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람인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의 지식의 나무에서 나는 열매를 먹고 둘 다 눈이 열렸습니다. 눈이 열리자마자 제일 먼저 보게 된 것은 자신들이 벌거벗은 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자기들의 치마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사탄은 그들을 유혹할 때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의 눈이 열리고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되는 줄을 하나님께서 아심이라.”(창 3:5)
마침내 그들이 그 과일을 먹었을 때 뱀이 말한 대로 그들의 눈이 열렸으며 선과 악을 아는 일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일이었는데 그들 역시 선과 악을 알게 되어 그들이 하나님처럼 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눈이 열린 것으로 인해 엄마나 많은 것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며 그들의 후손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선악과를 먹고 눈이 열려 그들이 벌거벗었음을 알게 되고 선과 악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에게 가죽으로 옷들을 만들어 그들에게 입히신 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그 사람이 우리 중 하나와 같이 되어 선과 악을 알게 되니, 이제 혹 그가 자기 손을 내밀어서 생명 나무의 과실도 따서 먹고 영원히 살까 함이라.”(창 3:22)
그들은 눈이 열리고 선과 악을 알게 되었으나 에덴 동산에서 쫓겨남으로 인해 에덴 동산에서 만물을 다스리는 통치권을 상실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고통 가운데 땀을 흘려 흙을 갈아야만 먹을 수 있게 되었으며 고통 가운데 자식을 해산하는 저주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선과 악을 알게 된 후 그들이 낳은 가인이 자신은 악하고 아벨은 선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마침내 동생 아벨을 미워하여 이로 인해 아벨을 죽이는 죄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인류 역사 육천 년 동안 선과 악을 알게 됨으로 인해 끊임 없는 전쟁과 살육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자신들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 무화과나무 잎사귀를 엮어 치마를 만들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가죽 옷을 만들어 입히셨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세상에 태어나는 사람들은 육신적인 눈이 열려 자신들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 끊임없이 무화과나무를 엮어 치마를 만들어 입고 있지만 그 무화과나무 잎사귀는 잠시 동안만 수치를 가릴 수는 있지만 그들의 모든 수치들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태어나는 세상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눈이 열려 자신들의 수치가 드러나는 것을 보면서 무화과나무 잎사귀 같은 여러 가지 것들로 자신들을 가리고 포장하는 것을 봅니다. 지금 세상에는 무화과나무 상표가 붙은 온갖 화려한 옷들, 교육, 철학, 종교 등 다양한 것들로 자신들을 포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눈에는 단 한 가지 “위선” 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당시 가장 의롭고 선하고 정직하게 보였던 욥도 자신을 에워싸고 있었던 재물과 자녀들과 자신의 몸도 비참한 모습이 되었을 때 자신이 벌거벗은 사실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내 어미의 태에서 맨몸으로 나왔으니 내가 맨몸으로 그리 돌아가리이다.”(욥 1:21)
그렇습니다!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엮어서 만들어 놓은 무화과나무 잎사귀로 치마를 엮어서 자신들의 수치를 가리고 숲 속에 숨어서 하나님의 눈을 피해가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에덴 동산에서 숨어 있던 아담을 찾으셨던 것처럼 지금도 그들을 찾고 계시는 것 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음성에 대답하는 사람들에게 지금도 가죽 옷을 입혀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자신이 벌거벗은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죄인임을 고백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독생자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로 그들을 정결하게 씻으시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가죽옷으로 입혀주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로 옷 입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증거하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너희 가운데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 3:27)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을 받아 그리스도로 옷 입은 그리스도인들은 지금도 수치심으로 인해 하나님을 피해 숨어있는 사람들을 찾아내어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외치면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그분께서 오실 때까지 복음을 전하여 그들에게도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혀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에덴이 회복될 때까지 사도 바울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이 사역을 계속하라고 명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와 그의 왕국에서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을 심판하실 분 앞에서 네게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대비하라.”(딤후 4:1-2)
선지자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하여 예언할 때에 그들에게 찬양의 의복을 주게 될 것이라고 증거했습니다: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들을 정하여 그들에게 재 대신 아름다움을 , 슬픔 대신 기쁨의 기름을 , 무거운 영 대신 찬양의 의복을 주어 그들로 주의 심으신 의의 나무들이라 불리게 하여 주께서 영광을 받으시려는 것이라.”(사 61:3)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이브가 무화과나무로 치마를 엮은 것을 친히 보셨던 예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실을 볼 때에 그 당시 수많은 위선자들이 예수님을 박해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죽 옷을 입지 않고 위선의 옷을 입은 종교인들에 대한 그분의 심정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길가에 있는 한 그루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 나무에 가셨으나 잎사귀 외에는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자, 그 나무를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이제부터 네게서 영원히 열매가 맺히지 못할 것이라.’고 하시니. 그 무화과나무가 곧 말라버리더라.”(마 21:19)
부활하신 예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실 때에도 그들이 벌거벗을 것을 알지 못함에 대하여 책망하셨습니다. 이것은 마지막 때에 타락한 교회들이 영적으로는 벌거벗었지만 영적인 옷을 버리고 종교적이고 육신적인 무화과나무 잎사귀들로 치마를 만들어 입고 있던 아담과 이브처럼 되어버린 사실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하는도다. 나는 네가 차든지 덥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그처럼 미지근하여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하기 때문에 내가 너를 내 입에서 토해 내겠노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며, 부요하고, 아무 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지만 너는 비참하고, 가련하며, 가난하고, 눈 멀고, 헐벗은 것은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에게 권고하노니 내게서 불로 단련된 금을 사서 부요하게 되고, 흰옷을 사서 입음으로 너의 벌거벗은 수치를 드러내지 않게 하며, 또 안약을 네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내가 사랑하는 자마다 책망하고 권고하노니 그러므로 열심을 내고 회개하라,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노라.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그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으며 그도 나와 함께 먹으리라.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나와 함께 앉을 자격을 주리니, 이는 내가 이겨서 내 아버지와 함께 그의 보좌에 앉은 것과 같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계 1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