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여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셨습니다. 그는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것입니다.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정해진 것인데(히 9:27), 하나님께서 그를 산 채로 데려가셨습니다. 사도바울은 히브리인들에게 믿음에 대하여 편지할 때에 에녹에 대하여 증거했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translated), 하나님께서 그를 옮기셨으므로(translated) 다시 보이지 아니하더라. 그는 옮겨우기(translation)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는 이 증거를 지녔느니라.”(히 11:5)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셨다는 말을 하나님께서 그를 옮기셨다(translated)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를 단순히 물리적으로 어떤 다른 장소를 옮기셨다(transferred)고 말씀하시지 않고 그를 어떤 다른 형체로 변화시키셔서 하늘로 데려가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몸의 부활, 즉 성도들의 휴거에 대하여 증거할 때에 하나님께서 에녹을 어떻게 옮기셨는지(translated)에 대하여 증거하면서 살아있을 때 휴거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에녹처럼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질 것이라고 증거했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오히려 우리 모두가 변화될 것이니 마지막 나팔 소리에 눈깜짝하는 순간에 그러하리라. 나팔 소리가 나면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몸으로 일으켜지며 우리도 변화되리라. 그리하여 이 썩을 몸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몸을 입고 이 죽을 몸이 죽지 아니할 몸을 입으리라.”(고전 15:51-53)
창세기 기자는 에녹이 삼백 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였다(walked with God)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히브리서에서 에녹이 하늘로 옮겨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는 이 증거를 지녔다고 증거하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하여 증거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분이 존재하시는 것과 그분이 자기를 열심히 찾는 자들에게 보상하는 분이심을 마땅히 믿어야 하느니라.”(히 11:6)
에녹은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것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그분을 열심히 찾는 삶을 삼백 년 동안 살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보상하시는 것을 믿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기 전에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는 그의 아들 므두셀라를 낳은 후 그 아들 이름의 뜻대로 장차 어떤 큰 일(홍수심판)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으면서 그가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하늘로 옮겨질 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라고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앞으로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겨질 사람들이 있을 것에 대하여 마르다에게 말씀하시면서 “네가 이것을 믿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며 또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누구나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이것을 믿느냐?”(요 11:25-26)
사도 바울은 첫째 부활, 즉 휴거에 대하여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할 때 어떤 자들이 휴거에 참여하게 되는 지에 대하여 증거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오직 이생뿐이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비참한 사람이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잠들었던 자들이 첫열매들이 되셨느니라.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같이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이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을 살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각자 자기의 서열대로 되리니 그리스도가 첫열매들이요,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그분께 속한 사람들(Christ’s)이라. 그 후에는 끝이 오리니 주께서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폐하시고 그 왕국을 하나님, 곧 아버지께 바칠 때라.'(고전 15:19-24)
사도 바울은 세 번에 걸친 첫째 부활(휴거)에 대하여 증거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첫열매”(단수)가 아니고 “첫열매들”(복수)이라고 증거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실 때에 잠자던 많은 구약성도들이 부활하여 휴거된 사실을 증거한 것입니다. 이 광경을 목도한 사도 마태는 이 엄청난 광경에 대해 증거했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큰 음성으로 소리지르신 후 숨을 거두시더라. 그런데, 보라.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둘로 찢어지고 땅이 흔들리며 , 바위들이 갈라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잠들었던 많은 성도들(구약 성도들)의 몸이 일어났으며 주께서 부활하신 후에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도성으로 들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더라. 백부장과 그와 함께 예수를 지키고 있던 사람들은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크게 두려워하며 말하기를 ‘참으로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라고 하더라.”(마 27:50-54)
구약 성도들의 휴거는 이천 년 전에 이미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시대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과 살아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하게 되는 두 번째 휴거도 얼마 남지 않아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두 번째 휴거에 참여하게 되는 신약 성도들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그분께 속한 사람들(Christ’s)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하여 갈라디아인들에게 이렇게 증거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친절과 선함과 믿음과 온유와 절제니 그러한 것을 반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Christ’s)은 그 육신을 욕정과 정욕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 안에서 산다면 또한 성령 안에서 행하자. 서로 격분시키고 서로 시기함으로써 헛된 영광을 구하지 말자.”(갈 5:22-26)
사도 요한은 휴거 되는 성도들이 얼마만큼 정결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증거했습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리게 하셨는가.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나니, 이는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우리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이 되리라는 것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그분 그대로 그분을 볼 것이기 때문이라. 그분 안에서 이 소망을 가지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이 정결하신 것처럼 자신을 정결케 하느니라.”(요일 3:1-3)
그리스도께 속한 삶을 살지 못하다가 대 환란에 넘어가는 사람들은 대 환란을 통과하면서 마지막 이삭줍기 같은 소수의 사람들이 엄청난 고난 가운데 마지막으로 부활하는 기회를 잡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환란성도들이 첫째 부활과 그들이 받을 유업에 대하여 증거했습니다. 이때는 사도 요한의 증거한 대로 그리스도께서 왕국을 아버지께 바칠 때인 것입니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그들이 그 위에 앉았는데 심판이 그들에게 주어졌더라. 또 예수에 대한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목베임을 당한 혼들도 보았는데, 그들은 그 짐승에게나 그 형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표를 그들의 이마 위에나 손에도 받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므로 그들은 살아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그와 함께 통치하더라.”(계 20:4)
지금이야말로 우리들도 에녹처럼 살아서 주님을 만나는 믿음을 가지고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로서 모든 육신적인 것들을 십자가에 못박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을 살면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면서 각자에게 주시는 주님의 일들을 넘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휴거를 바라보는 성도들을 향하여 증거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라. 흔들리지 말라. 항상 주의 일을 넘치게 하라. 이는 너희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아니한 줄을 너희가 앎이니라.”(고전1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