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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의 여정에서 지각을 초월한 축복을 누리는 사람들
“말씀폭탄
불폭탄”
WGM 밀레니엄 씨리즈 #10
밀레니엄의 여정에서
지각을 초월한 축복을 누리는 사람들
(하나님의 자녀가 이 세상에서 누리는 지각을 초월한 축복들)
워찌하야 그대들은 아직도 귀에 듣기 좋은 소리, 귀 간지러운 소리만 좋아하고 있소?
그라고, 좀 깨있다고혀는 분들이 베리칩이 어떻고 어쩌고 함시롱 겁만 잔뜩 준다고 한다던디,
그라면, 그 7년이 다여? 그 대음에 올
“새 천년 밀레니엄”은 어떻고?
천날 만날 적군 야그만 할 게 아니라,
기왕지사 이판사판막판인께 우리 아군 야그도 해야 쓰는거 아닌가베?
성경 말씀은 월매나 알고들 있는겨?
그게 다가 아닌디, 여그, 회까닥 뒤집어 지는 말씀 한 번 들어보소!
그것도, “목사님”과 주고 받는 “왕초와 꼽쌀이”의 재미난 야그란께.
아니, 아니, 그냥 맹숭맹숭현 야그가 아니고, 거 뭐시냐, 잉, 유식현 말로 “드라마”,
“뜨라마”라고 혀는 “총천연색 씨네마스코프”여, 이것이!
아, 뭐햐, 싸게 싸게 페이지 안 넘기뿔고 …
페이지 넘겨뿌렀냐? … 잉, 그려, 잘현다! 후딱 읽어뿐져!
MILLENIUM SRS # 10
말씀Ⅹ
밀레니엄의 여정에서
지각을 초월한 축복을 누리는 사람들
(하나님의 자녀가 이 세상에서 누리는 지각을 초월한 축복들)
본문 말씀 : 로마서 5:1-1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① 하나님과 화평을 갖느니라』 또 그 분으로 인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이 은혜 안에 믿음으로 나아가며 하나님의 영광의 소망 안에서 즐거워 하느니라 이 뿐만 아니라 우리가 『② 환난 중에서도 즐거워하나니 환난은 인내를 이루고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라 소망이 부끄럽지 않은 것』은 『③ 우리에게 주신 성령에 의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 속에 부어졌기 때문이라』 우리가 아직 연약하였을 때 그리스도께서 때가 되어 경건치 아니한 자들을 위하여 죽으셨느니라 의인을 위하여 죽으려는 사람이 거의 없고 선한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무릎쓰는 사람이 간혹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그의 사랑을 나타내셨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그의 피로 의롭게 되었으니 더욱더 우리가 그를 통하여 『④ 진노로부터 구원받게 되리라』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도 그의 아들의 죽음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으니 더욱더 화해하게 된 우리는 그의 생명으로 인하여 구원받게 되리라 그 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속죄를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 하느니라
서론: 나는 진정으로 고난을 바라고 있다고 할 수 있나?
고난을 당하는 자에게는 상상을 초월한 복이 임한다
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이 자신이 구원을 받아 의롭게 된 후에 자신이 겪는 『어떤 고난과도 상관 없이 육신의 환경을 초월하여 누리는 능력』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는 바, 이 능력은 우리가 밀레니엄에 들어가서 누리게 될 능력과도 같습니다. 밀레니엄 때에는 육체의 모든 고통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즉, 고통과 아픔과 고난이 사라지게 되는 은혜가 임하는 것 입니다. 그 밀레님엄 시대를 살아본 적이 없는 사도 바울이 어떻게 그 모진 고난과 환난을 당하면서도 동일한 능력을 체험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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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 안에 계셨던 그리스도의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이 그렇게 했습니다. 그 능력은 오늘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사함을 받아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도 누릴 수 있는 동일한 능력입니다. 고난을 당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지요. 윈 형제가 감옥에서 고문으로 다리뼈가 다 짖이겨졌지만 부서진 뼈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옥문이 열리며 멀쩡하게 걸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자 성령의 능력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중국판 신사도행전입니다. 고문 속에서도 평안을 누리며 부서진 뼈가 다시 붙고 옥문이 저절로 열리는 것은 기적, 우리의 『지각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축복』입니다. 그 경비가 삼엄한 옥문이 저절로 열리는데도 공안들은 그것을 볼 수 없었지요. 동일한 능력과 축복이 우리들에게도 나타날 수 있지만, 그러나 그 축복은 누구나 다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 축복을 누리기를 원하는 자, 기쁨으로 고난을 받아들이는 자들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육체로 태어나는 것은 차별이 없지만, 태어난 후의 삶 속에서 누리는 것은 사람마다 다 다른 것 처럼, 영적인 출생 이후에 누리는 축복도 다른 것입니다. 즉, 고난이 없으면 그 복도 없습니다. 그 축복은 어떤 것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본론1: 밀레니엄의 여정에서 고난을 당하는 자에게 임하는 지각을 초월한 축복 ① ━ 평강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찌어다
이 악한 세상에서 올바른 신앙 생활을 하려면 고난을 피할 수가 없게 되어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이 누리는 첫 번째 축복은 『①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평을 갖는다』는 것 입니다. 화평, 평화, 평강이 무엇인가요? 이 평화는 세상이 말하는 평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화평, “내가 너희에게 화평을 남겨 두나니 나의 화평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나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하신 그 화평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주신 첫 번째 선물입니다. 요한복음 20장 19절에 나오지요. “그리하여 주의 첫 날 그 날 저녁에 제자들이 모인 곳에는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들이 잠겨 있었는데 예수께서 오셔서 그 가운데 서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 평강이 있으라”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시자 그대로 되었습니다. 곧, 말씀의 능력으로 나타나는 평화입니다. 세상의 어떤 환경과도 상관없는 기적같은 초자연적인 평강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 평화는 우리들 안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왕국에서 누리는 것이요, 또한 새천년 밀레니엄에서 누리는 평강입니다. 로마서 14장 17절에, “하나님의 왕국은 성령 안에서 의와 화평과 기쁨이라” 증거하신 이 화평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접하여 받는 성령을 통하여 모든 죄들이 사함을 받아 의롭게 될 때에 찾아오는 평강으로 받은 자 만이 알 수 있습니다. 죄 사함의 기쁨으로 충만해지는 평강입니다. 그 평강은 모든 환경 ━ 모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평강입니다. 사도 바울이나 윈 형제처럼 죽어야 하는 순간 속에서도 죽음을 피하고 누리는 평강입니다. 이는 마치 기드온이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에 죽어야 마땅함에도 죽지 않을 것이라는 주의 천사의 말을 듣고 하나님을 본 그 자리에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여호와 샬롬” 이라고 한 그 평강입니다. 죽음을 피할 수 있는 능력은 사람에게 없습니다. 또,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평강은 그 정도의 강한 능력으로 임하는 기적적인 평강입니다. 사형장에서 사면령을 받고 형집행이 정지될 때의 그 평강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죄로 인해 죽어야 할 사형수 같은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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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절박하게 죄인됨과 그 결과인 사망을 깨닫는 사람도 드물지만, 거기서 살아났다는 평강과 기쁨을 누리는 자는 더욱 드뭅니다. 하나님과 원수 사이였던 죄인인 우리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로 죽음을 피하고 하나님과 화평하는 관계를 갖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평강을 누리고 있습니까?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죄와 사망의 이 세상에서 이미 나와 성령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이 있는 하나님의 왕국 안에서 살기 때문에 정죄가 없는 화평의 삶을 누리게 된다고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1,2절에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행하느니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시켰기 때문이라” 생로병사의 인생 자체가 고난의 행군입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죄와 사망의 법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죽음을 초월하는 화평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본론2: 밀레니엄의 여정에서 고난을 당하는 자에게 임하는 지각을 초월한 축복 ② ━ 즐거움
환난 중에서도 즐거워할찌어다
두 번째로, 고난스럽지만, 믿음으로 달려갈 길을 다 하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② 즐거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비록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이 주는 것을 바라보지 말고 항상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 때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 그리스도의 날”을 바라보기 때문에 “즐거워 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영광스럽게 다시 오시는 그 분을 바라보는 소망 안에서 사는 삶은 즐겁습니다. 지금도 기쁘고 즐거운데, 그 날에 누리는 즐거움이야 더 말 할 것도 없지요. 밀레니엄은 그것을 바라보는 믿음의 실상입니다. 밀레니엄은 막연한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 속에서 바라보는 실상입니다. (히11:1) 우리가 고난 가운데서도 왜 기뻐하고 즐거워합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그 영원한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힘 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화평함의 관계를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소망으로 즐거워하는 삶을 살게 될 때 세상에서 환난을 당해도 우리는 슬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난을 기다리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이 세상에서 환란을 당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런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화평을 지니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할 것이나 기운을 내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요16:33)” 바울도 히브리인들에게 예수께서 받으신 고난에 대하여 “그는 자기 앞에 놓인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견디시고 수치를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고 증거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받아 의롭게 되어 하나님과 화평함을 갖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앞에 있는 즐거움, 그리스도의 날, 휴거의 날, 밀레니엄에 들어가는 그 날』을 바라보면서 모든 고난과 수치를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환난 가운데서도 즐거워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그 이유인 『소망』에 대하여 『그리스도인들이 환난을 겪을 때 인내심이 생기게 되며 → 인내할 때 연단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과 기쁨을 경험하게 되고 → 이 때 하늘에 대한 진정한 소망을 가지게 된다』는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경험한 것은 환란과 인내와 연단 속에 있을 때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 속에 부어지기 때문에 『비록 이 땅에서 고난과 수치 속에서 살지라도 → 그리스도의 날을 바라보는 소망을 인하여 부끄러움 없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대하게 전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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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는 간구를 세 번 했을 때 “내 은혜가 네게 충분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게 됨이라(고후12:9)”는 응답을 받고 오히려 그는 자신의 약함을 자랑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능력이 자신 안에 거하기를 원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약함, 받는 고난을 인하여 그리스도를 자랑할 수 있습니까? 지금의 우리는 아직은 살 만하지 않습니까? 세상이 살만한 데가 못 되어 그 핍박을 피해 옛 성도들은 광야와 산속과 동굴과 토굴로 유리하여 살면서도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렇게 살아도 즐거운 하늘의 소망을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어렵고 곤고한 삶이나, 그 날을 기다리는 밀레니엄의 소망을 가지고 즐겁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본론3: 밀레니엄의 여정에서 고난을 당하는 자에게 임하는 지각을 초월한 축복 ③ ━ 사랑
너희에게 사랑을 부어주노라
환란 가운데 인내하며 즐거워하고 소망을 가지 사람에게 나타나는 세 번째 축복은 『③ 사랑』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주는 능력』 입니다. 이 사랑의 능력이 예수님처럼 원수를 위하여 죽을 수 있는 능력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독생자를 죽인 원수였지요. 우리들의 죄가 그 분을 죽였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의 피를 믿었을 때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와 화해하셨을 뿐 아니라, 우리를 양자로 삼으시고 그리스도의 종이요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상속자가 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원수도 사랑하는 그 사랑의 능력이 손양원 목사님이게 나타난 일은 너무 유명합니다. 옛날 손양원 목사님에게 퍼부어주시는 이 사랑의 능력이 임하여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고 아들로 삼아 주의 종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이지요. 여러분에게는 그런 사랑의 능력이 나타납니까? 예수님과 손 목사님이 보여준 이 사랑의 능력은 공산권이나 모슬렘권의 지하교회 성도들에게도 나타납니다. 옥에 갖혀있는 그 곳의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주는 영혼 사랑의 헌신은 지금도 그들의 마음 속에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이 아니겠습니까? 밀레니엄을 향하여 고난 속에서도 인내하며 즐거워하고 소망을 포기하지 않고 갈 길을 달려가고 있는 성도들에게 나타나는 그 사랑의 능력이 우리들 모두에게도 나타나기를 기도합니다.
본론4: 밀레니엄의 여정에서 고난을 당하는 자에게 임하는 지각을 초월한 축복 ④ ━ 구원
너희가 구원을 얻고 진노를 피하리라
네 번째로, 고난 속에서 밀레니엄을 향해 가는 우리는 『④ 구원』을 얻습니다. 구속사의 관점에서 죄인되었을 때 우리가 받은 영적인 구원이 아니라, 밀레니엄의 관점에서 앞으로 대환란 때에 있을 진노의 재앙에서 벗어나는 육체적인 구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심판이 일어나가 전 우리는 휴거해 육체가 부활하는 완전한 회복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완전한 구원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게 된 우리는 그 분을 통하여 마지막 때 있을 진노로부터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확신을 할 수 있습니다. 『진노』가 무엇입니까? 장차 온 땅을 시험하는 『대환란의 때』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구원의 확신이 있으므로 평안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성령께서 필라델피아 교회의 천사를 통해 약속하신 그 약속을 받은 자처럼 마음 속에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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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기 때문에 나도 시험의 때에 너를 지키리니 이는 온 세상에 임하여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을 시험하는 때라(계3:10)” 다시말해서, 우리는 대환란 전에 휴거된다는 확신 속에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속죄를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앞으로 임할 진노의 날에 들어가지 않고 고난 중에서도 주님을 만날 소망이 있음으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는 삶』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환란을 당하고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에게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모든 일에 감사하라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 관한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9)” 한대로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기도하며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결론: 고난 가운데서 축복을 받는 길은 성령의 역사하심 외에는 없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 날까지 받은 복을 누리며 살라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밀레니엄을 향하여 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마땅히 누려야 할 이 네 가지의 축복』은 사도 바울이 친히 누리면서 경험한 것들을 증거한 것입니다.
물론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능했지요. 우리가 받은 성령은 그가 받은 성령과 동일하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령과도 동일한 것으로 그 분을 죽은 자로부터 살리신 영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그 성령의 도우심을 믿고 나아갈 때 우리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축복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게 하셔서 그 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처럼 우리도 믿음 안에서 그 날까지 행할 때 부활한다는 소망을 가지고 살면서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휴거의 날, 밀레니엄의 그 날을 바라보는 소망』을 가진 사람은 → 누구나 그 분께서 정결하신 것처럼 『자신을 정결케 하는 회개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자신을 정결케 하여 이 복을 누리면서 승리의 그 날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