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따따블의수치와 잘못끼운 첫단추
걔들이 가릴데를 못 가렸으니 얼마나 수치스러웠겠나? 그러니 야들 한다는 것 좀 보소. 불 속에서도 다 타버린 무화과 나무 이파리로 가린겠다고 까불고 있는데, 잎사귀가 말라 타버리면 별 볼일 없어지거든? 어른 말 안들으면 그 꼴나는거야. 그걸 “이파리 거지”, “나무 거지” 라고 그래. 요즘 여자 아이들은 옷 감이 비싸니까 손 바닥만한 거 하나 사서 걸치는 “사서 거지 짓”을 하네 그려. 그것도 옷이라고 걸치고 다니는건지 … 나무 거지든, 사서 거지든 그 거지가 그 거지야. 그 옛날 나무 거지들이 오늘날 사서 거지들이 됐는데, 나중엔 불속 거지가 되는거야. 야들 별명이 청개구리일세. 하지 말라는 거 하고, 하래는 거 안하는 청개구리들이 많아요. 그 실락원의 청개구리들이 어디 가남? 이 번엔 먹으라는 걸 안먹으니, 배고프긴 매 한가지니 거지긴 거지네. 이 개구리들이 또거지가 된 걸 아는가? 나무 거지, 사서 거지, 불 거지, 또 거지 … 그 거지가 그 거지야. 먹지 말라는 거 먹다가 쫓겨나 거지 되더니, 이젠 먹으라는 것도 못 먹는 배고픈 거지들일세. 자네 아이들은 어쩌는가? “나무거지, 사서거지, 불거지, 또거지”가 되기 싫으면 청개구리들 하고 놀지 말라고 잘 좀 타이르시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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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따따블의수치와
잘못끼운
첫단추
원작: 이요한 / 최아멘
나오는 사람들
왕초, 최선생, 똘만이, 해설 63
해설: 오늘은 어째 표정이 밝지 않으십니다.
왕초: 우리 큰 집에 들렸다 오는 길인데, 거기서 열 받는 일이 있었네.
해설: 아니, 왕초께서도 열을 다 받으십니까?
왕초: 나는 사람 아닌가? 요새 젊은 것들이 예의를 몰라요. 교도 아닌 회교 불교 유교의 마가 석가 돌가 맹가네도 알라니 맹꽁이니 돌이니 하며 예의를 갖추는데 동방예의지국이 동방망할지국이 된 지 오래고, 그나마 교를 안다고 떠드는 우리 거지 동네 큰 집에서조차 젊은 것들이, 글쎄, 이 늙은이 보고 지들 밥을 퍼 날르라는거야. 뭐, 바빠서 죄송하다나 그래. 내가 밖에서야 먹고 살아야 하니까 동냥질이 바쁘지만, 길 바닥도 아닌데, 집 안에서야 장유유서는 지켜줘야할게 아닌가? 내 그것들에게 “仁義禮知信勇, 인의예지신용, 용용죽겠지도 모르냐?” 하고 냅다 질르기는했지만, 영 기분이 그러이 ~~~ 또 문자 썼네그려.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미안하이. 자고로 예(禮)를 모르면 거지 족보에도 수치라고 했네. 나를 푸대접했다고 성질이 난게 아니라, 요새 이 막말하고 말 안듣는 것들 때문이야. 꼭 우리 큰 집 애들 아니어도, 요새 젊은 것들이 싸가지가 없어서 아무리 막 말을 하고 말 안듣는다 안듣는다 하지만, 나 같은 늙은이가 아니라, 감히 우리 대왕께서 하시는 말씀도 안듣는다, 이 말씀이야.
해설: 좀 정확하게 말씀해주시지요.
왕초: 글쎄, 내가 말한다고 들을까? 시간이 없는데, 내 싸가지불발탄 – 인의예지신용 개판개발탄 하나만 터트리고 갈라네.
해설: 네? 무슨탄이요? 요즘은 연일 최선생도 그렇고, 미사일 핵폭탄에 전면전, 세균탄이더니, 이번엔 또 뭐라구요? 싸가지개발탄이라고 하셨습니까? 64
왕초: 그려, 싸가지를 개발바닥 개판으로 만든 폭탄이지. 좌우지간 우리 족보 처음편에 뭘 먹지말라고 하신게 있거든? 근데 끄트머리 비밀편에는 멀 처먹으라고 해도 안 처드신다 이거지. 먹지말라는 건 처먹고 먹으라는건 안 처드시고 … 그러니 이것들이 얼마나 말을 따블로 안듣나? 그래서 당하는 수치가 따따블 수치야. 곱배기로 망신당하고 신세 망치는거지. 거지 족보 처음편엔, “먹지 말아라”, 마지막 비밀편엔 “먹어라”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하늘 높으신 어르신이 하시는 말씀을 버르장머리가 없어서 도도체 도통 듣지를 않네. 동방예의지국이 아니라 팔방망할지국이네, 이건! 요샌 말 안듣는 정도가 아니라 어른을 걷어차기까지 한데며? 이런 망할 것들 같으니라고!
해설: 뭘 먹지 말라는 겁니까? 또, 뭘 먹으라는거지요?
사과! 금단의 열매야. 태초 동산 중앙에 사과 나무를 심어두신 건“니들 맘대로 해라”가 아니고“니들 내 말 안들으면 다 뒤진다”야. 무슨 얼어죽을 놈의 자유 의지고 어쩌고 저쩌고들 하시나? 그걸 따 먹지 말라는데 지들 맘대로 따 처먹어버리고는, 그 다음에는, 저 천성 강가에 나무 열매는 처먹으라고 해도 안처드신다, 이 말씀이네. 유식한 말로 “선악과와 생명과”라고 하네. 어른 말씀을 콧방구로도 안들었지.
해설: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왕초: 뭘 어떻게 돼? 거지 됐지! 한국에선 반공법 만들어 감옥보내고, 미국 아이들은 이민법 만들어 거지들을 내쫓더니, 얘네들이 만들어 놓은건 불법이야. 법을 어긴 자들이 멸망의 자식들이 되었네. 불법도 법이야. 어쨌든 법을 어겼으니 죄 짓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그래서 받은 형벌이 수치야, 수치! 부끄러움은 이런거야. 어느 동네 목욕탕에 불이 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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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니까 OWXY는 그대로 놔두고 아줌씨들이 손으로 얼굴만 가리고 나오더래. 남탕에선 아저씨들이 OWXTY중에 T만 가리고 튀어나오고 … 보이지만 않으면 수치가 가려질 줄 알고? 가릴려면 남의 눈을 가려야지 지 눈 가린다고 남들이 안보나? 불법을 행하는 막거지들이 그렇게 눈 가리고 아웅해. 처먹지말라는 거 먹고 걔들이 얼굴이 빨개졌다는데, 어럽쇼, 이건 남녀 혼탕이네! 급하니까 나무때기 잎파리로 거기만 대충 가렸다며? 우리 대왕이 보시고 발가락이 웃는데도 수치를 몰라요.
남들 눈은 못 가리면서 자기 눈만 가리는게 우리들 모습이네. 그러면 되는 줄 알고 살면서 계속해서 말 안듣고 법을 어기더니 얼굴이 두꺼워져서 진짜 수치를 몰라. 죄도 한 두번이지 밥 먹듯 저질르는데 수친들 알겠나? 이젠 부끄러운 것도 모르니 한심하이.
나뭇잎으로 가린 이게 첫 수치고, 마지막 남은 수치가 있네. 첫 수치는 부끄러워도 손 바닥으로 가리면 대충 살지만, 마지막 수치는 부끄러운 정도가 아니라, 아예 죽음이네. 자신을 벌거벗겨 드러내놓고 챙피를 당하지. 가릴 수도 없고 망신스러운 것은 약과네. 불로 지지는 고통이 따른다 이 말임시. 첫 수치는 나무잎 쪼가리로 가렸네만, 검은 사자들이 모셔 가는 거기는 홀딱 벗겨놔서 가리지도 못해. 다 태워 먹어서 가릴 것이 있어야지. 나뭇잎이라고는 씨도 없이 다 탔거든. 거기다가 불 조명까지 있어요. 조명탄 터지는거지. 휘황찬란한 유황조명이 눈 부시도록 비춰주는데 그게 두번째이자 마지막 수치네. 그게 홀라당 벗고 당하는 따따블 수치야! 동네 어른이고, 하늘 대왕이고 말씀하시면 공손히 예를 차릴 줄 알아야지, 천방지축 말 안듣고 대들고 촐랑대면 그 꼴을 당한다는 걸 알기나 하고 까불어대는건지 … 말 안들으면 혼나고 쪽박차고 발가벗는거야, 막판엔 불폭탄 맞어! 정신들 차리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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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핵미사일, 방구탄, 세균탄, 싸가지개발탄에 이어 조명탄까지 터지는군요? 수치에 대해 말씀하시고 계신데, 하실 말씀이 또 있습니까?
왕초: 있지. 이건 수치 2탄이네. 어째 탄탄탄으로만 계속 나가나그래? 탄탄탄하는 김에 하나 더해? 옛날엔 19공탄이라고 서민들 불때는 무연탄이 있었어요. 구멍 열아홉개 뚫린 연탄이라 19공탄인데, 가운데 구멍 막힌 불량품을 뭐라고 하느지 아나? 19-1, 18탄이야. 씨팔탄! 냄새 맡으면 사람 죽이는 그 18탄이 수치 제2탄이네. 두번째 수치를 당하면 정말 죽어요!
해설: 잠깐만이요! 제 배꼽 좀 줏어오고요 …
왕초: 이런, 그렇다고 배꼽까지 떨어지나그래! 못 볼 걸 보는 것도 수치고, 봐야 할 걸 못 보는 것도 수치야. 두번째 수치네. 내 시 한 수 읊어주지. 제목은 “머거리들과 종들을 위한 세레나데” 라고 하네.
너희 귀머거리들아 들으라 너희 소경들아 밝히 보라 소경이 누구냐 내 종이 아니냐 누가 나의 보내는 나의 사자 같이 귀머거리겠느냐 누가 나의 친한 자 같이 소경이겠느냐 누가 내 종 같이 소경이겠느냐 네가 많은 것을 볼지라도 유의치 아니하며 귀는 밝을지라도 듣지 아니하도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우리 종씨 이 선생님 글 42편 열여덟 줄부터 있는말이네. 거 보시게, 또 듣지 않는다고 나오지! 18탄 개스만 맡는다고 골로 가는게 아니야. 듣지 않고 보질 못해서 못 먹을 걸 먹으면 뒤져. 먹으라는 거 안 처먹어도 그렇고 … 내가 춤을 좀 추지. 하도 장타령 하며 각설이판 돌아다니다 보니까 거지춤이 탄생 됐는데, 이 미국 땅에 오니까 미국 거지들은 빠다 바른 춤이라고들 추는데 돌아가긴 잘 돌아가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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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름낀 노란 빠다 바른 춤이 내 눈엔 노예춤으로 밖에 안보이네. 그 아이들이 발목걸이를 하나씩 차고 있어요. 쇠사슬이지. 버르장머리 없고 예의를 모르는 것들이 머거리들이 되놔 가지고 쇠사슬 묶인 발로 추는 춤을 추고 잇더라고. 볼 걸 못 보는 얘네들은 자기들 발에 묶인 그 쇠사들도 못 봐! 그러니 그 무거운걸 질질 끌며 춤을 추니 얼마나들 힘이 들겠나? 쇠사슬, 그걸 “죄”라고 하네. 죄사슬인거야. 그 쇠사슬은 볼 걸 못 보고, 못 볼걸 열심히 보는 아이들에게 씌워진 수치의 사슬이네. 하늘 대왕 앞에 가면 부끄러워서 정신을 못차리지. 그러고도 나이트클럽에서 하던 버릇이 그 앞에서도 그대로 나오는데, 웃기지도 않아요. 벌거벗은 줄도 모르고 유황조명탄이 터지니니까 마구 흔들어대더라고. 가릴데도 못 가리고 정신 없이 흔들어대는데, 가만 보니까, 좋아서 그러는건 아니야. 거긴 술이 없거든. 못 마실걸 마셔댄 독주에 물들은 아이들이 거기서도 술이 안깨가지고 술 없어도 헤롱헤롱 춤난 잘추더라고! 으휴~~~, 그 개버릇 남주나? 힘들어하는 그 꼴 하고는 … 쯪, 쯪, 쯪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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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만이: 헹님요, 내도 배꼽떨어졌고만이라. 인자 그만 웃기소. 정신 못차리다 뒤지면 책임질란교? 마, 그만 하고 우리 최선상님 워쩌는지 불러보시셔 잉?
왕초: 그것도 괜찬지. 최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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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생: 세계 대전을 치르고 전쟁터에서 쑥대밭이 되고도 모자라 밤새 밑빠진 독에서 술을 퍼내고 나니 몸 버리고 마음 버리고 돈 버리고, 속만 아프고 … 이제는 생각을 말아야지. 생각만 했다 하면 꼭 사고를 쳐. 그러나, 자고 나서 또 생각이 나는걸! 이걸 어쩌지? 민아, 제발 이번엔 사고치지 마라! 나는 속으로 그렇게 다짐하며 또 생각에 빠졌어. 왜 그랬을까? 왜 우리는 싸워야 했을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시원한 대답은 나오지 않는데, 뜻밖에도 그 정답은 거울 속에 있었어. 자고나서도 아직까지 술냄새가 몸에 밴 부시시한 내 모습. 화장대, 아, 참, 나는 여자가 아니지, 그냥 거울 … 화장실, 이런 젠장, 이젠 말도 헛나오네. 아니야, 남자도 화장실이라고 하는 건 맞지. 그래. 그냥 목욕탕 큰 거울이라고 하자. 샤워를 하려고 거울 앞에 섰는데 거기에 괴물 하나가 서 있었어. 누구일까 하고 자세히 보는데 나였어. 나는 난데, 옷차림이 좀 이상해. 술 때문인지 잠결인지 흰 와이셔츠 단추가 잘못끼워져 있었어. 그리고, 어라, 바지도 T자 부위의 단추가 잘못 끼워져있는거야. 거울 속의 괴물이 말했어. 전쟁이 터진건 니가 첫단추를 잘못 끼워서 그런거야. 내 단추가 잘못 된 거하고 전쟁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고 아침부터 시비야, 시비는 … 안그래도 힘이 빠지고 정신 없는데, 별 괴물 같은게 지랄이야. 거울 속의 그 놈이 미웠어. 그런데 이상하지? 왜 그 소리가 이렇게 맴도는걸까?
첫단추, 첫단추, 첫단추 …
생각해보니 우리는 첫단추부터 잘못 끼웠던거야. 아니, 정확히 말하면 숙이는 죄가 없지. 내가 잘못 끼운거였어. 우리의 만남 이래로 최초로 터진 부부싸움의 첫 마무리를 제대로 못한거야. 숙이가 그랬을 때, “그래. 내가 이제부턴 잘할게. 우선 얼마라도 보낼테니까 어머니 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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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랬어야 하는건데 자존심 마귀가 꼬시는대로 넘어간게 잘못. 바보, 백치, 천치 같은 못난 놈. 미안하다고 한 마디 하면 될 것을, 알량한 자존심 내세워 국제전을 일으키다니 … 순간, 거울 속의 괴물에게 너무 화가나서 머리빗을 집어던졌는데, 이건 또 뭐야? 거울이 와장창창 깨져버리고 말았어. 아~ 대책 없는 최민! 결국 일을 내고 말았구나! 다시는 생각을 말아야지 … 나는 그런 혼자말만 되풀이 하고 있었어. 깨진 거울 앞에 서 있는 부시시한 머리에 T와 바지 단추는 잘못 끼워진 괴물. 그게 샤워도 못한 내 모습이야. FM에서 ‘첫발자욱’ 노래가 흘러 나오고 있었어. 첫단추를 잘못 끼운 바보가 첫발자욱을 남기며 침대로 돌아가 쓰러지고 있었어.
해설: 오늘은 등장하는 말이 많습니다.
인의예지신용, 싸가지개발탄, 산악과와 생명과, OWXY OWXTY, 조명탄, 죄사슬, 빠다춤, 수치, 따따블 수치, 머거리들을 위한 세레나데, 나뭇이파리, 노예춤, 개버릇, 19공탄 – 1 = 18탄, 나무거지, 사서거지, 거울, 첫단추, 내모습, 첫발자욱 …
여러분의 모습은 어떻십니까? 부끄러운 곳을 잘 가리고 다니십니까? 첫단추를 잘못 끼우면 가릴 곳을 못 가리고 다니게 됩니다. 들키면 챙피해서 거울만 깨는겁니다. 여러분 댁의 화장실 거울께서는 안녕하십니까? 쓸쓸한 첫발자욱을 남기시지는 않으셨는지요? 혹시 우리의 최민처럼 아직도 사고 치고 계시지는 않으십니까?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이만 줄입니다. 다음 시간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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