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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가운데 나타난 밀레니엄의 신비
“말씀폭탄
불폭탄”
WGM 밀레니엄 씨리즈 #9
말씀 가운데 나타난 밀레니엄의 신비
(하나님과 아버지와 그리스도의 신비한 지식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
워찌하야 그대들은 아직도 귀에 듣기 좋은 소리, 귀 간지러운 소리만 좋아하고 있소?
그라고, 좀 깨있다고혀는 분들이 베리칩이 어떻고 어쩌고 함시롱 겁만 잔뜩 준다고 한다던디,
그라면, 그 7년이 다여? 그 대음에 올
“새 천년 밀레니엄”은 어떻고?
천날 만날 적군 야그만 할 게 아니라,
기왕지사 이판사판막판인께 우리 아군 야그도 해야 쓰는거 아닌가베?
성경 말씀은 월매나 알고들 있는겨?
그게 다가 아닌디, 여그, 회까닥 뒤집어 지는 말씀 한 번 들어보소!
그것도, “목사님”과 주고 받는 “왕초와 꼽쌀이”의 재미난 야그란께.
아니, 아니, 그냥 맹숭맹숭현 야그가 아니고, 거 뭐시냐, 잉, 유식현 말로 “드라마”,
“뜨라마”라고 혀는 “총천연색 씨네마스코프”여, 이것이!
아, 뭐햐, 싸게 싸게 페이지 안 넘기뿔고 …
페이지 넘겨뿌렀냐? … 잉, 그려, 잘현다! 후딱 읽어뿐져!
MILLENIUM SRS #9
말씀 Ⅸ
말씀 가운데 나타난 밀레니엄의 신비
(하나님과 아버지와 그리스도의 신비한 지식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
본문말씀: 골로새서 2:1-8
내가 너희와 라오디케아에 있는 사람들과 또한 나의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많은 사람을 위하여 얼마나 큰 갈등을 가지고 있는지 너희가 알기 원하노니 이는 그들의 마음이 위로를 받고 사랑으로 엮어져서 완전한 이해의 확신이 모든 풍요함에 이르러 『하나님과 아버지와 그리스도의 신비의 지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그의 안에는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내가 이것을 말하는 것은 어떤 사람도 현혹하는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내가 비록 육체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기뻐하며 너희의 질서와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의 굳건함을 보노라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영접한 것 같이 그 분 안에서 행하라 그 분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세움을 받아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믿음 안에서 확고히 되어 그 안에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아무도 너희를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노략질하지 못하도록 주의하라 그것들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를 따른 것이며 그리스도를 따른 것이 아니니라』
서론: 하나님의 역사는 학자들에 의하여 철저히 무시되었다
무신론자들이나 신학자들이나 하나님을 모르기는
마찬가지가 되어버린 현실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기록된 책으로, 하나님은 성경을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단 한권만 쓰게 하셨는데, 오늘날에는 『세상 사람들』의 입맛과 취향에 따라 수십, 수백 여종의 성경이 이 세상에는 난무합니다. 비즈니스화 된 교회가 장삿속으로도 한 것도 그렇고, 또 사탄의 사주 아래 성경을 변개할 목적으로 쓰여진 무분별한 것들이 많습니다. 잘 못 쓰여지거나 잘못 번역된 것들이 너무나 많이 넘쳐나 하나님을 잘 못 알게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잘못 된 성경도 그렇지만, 하나님을 알 수 없게 만드는 것으로 이 세상의 학문, “과학과 철학”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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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 학자들이 쓴 책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이 세상을 온갖 이론과 설로 인본주의적 전통과 원리들을 만들어내고 찾아내어 체계화시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 수 없게 만듭니다. 즉, 하나님의 창조에 대항하여 하나님 없는 물질계에 대한 연구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온 천하 우주 만물 가운데서 하나님을 배제하고 자신들의 철학과 과학으로 학문의 체계를 세운 학자들이 영광을 받음으로써 『썩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 썩어질 사람의 형상과 새들과 네 발 달린 짐승들과 기어다니는 것들과 같은 버러지 형상으로 바꾸어 놓은 것』 입니다. 그런 세상의 초등 학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실까요? 천지 창조와 생명체의 신비는 밀레니엄에 들어서면, 그 모든 것이 완전히 새롭게 바뀌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신비한 제2의 창조라고도 할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에 욥에게 창조에 대한 질문들을 퍼부으셨습니다. 욥기 38장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로 시작하시는 하나님의 준엄한 질문에 세상 학자들이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
누가 그 치수를 재었는지 네가 아느냐?
누가 그 위에 척량줄을 띄웠느냐?
누가 바닷물이 마치 태에서 물이 터져나온 것 처럼 쏟아져 나왔을 때
바다를 문들로 막았느냐?
누가 범람하는 물에 물길을 나누었으며 누가 천둥의 번개에 길을 내며
사람 없는 땅에 비를 내리게 하고 사람 없는 광야에 비를 내리게 하였으며
누가 황량하고 황폐한 땅을 적셔 주며
연한 풀에서 싹이 돋아나게 하였느냐?
누가 이슬 방울을 낳았느냐?
누가 속에다 지혜를 주었느냐? 또한 누가 마음 속에 명철을 주었느냐?
누가 지혜로 구름을 셀 수 있겠느냐?
누가 하늘의 병들(※참조)을 멈추게 할 수 있겠느냐?
누가 까마귀 새끼들이 하나님께 울부짖고 먹이가 없어 방황할
때에 그 까마귀를 위하여 그의 먹을 것을 마련해주겠느냐?
하나님께서는 “무엇이, 어떻게” 그렇게 했느냐고 물으시지 않고 “누가” 그렇게 했느냐고 물으십니다. 만약, 무슨 원리로 어떻게 그렇게 되었느냐고 물으셨다면, 자신의 분야에서 학위를 받은 현대의 학자들은 자기 나름대로 깨달은 원리를 열거하면서 사람들에게 권위를 얻으려 하겠지만, “누가 그렇게 했느냐?”는 질문에는 과연 그들이 대답할 수 있을까요? 대답 할 수 없습니다.
욥기 38장의 “병”은 계시록 16장의 “호리병”과 짝을 이루는 말씀으로 개역은 “호리병”을
“대접”으로 번역했음. 즉 “병”은 “재앙”을 뜻함 (대접 재앙 = 호리병 재앙) 56
세상 학문들은 이미 존재하는 현상에 대해서만 설명하려 할 뿐, 그 존재의 근원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리학자가 양자론은 설명할 수 있겠지만, 양자나 전자 그 자체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답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있는 것을 가지고 “어떻게”만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천둥과 번개는 “어떻게 나타나느냐?”고 물으신다면, 학자들은 양전기와 음전기의 상호 작용은 설명해도 “그러면 그 양전기와 음전기는 누가 만들었냐?”고 물으신다면 그들은 대답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학문들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얼마나 유치한 초보 지식인지 알 수 있습니다. 태풍이나 가뭄과 홍수 같은 자연계의 현상들에 대한 과학적 연구 결과를 발표함으로 자신들의 위상을 높이려 하는 학자들을 비웃으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입김으로 서리가 내리고 물의 너비가 줄어드는도다 구름은 그 분의 계획대로 돌아다니니 이는 그것들로 그 분이 명령하신 것은 무엇이나 땅에 있는 세상의 표면에서 이루게 하려 함이라(욥37:10,12)”고 말씀하실 것 입니다. 세상의 유치한 학문들이 어떻게 그 근원의 문제를 알 수 있겠습니까? 물질계의 자연 현상들의 원리를 밝혀 인류로 하여금 그 혜택을 누리게 하는 이론들을 발표할 때마다 학계의 존경 속에 그 소득이 늘어나는 세상 학자들은 “어떻게 하나님의 창조의 손의 능력이 나타나는 가에 대한 원리”만을 제시해 줄 뿐, 그들이 잘 못하고 있는 중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모든 것은 자연현상이며 천재지변으로 결론짓게 함으로 그들의 이론을 배우면 배울수록 하나님을 모르게 하는 것 입니다. 다시 말해서, 『현대 신학을 포함한 세상 학문들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지혜를 도둑질하고 있는 것』 입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골로새서 2장 8절 말씀에서 “아무도 너희를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노략질 하지 못하도록 주의하라 그것들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를 따른 것이며 그리스도를 따른 것이 아니니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경고는 과학의 발전이 최고조에 달했다고 하는 21세기를 사는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에, 그리고 신학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 입니다. 현대에 와서, 세상 현상을 연구하는 일반 연구소 학자들의 하나님에 대한 무지함이 대부분의 신자와 신학교와 신학자들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본론: 참다운 신학과 신학자들이 과연 얼마나 되는가?
올바른 성경을 가르치는 배움의 터전은 어디에 있나?
오늘날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이 어떻습니까? 신학교는 하나님을 바로 알기 위해 세워진 학교이고, 하나님을 아는 길은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 밖에 없는데, 현대의 신학교는 하나님의 말씀은 제처놓고 본문이 경고하는 “사람의 전통이나 철학”을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까? 성경 박사는 찾아볼 수 없고 철학 박사, Ph D들만 양산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러므로 그 교수 내용은 “하나님과 아버지와 그리스도의 신비의 지식”이 아닌 “사람의 주장을 따르는 인성교육” 으로 전락하고,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아는 것이 경건”이 아니고 “물질계부터 얻는 이익을 경건”이라고 하는 자들이 범람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그 결과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만일 누군가가 다르게 가르치며 건전한 말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따른 교리에 일치하지 아니하면 그는 교만해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고 다만 질문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거기서 시기와 다툼과 악담과 사악한 의심이 생겨나며 마음이 부패하고 진리를 상실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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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이 경건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교회에서 장사하고 남긴 돈을 선교비랍시고 쓰는 따위의 예배 기술자들) 사이에 무익한 논쟁이 일어나느니라 그런데서 네 자신은 빠져 나오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는 것이 분명하니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이것들로 만족할 것이니라(딤전6:3-8)”고 했습니다. 그런데서 빠져나오라고 권면한 것이지요. 그 증거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곳은 신학교든 교회든 그들이 말하는 “경건의 이익, 돈 먹고 돈 먹기”의 무익한 논쟁이나 일삼고 사악한 의심과 다툼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죄를 가져온 마귀의 수중에 사로잡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따라가 하나님을 찾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라고 고린도후서 4장 3,4절은 증거합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려졌다면 그것은 구원 받지 못한 자들에게 가려진 것이라 그들 가운데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복음의 광채가 그들에게 비치지 못하게 하느니라” 참으로 오늘 말씀대로 다른 것을 가르치고 경건에 따른 그리스도의 말씀과 교리에 일치하지 않는 교회와 신학교가 차고 넘처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결론: 거기서 나와 말씀만을 배우고 가르치는 곳을 찾아가라
천지창조의 신비함이 다시 나타나는
밀레니엄 때 있을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를 기도하라
마귀가 지금까지 만들어서 사람들을 현혹하고 속인 걸작품이 무엇입니까? “공산주의” 와 “자본주의(물질만능주의)” 입니다. 마귀는 이 두가지 사상을 만들어내서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무신론을 온 세상에 전파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가능할까요? 자신이 차지한 물질계를 보여줌으로 그 물질계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못 보도록 교묘한 연막을 친 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부추켜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도록 했던 에덴의 사건 이후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일 입니다. 다시말해서, 인간을 유혹하는 이러한 유물사상이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게 함으로써 하나님 안에 있는 모든 신비한 지혜와 지식과 보화를 볼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심지어는, 신비한 지혜와 지식과 보화 대신 썩어질 지식과 보화에 대한 탐욕이 하나님의 교회마져도 물들게 했습니다. 즉, 『경건이 이익(”경건한 자는 축복을 받는다”식의 기복주의)이다』라는 잘못된 사상에 물들어 영적인 복 보다는 물질적인 복을 받은 사람이 경건한 믿음의 소유자라는 헛된 믿음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교회도 비즈니스화한 교회주식회사요, 담임은 그 회사 회장님이라고 해야 할 판 입니다. 그렇게 교회들이 타락하여 세상 속으로 끌려가다가 보니 마귀가 계획한 통합 운동(에큐메니칼운동)에 끌려 들어가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것 입니다. 세상에 복음의 빛을 비추어야 할 교회들이 세상의 유물사상에 물들어 있는 것은 지금이나 옛날이나 같습니다. 이스라엘의 백성과 제사장들이 하나같이 성전 안에서도 우상을 섬기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으며, 메시야가 오셨는데도 그 분을 죽이는 불행이 초래한 큰 고통은 지금까지도 계속 되어오고 있습니다. 옛날이나 남의 나라를 탓할 때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들 문제입니다. 특히, 한국교회들이 신비의 말씀을 멀리하고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직전에 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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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가 무엇입니까?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이루어지는 것 아닙니까? 신비주의를 말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멸망 가운데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 그것이 신비 아니면 무엇이 신비한 일이겠습니까? 구원은 물론이요, 이제 곧 온 세 상이 새롭게 변화해 회복되는 것 또한 신비 중의 신비가 아닙니까? 그러한 지식을 갖게 하는 “말씀”이 “신비의 지식” 아닙니까?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 안에 있는 그 『신비의 지식』과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상속자로서 아버지로부터 『받게 될 유업』이 있는 사람들 입니다. 그 『신비의 지식』을 깨닫기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자세히 공부하여 밀레니엄을 맞을 준비해야 할 때가 지금 입니다. 앞으로 시작할 킹 제임스 성경 학교는 돈이나 받고 쯩이나 파는 그런 학교가 아닙니다. 『신비의 지식 안에 있는 지혜와 숨겨진 신비의 보화를 찾도록 하기 위한 학교』 인 것 입니다. 이 학교를 통해 많은 구원의 역사가 나타나고, 이제 곧 다가올 밀레니엄의 때에 하나님께서 새로운 새 세상을 창조하시는 신비한 역사를 배우고 가르치는 학교가 되도록 다니엘 처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