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미리 말씀하신 바대로 지금은 마지막 때 중의 마지막 때입니다. 온 세상으로부터 고통의 소리들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옛날 노아가 방주의 들어간 후에 하나님께서 하늘의 깊음의 창들을 여시고 사십 주야로 비를 내리게 하셨습니다. 온 세상은 심판의 홍수로 온 지면이 물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깊은 교제 속에서 주의 음성을 듣고 순종한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방주 사면이 세상으로부터 가려져 있었기에 방 주 밖의 참담한 광경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방주 삼층 꼭대기로부터 일 큐빗 아래 쪽에 있는 창문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방주 안에 있었던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평안 중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었으며 하나님의 심판이 지나갈 때를 기다리면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도 방주 같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교제하며 살고 있는 그리스도의 참된 신부 외에는 이미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영적으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온 세상이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심판 속에 점점 들어가고 있으며 고통 중에 있지만 그리스도와 영적인 교제를 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왕국 안에서 의와 화평과 기쁨(롬 14:17)을 누리면서 그리스도와 교제하면서 그리스도께서 데리러 오시는 그 날을 평안 가운데 기다릴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솔로몬 왕을 통하여 자신과 술렘 여인과 자신 사이에 노래를 하게 하신 것은 먼 훗날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앞으로 오실 왕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과 기도 가운데 영적인 교제 속에서 영적인 노래들을 주고 받는 아름다운 광경에 대해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솔로몬을 사랑하는 술렘 여인이 “그를 그의 입맞춤으로 내게 입맞추게 하소서. 이는 당신의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니이다. 당신의 좋은 향유 내음으로 인하여 당신의 이름이 쏟아 놓은 향유 같으므로 처녀들이 당신을 사랑하나이다.”(솔 1:2-3)라고 고백한 것은 자신이 솔로몬 왕과 아주 친근한 사이임을 담대하게 고백한 것입니다.
성령을 받아 그리스도와 약혼한 그리스도인들은 끊임 없이 깊은 기도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와 약혼한 자들로서 그분께서 다시 나타나셔서 혼인하는 그 날을 바라보면서 항상 아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포도주 처럼 일시적인 기쁨을 주는 어떤 것보다도 깊은 기도 가운데 주님과 나누는 교제 속에서 주님이 주시는 사랑과는 비교될 수 없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술뤰 여인은 ” 나를 이끌어 주소서. 우리가 당신을 따라 달려가리이다. 왕이 나를 그의 방들로 이끌어 들이셨으니 우리가 당신을 포도주보다 더기억하리이다. 정직한 자들이 당신을 사랑하니이다.”(솔 1:4)라고 말씀 드리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와 이미 약혼한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방으로 이끌어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과 단 둘이 방에 들어가서 교제 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술렘 여인은 자신의 얼굴이 검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자신을 놀리려고 흘겨보는 예루살렘의 딸들을 향하여 그래도 자신이 아름답다고 말하면서 그 이유에 대하여, “햇볕이 내게 내리쬐므로 내가 검게 되었다고 나를 흘겨보지 말라.”(솔 1:6)고 말했습니다.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그리스도인들은 의의 태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깊은 교제를 할 때마다 자신의 죄들이 드러나게 되어 영적으로 검게 될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교제를 가질 수 없는 예루살렘의 딸들인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과 교제 속에서 이루어지는 이 놀라운 은혜를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랑하는 주님의 손도 한 번 잡지 못하는 것처럼 육신적인 삶만을 누리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침내 술뤰 여인은 잠시 동안 솔로몬 왕과 교제가 끊어지게 되자 놀라서 자신이 마치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이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고백은 잠시 기도를 게을리 하여 주님과 교제가 소원해진 그리스도인들의 고백이기도 한 것입니다:
“오, 내 사랑하는 당신이여, 정오에 당신의 양떼를 어디에서 먹이시며, 어디에서 쉬게 하시는지 내게 말해 주소서. 어찌하여 내가 길을 벗어나 당신의 동료들의 양떼들 곁으로 가는 한 마리처럼 되어야 하리이까?”솔 1:7)
솔로몬 왕이 마침내 술렘 여인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기도 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 너 여자들 중에서 가장 어여뿐 자야, 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양떼의 발자취를 따라가 목자들의 장막들 곁에서 내 염소 새끼들을 먹이라.”(솔 1:8)
주님께서는 자신의 신부가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어여쁘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보시는 모습은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니라 앞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자신과 같이 변화되는 모습을 미리 보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다윗 왕이 고백한 것처럼 “내가 깨면 주의 모습으로 만족하리이다.”(시 17:15) 이 때를 바라보시면서 주님께서는 믿음으로 자신이 바라는 것이 실상이 되는(히 11:1) 그 때를 미리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지난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양떼들을 돌보시고 계셨습니다. 아벨로부터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다윗을 비롯하여 선지자들 같은 양떼들을 돌보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또한 그들 모두는 주님께서 주신 염소 새끼들을 먹였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 사람들은 주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주님의 새끼 염소 같은 일들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새끼 염소는 주님과 기도하면서 교제하는 중에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작은 일부터 주님을 위하여 하나씩 행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주님과 깊은 기도를 통해 교제를 하지 않으면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딸들 같은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함으로 인해 평생을 새끼 염소 한 마리도 먹이지 못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시는 주님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길에 서서 보고 옛 길, 그 선한 길이 어디 있는지 물어 그곳으로 걸어가라. 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혼들을 위하여 쉼을 얻으리라.’ 하였으나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는 그곳으로 걸어가지 아니하리라.’하는도다.”(렘 6:16)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함으로써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선한 길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 길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 하는 기도는 그분께서 주시는 음성을 들을 수 없는 것입니다.
솔로몬 왕은 술렘 여인을 칭찬하면서 그녀가 파라오의 병거의 준마라고 말했습니다. 준마는 전쟁터에 나가서 결코 두려워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는 말입니다. 이 말은 준마 같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싸움에서 마치 준마처럼 싸우는 것과 비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준마에 대하여 욥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말에게 힘을 주었느냐? 네가 그 목을 천둥 같은 소리로 옷 입혔느냐? 너는 그를 황충처럼 두려워하게 할 수 있느냐? 그의 콧구멍의 영광은 무섭도다. 그는 골짜기에서 땅을 긁으며 자기 힘을 즐기며 무장한 군인들을 맞으러 나가느니라. 그는 두려움을 비웃고 놀라지 아니하며 칼로부터 돌아서지 아니하느니라. 화살통과 번쩍이는 창과 방패가 그를 향해 덜컹거리고 그는 맹렬함과 사나움으로 땅을 집어삼키며 그 소리가 나팔 소리라고 믿지도 않는도다. 나팔 소리가 나면 ‘하, 하.’하며 웃고 멀리서 싸움 냄새를 맡고 대장들의 호령과 외침을 듣느니라.”(욥 39:19-25)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신부를 하늘로 데려가시기 위해 나타나시는 휴거의 날에 대한 때와 시기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자세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깨어서 기도하면서 주님과 깊은 교제를 회복해야 할 때이며 구원받아야 할 때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