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이 어떤 것인가에 대하여 정의하면서 아벨로부터 시작하여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들 모두는 믿음 안에서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모두는 살아생전에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약속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써 그 약속이 실상이 되어 확신을 갖게 하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함으로써 마음 속에 소중히 간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땅에서 타국인같은 순례자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마침내 오랜 후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본향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 유리 방황하면서 살았지만 그들이 태어난 고향을 바라보면서 Homesick에 젖어 들지 않고 그들이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하늘나라를 자신들의 영원한 고향으로 여기면서 그들이 마치 하늘에서 태어난 것처럼 하늘 본향에 갈 날을 바라보면서 믿음 안에서 세상에 살다가 떠났던 것입니다.
그 당시 그들이 살고 있던 세상에는 성령께서 오시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 안에 그리스도의 영을 주셔서 이 시대에 성령으로 거듭나서 영적인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간 그리스도인들처럼 하늘 본향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사도 베드로는 선지자적인 삶을 살았던 그들이 받았던 특별한 축복에 대하여 증거했습니다:
“이 구원에 관해서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에 관하여 예언한 선지자들이 열심히 조사하고 살펴보던 것이며, 그들 안에 계셨던 그리스도의 영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다가올 영광을 미리 증거하실 때, 그 영이 무엇을 , 또 어떤 시기를 지시하시는지 탐구하던 것이니라.”(밷전 1:10-11)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나타나셔서 은혜를 주시기 전 사천 년 동안 살았던 사람들은 소수의 믿음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소망 없는 비참한 죽음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사탄이 이 땅에 죄와 사망과 저주를 가져온 이후, 이 땅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첫 사람의 죄로 말미암아 땅이 저주받아 가시와 엉겅퀴로 가득 차게 되어 사람들이 땀을 흘려야 먹고 살 수 있는 비참한 상태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창 3:18).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실 때 땅의 사람들이 고생하면서 슬픔 가운데 살 것이며 사람들의 수명까지도 칠팔십 세로 줄어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어도 그 연수의 힘은 수고와 슬픔이니, 그것이 곧 끊어지면 우리가 멀리 날아가나이다.”(시 90:10)
그렇습니다! 사탄이 통치해 온 이 세상에 살고 잇는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일하면서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 그리고 거처할 집을 구하기 위하여 슬픔 가운데 살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택하여 만드시고 마침내 그들의 왕이시며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그들에게 제일 먼저 하신 말씀 속에서 그들이 더 이상 먹을 것 마실 것에 대하여 자유 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요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요하지 아니하냐?:……이런 것들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에게 이러한 모든 것이 필요한 줄 아시느니라. 오히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25,31,32,33)
예수께서는 그들이 먼저 구해야 하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 앞으로 자신이 세상 죄를 제거하시기 위해 죽으시고 부활 하실 때 자신을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의를 구하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 즉 왕국에 들어가기만 하면 목숨을 위한 모든 것들은 아버지께서 더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후에 아주 중요한 한 가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그날의 재앙(evil)은 그 날로 충분하니라.”(마 6:34)
이 말씀은 하루 하루의 삶이 재앙 속에 사는 삶이 될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앞으로 세상에 죄와 사망과 저주를 가져온 마귀를 멸하실 때까지 세상은 계속해서 재앙 속에 있게 될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도 끊임 없이 앞으로 살아갈 일에 대하여 두려움을 줌으로써 불 안 가운데 염려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자신의 자녀들에게 절대로 내일 일어날 일에 대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탄이 주는 두려움을 내어쫓으면서 그날 그날 은혜 주시는 주님을 신뢰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 주님의 말씀을 깨달은 사도 요한은 성도들에게 다시 한번 주님의 말씀을 상기시키기 위하여 증거했습니다: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나니,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내느니라. 이는 두려움에는 고통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해지지 못하였느니라.”(요일 4:18)
사도 바울도 목회자 디모데에게 두려움을 담대하게 내어쫓으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영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건전한 생각의 영이라.”(딤후 1:7)
우리 원수 마귀는 하나님의 믿음의 사람을 살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두려운 마음을 줌으로써 내일 일을 염려하게 함으로써 우리가 믿음 가운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지 못하게 함으로써 우리 앞에 놓인 하늘 본향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끊임 없이 유혹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한 가지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가 지고 가던 무거운 모든 죄의 짐들을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모두 제거하시고 우리가 지고 갈 십자가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고 가던 무거운 죄 짐들을 제거하시기 위해 피와 물을 다 쏟으시면서 주님께서 지고 가신 십자가를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을 따라오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마 16:24)
십자가가 어떤 것인지 깨닫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못박혀 죽으신 십자가를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죽기까지 우리 죄인들을 사랑하지 않으셨다면 십자가에서 죽으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이신 자신을 부인하지 않으셨다면 죽으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각자가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죽기까지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을 부인하지 않으면 이 십자가를 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는 우리 이웃이나 친구들, 교회멤버 또는 우리들 자녀들일 수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각자 에게 주신 십자가는 받은 사람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십자가를 지지 않고 주님을 따라간다면 주님께서는 쳐다보시지도 않으실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 속에서 우리는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나를 따르는 자도 나에게 합당치 아니하니라.”(마 1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