우리 주님이 뭐라고 그랬죠? [좁은문으로 들어가라.] 거기는 길이 좁고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 왜 좁은 문으로 들어 가라고 하셨을까요.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만 겸손해 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주님도 이 땅에 오셨을 때 스스로 높아지지 않고 계속 낮은곳으로 가신 것처럼 스스로가 좁은 문으로 낮은 곳으로 들어가야 됩니다. 스스로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오래 못간단 말이에요. 많은 사역자들이 조금만 하다가 탈락되고 마는거에요. 탈락되고 마는게 왜 그렇습니까. 스스로 넓은 문으로 들어가서 그래요. 사람들이 많이 갑니다. 그러기 때문에 분명히 주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면 길이 좁기 때문에 찾는 사람이 few 다. 거의 없다 영어로 a few 도 아니에요. A few 라는 말은 조금 있다 인데 few 는 거의 없다 라는 얘기에요. 가다 보면 나 혼자 가는 것 같단 얘기에요. 왜? 여기 하나 가고 저기 하나 가고 저어기 하나 가니까 옛날 엘리야가 선지자가 다 죽었습니다. 나 밖에 안 남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아니 아니야 바알에 무릎꿇지 않은 7 천을 남겨두었다. 여기 저기 숨어 있으니까 못 보는 거에요. 그러니까 좁은 문으로 들어가면 자기 혼자 같은데 사실은 많이 있습니다. 떨어져 있습니다. 서로가 몰라요. 그러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을 따라가게 되면 절대로 교만한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내 스스로 올라가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우리가 두렵고 떨림으로 끝까지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주님의 손 아래 겸손하면 때가 되면 높인다가 무슨 말입니까. 궁극적으로는 주님 오실 때 높인다는 소리에요. 이 땅에서도 높인다는 뜻도 있겠지만 정말 진짜 축복은 이 땅에서 고생하더라도 저기 올라가는 거에요. 순교자들이 그런겁니다. 그러니까 이 땅에 사는 동안 내가 시간을 얻어 가지고 얼마 만큼 주님께 칭찬 받는 일을 준비하는가. 이것은 겸손해지지 않고서는 안됩니다. 그러니까 스스로가 자기가 높아지는 자리로 가면 안됩니다. 절대 가면 안돼요. 그러기 때문에 주님께서 이 다니엘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이것을 알 수가 있어요. 그리고 우리를 부르신 목적 구원하신 목적이 뭐죠?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만들기 위해서…. 왜? 신부니까. 그리스도의 신부는 그리스도만큼 인격이 되어야 되요. 그러니까 우리같은 사람을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만들려면 얼마나 얼마나 시간이 걸리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거듭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 인격을 바꾸기 위해서 그 마음의 상태를 바꾸고 주님의 인격으로 주님의 성품으로 바꾸기 위해서 끊임없이 시험이 있습니다. 시험이라는 것은 말이죠.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언제 종결이 됩니까? 주님이 원하시는 분량만큼 우리가 될 때까지는 계속입니다. 산 넘어 산입니다. 사람들이 그러죠. 문제가 해결되니까 또 생겼다 또 생겼다. 문제가 생겼다는게 뭐냐하면 이게 시험입니다. 시험을 치는 겁니다 여러분. 이 시험이라는 거는 올려 주려고 치는 겁니다. 마귀는 tempt 합니다. 유혹을 합니다. 그래서 죄에 빠뜨립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try 합니다. try 가 뭐냐하면 용광로에 철광석을 집어 넣는 거에요. 그래 가지고 연단하는 거에요. 순금이나 순은이나 순놋으로 이걸 만드는 거에요. 이게 try 입니다. 하나님은 try. 그러기 때문에 이걸 trial 그러죠. 왜 합니까? 세상에도 중학교 시험보고 고등학교 시험보고 대학교 시험보고 시험을 치는게 왜 그렇습니까? 그 사람이 이제는 어느정도 배웠으니까 올라갈 단계가 됐다.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을 test 해 가지고 올려 줄려고 그러는 거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무슨 문제가 있으면 문제를 해결 하려고 그래요. 문제를 해결 하려고 할게 아니라 왜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런 문제를 주셨을까 이것을 알면 무릎을 꿇어야 되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돌아다니니까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어요. 산넘어 산이죠. 억지로 문제를 풀었는데. 또 문제가 나오는 거에요. 또 나오는 거에요. 이러고 평생 지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죠. 요즘은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그런거에요. 결국 나중에 가서는 다 뺏기고 나서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나옵니다. 저는 그런 사람 많이 보았어요. 물질을 많이 주셨는데 다 털어넣고 나서 에휴! 내가 주님을 위해서 썼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그 사람은 물질을 또 줘도 안씁니다. 절대 안 씁니다. 아 내가 쓰면 좋았을걸 하는 사람은 절대 안 씁니다. 정말 제가 하나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는 주셔도 좋고 안 주셔도 좋고 모든것을 가져가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욥처럼 그래야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고 정말 나중에 모년에 갑절로 복을 주신것처럼 모년이라는게 결국은 뭐냐면 마지막 이 인생을 종결할 때 주님이 그 상을 주신다는 얘기에요. 사람들이 자꾸 현세에서만 뭘 받을려고 하는데 그러다 보면 뭐가 없으면 자꾸 시험에 드는 거에요. 마귀에게 시험에 들어요.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그러한 시험에 test 에 trial 에 빠뜨리신 다음에 하나님께서 원하는 그 자리에 가야만 그것에서 벗어나게 되죠. 그것이 영적으로 성장하고 어느정도 되면 또 옵니다. 이걸 사람들이 모르고 주저앉는 거에요. 그런데 하나님이 test 를 하시고 연단을 하시는데 사탄이 와 가지고 야 하나님이 너에게 왜 이렇게 하시냐? 그래가지고 마귀가 시험을 하는 거에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에서 시험에 들지 않게 하옵소서 그랬지요? 그 기도 꼭 해야 됩니다. 그리고 악에서 구하옵소서. 악이란게 뭐죠? 불평하고 원망하는것입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는것이 바로 악입니다. 내가 낮아지고 내가 남보다 못하다 생각하면 불평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다 교회에서 내가 알아서 하고 주님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일하지 나를 위해서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시험에 든 사람은 내가 다른사람에게 조금만 상처를 받으면도 교회를 나가고 그래요. 교회 나가면 다른 교회에 나가야 되는데 거기는 주님이 안계시나요? 그렇찮아요. 그런 사람은 계속 교회를 옮겨 다녀요. 6 개월 신자. 특별히 미국이 6 개월 신자가 많아요. 6 개월 정도가 되면은 대게는 끝나요. 그런 사람 많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하나님이 안 계신다고 생각하는거야. 있던 교회도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거 같아요. 그러니까 다른 교회를 또 가는 거에요. 그렇지 않습니까? 사실 교회는 하나밖에 없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그래가지고 교회를 떠나잖아요. 그러면 거기는 더 큰 마귀가 유혹을 해요. 이러다 보면 나중에는 떠돌이가 되어 가지고 혼자서 예배를 드리게 되요. 요즘 그런 사람들 많습니다. 여기 다니고 저기 다니고 그러다가. 아 자기 마음에 드는데가 어디 있습니까? 자기가 하나님 맘에 들어야지요. 그러다가 혼자 예배드리는 사람 많습니다. 특별히 여성들 중에 그런 사람 많습니다 요즘에. 그런 이야기를 들을때 얼마나 가슴 아픈지 몰라요. 그러니까 내가 시험에 빠졌다, 이 생각이 들 때 아 내가 하나님 보기에 부족한게 있구나. 이걸 알고 빨리 점검해 보고 그 성품을 기르도록 힘써야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요? 하나님이 계속해서 연단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주 밑에 까지 내려가요. 어제도 내가 AA 미팅할 때 그랬잖아요. 지금 이렇게 술먹고 걸려 가지고 여기와서 미팅할 때 이때 정신 차리라는 거에요. 이때 정신 못차리면 어떻게 되느냐. 엄청나게 떨어집니다. 그러니까 열 댓번씩 걸린 사람은 왜 그렇습니까? 못 돌이켜서 그 지경까지 가는거에요.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다 기회를 주시는 겁니다. 느부갓네살에게도 기회를 주셨잖아요. 그런데 보면 술취해 가지고 온 사람들 보면 거의 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에요. 생명을 받지 못하니까 그렇게 하고 있는 거에요. 그러기 때문에 빨리빨리 돌이켜야 되는데 그렇게 못 하는거죠. 주님께서는 우리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시게 되셨고 옆구리에 창이 찔려 가지고 모든 물과 피가 다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 분이 안에 들어와 계셔야 되는 거에요. 그렇지 않으면 자기 자신이 자기 옆구리를 찔러야 되는 거에요. 그렇게 비참한 일이 일어난단 말이에요. 그 주님을 모셔 들여야 되는 거에요. 나 대신 주님이 창에 찔렸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죠? 내가 겸손해질 거 아닙니까. 나 같은 죄인 때문에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옆구리에 창이 찔려서 물과 피가 다 나와서 돌아 가실 때 탈수가 되어서 혀가 입천장에 딱 붙으니까 호흡이 안되서 숨이 넘어가신거 아닙니까. 다 이루었다 하시면서 숨이 넘어 가셨죠. 그러기 때문에 이 다니엘이 느부갓네살에게 의로운 행위를 함으로써 죄를 짓지 말라고 한거에요. 죄를 짓지 말라. 결국은 죄를 짓게 되면 어떻게 되죠? 죄를 지을 때에 하나님께서 연단하시는데 죄를 짓는다는 것은 주님의 성품과는 다른거죠.
죄로부터 멀리하고 죄를 짓지 않는 성품. 하나님의 자녀들은 죄를 짓지 않는다 그랬어요.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가 되면 성품이 바뀌어 가지고 내가 의식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 이런 얘기죠. 때로는 사탄에게 속을 때가 있지만 의식적으로 내가 죄를 짓자 그러면서 자범죄를 짓지 않는다. 스스로 짓는 죄를 짓지 않는다 이런 얘기죠. 자 그러니까 다니엘이 권고해도 듣지 않았잖아요. 결국은 엄청난 시험에 닥치고 그러고 나니까 [내가 지극히 높으신 분을 송축하고 영원히 사신 분을 찬양하고 존경하였으니 그 분의 통치권은 영원한 통치권이요 그 분의 왕국은 대대에 이르리로다.] 회개한거죠. 빨리빨리 회개해야 되는데 사람들이 미련해 가지고 회개하지 못해요. 그리고 이걸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역사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래요. 기도만 해요. 내가 기도하니까 응답할거라고.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역사해요. 이 교회에 목회자도 있고 또 여러가지 사역자도 있고 뭐 일반 성도들 어린애 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있잖아요. 그러면 하나의 가족이거든요. 가족이라는게 부모가 있고 형제 자매가 있는데 그 가족에 아들이 말이죠 아들이 있는데 그 아들이 부모가 뭐라고 하는데 그 아들이 아니야 나는 하나님께 기도 해야 돼. 나 아버지 말 안들어. 이런 사람이야말로 얼마나 미련합니까. 나는 처음에 어느 목사님하고 교회를 세우고 했을때 목사님이 저에게 하신 얘기가 있어요. 아직도 안 잊어 버려요. 집사님!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제가 안 잊어 버려요. 그런데 시험에 든 사람은 얘길 해도 안듣더라구요. 아 나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됩니다. 그런데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데 내 안에도 성령이 있으니까 나를 통해서도 말씀할 수 있으니까 혹시 나를 통해서 말씀하시는지 귀담아 듣는것도 좋다. 그래도 말씀을 안 듣는거에요. 요즘에 성령 성령 너무 찾는 사람들 있잖아요. 이런 사람들이 속습니다. 말씀이 없잖아요. 남의 말 안듣고 말씀없는 사람들이 성령 구하잖아요. 그러면 빈 공간에 성령이 임하면 어떻게 되요. 그러면 고린도 교회처럼 되요. 그냥 무질서하게 됩니다. 은사를 자랑합니다. 은사가 굉장히 귀합니다. 고린도전서 12 장과 로마서 14 장에서는 은사가 굉장히 중요한거에요. 왜? 은사가 없이는 교회에서 섬길 수가 없어요. 그런데 은사주의가 되면 안돼요. 은사주의. 은사를 모든것 위에 올려 놓으면 안돼요. 하나님 말씀 위에 올려 놓으면 안돼요. 하나님께서는 목회자들에게는 지식의 말씀 지혜의 말씀 이런 것들을 주십니다. 그 다음에 여성들에게는 신유의 은사를 주기도 하시고 여러가지 섬기는 은사를 주시기도 하고 그래요. 그런데 신유의 은사 받은 사람이 어 저 목사님은 신유의 은사가 없네. 이래가지고 교만하게 되는 거에요. 그래가지고 마귀에게 속는 거에요.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그런 사람이 나가가지고 뭘 차려놓고 안수해 주고 돈받고 그렇습니다. 이런 사람이 LA 바닥에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권사님들 가운데서도 많고 여전도사님들 가운데서도 많고 그래요. 이게 속아서 그런거에요. 은사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은사주의가 되면 큰일 나는 거에요. 고린도 교회가 바로 그런 교횝니다. 여러분. 자 이래서 뭐라고 고백합니까 여러분. [땅의 모든 거민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지나, 나 자신의 뜻에 따라 행하시나니] 순식간에 회개하니까 하나님이 순식간에 응답하시는거에요. 왜? 하나님이 연단을 주는것은 회개하라고 그런거지 다른게 아니에요. 회개라 하는 것은 주님 앞에 겸손하게 낮아지라 이런거죠. 마귀가 교만해져가지고 결국은 루시퍼가 됐죠. 덮는 그룹이 교만해서 루시퍼, 마귀, 용이 되고 사탄이 됐잖아요. 그러기 때문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그랬잖아요. 교만한 마음은 누가 줍니까? 마귀가 줍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교만한 마음이 들고 남을 판단하는 마음이 들고 이렇게 될 때는 정말 조심해야 됩니다. 나도 모르게 자꾸 남을 비방하는 마음이 들 때는 조심해야 됩니다. 그거 자꾸하다 보면 나한테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그런데 그때는 잘 몰라요. 잘 못깨닫습니다. 금방 깨닫는 사람이 축복인데 그러면 그 사람은 별로 어려움이 없어요. 미련하게 끝까지 질기게 그러다가 나중에 매를 엄청나게 두들겨 맞는 것을 많이 볼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을 믿지도 않은 사람이에요. 그런데도 믿지도 않은 사람인데도 이런 고백을 했는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이런 고백을 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미련한 얘기에요. 잠언에 보면 말이죠. 미련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은 이 절구에 넣고 쾅쾅 찧어도 퉁퉁 튕겨져 나가는 거에요. 그만큼 미련한거에요. 이게 깨져야 되거든요. 안에 들어가면 깨져야 되는데 이게 안 깨지고 미끄러져 퉁퉁 튕겨 나가는 거에요. 그래서 simple. 성경에 보면 어리석은 자를 영어로 simple man 이라 그랬어요. 자기 밖에 모른단 소리에요. Simple 하다는게 사실은 별로 안 좋은 얘깁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말씀 가운데 이러한 교훈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느부갓네살왕에게 일어난 일을 통하여 다시한번 성령님께서 교회를 향한 우리 각자를 향한 말씀을 주신것을 감사 드립니다. 정말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가 받은 구원이 상급으로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원망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그저 아버지 하나님 만이 판단하시며 자신이 자신을 판단하며 자신이 자신의 죄를 판단하며 남의 죄와 허물은 덮어 주면서 스스로를 판단할 때에 회개하고 주님앞에 가까이 나가고 주님의 인격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죽으실 때도 저들이 저들의 죄를 알지 못해서 하는 것이오니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신 것처럼 나를 죽이는 사람까지도 그렇게 아버지, 주님의 마음으로 될 때까지 갈길이 멉니다. 아버지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그 날까지 이것을 위해서 살게 해 주시고 항상 주님만을 높이고 서로 존경하고 서로 자신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또 교회에서도 노인들의 말을 젊은이들이 듣고 또 젊은이들은 열심히 일하고 또 순종하고 가정에서도 질서를 지키고 이렇게 할 때에 주님이 기뻐하시는 인격으로 변하여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서 주님 만날 때 정말 영광스럽게 만나는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주님 도와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