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자신이 감옥에 있는 동안 밖에 있는 성도들에게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환경적으로 볼 때는 기뻐할만한 일이 별로 없는 상황 속에서도 성령 안에서 의와 화평과 기쁨의 삶을 잃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메시지는 성령께서 오늘날 마지막 때를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메시지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들은 당시 유대인들로부터 심한 박해를 받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에 대해 말할 때에, 그들은 마치 개 같고 악한 일꾼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성령이 없는 자들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육신을 신뢰하는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영 안에서 하나님을 경배하지도 못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기쁨을 찾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 드리지 못하면서 자신들이 하나님을 참으로 경배한다고 여기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가장 고상하게 여기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라고 고백하면서 그의 삶 가운데 자신에게 유익한 것들은 모두 배설물처럼 버림으로써 손해를 보는 삶을 살아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신에게 유익한 모든 것들은 주님과 멀어지게 하는 것들이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의는 모두 버리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의만이 그의 모든 것이라고 하나님께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삶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 안에서 성도들과 교제하는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는 내가 그를 알고 그의 부활의 능력과 그의 고난의 교제를 알아 그의 죽음의 본을 따르려 함이며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들의 부활에 이르려는 것이라. 내가 이미 이르렀다 함도 아니요, 이미 온전해 졌다 함도 아니라, 나 역시 그것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께 붙잠혀 있노라. 형제들아, 나는 내가 붙잡은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다만 한 가지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들에 손을 뻗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고귀한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그 푯대를 향해 쫓아갈 뿐이라.”(빌 3:10-14)
그는 자신의 영이 성령으로 거듭남으로 인해 그의 혼이 이미 구원 받았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오직 한 가지, 즉 몸의 부활만을 기다리면서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을 그의 몸에 채우면서 부활의 날에 그가 받을 상만을 소망하면서 뒤에 있는 것은 모두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푯대, 즉 몸의 부활만을 바라보며 그리스도 안에서 기쁨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나타나시는 날, 즉 그리스도의 날에 기뻐하려는 삶을 살면서 성도들에게 같은 소망 가운데 기뻐하라고 항상 권면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러한 확신 가운데 성도들에게 모두 자신을 따르는 삶을 살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또한 마지막 때를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 모두에게 지금도 성령께서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당시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들을 조심하라고 눈물로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은 자신의 배이며 그들은 땅의 것만을 생각하는 자들로서 그들의 종말은 파멸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는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도 동일한 경고의 메시지 를 전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으면 위에 있는 것들을 구하라.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에 있는 것들에 너희 마음을 두고 땅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또 너희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기 때문이라.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그때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가운데 나타날 것이라. 그러므로 땅 위에 있는 너희의 지체를 죽이라. 곧 음행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색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이런 것들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자녀들 위에 임하느니라.”(골 3;1-6)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은 땅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위치에 대하여 증거하면서 앞으로 그들의 몸이 부활하게 될 때에 받게 될 영광이 어떤 것인지에 대하여 증거했습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므로 우리가 그곳으로부터 오실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으니 그가 만물을 자신에게 복종시키는 그 능력의 역사로 인하여 우리의 천한 몸을 그분의 영광스러운 몸같이 변모시키시리라.”(빌 3:20-21)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서 시민권을 citizenship으로 번역하지 않고 conversation으로 번역해 놓았습니다. conversation이란 말은 서로 대화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는 말은 우리가 지금 땅에 살고 있을지라도 이미 하늘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성도 간에 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천한 몸이 그리스도의 날에 그분의 영광스러운 몸같이 변화되는 것에 대하여 성령 안에서 증거할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만 하시면 모든 창조물들이 즉시 복종하는 것처럼, 예를 들어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실 때 즉시 빛이 있었던 것처럼 공중에 임하시는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실 때 우리의 몸이 즉시 그리스도처럼 변화되어 하늘에 즉각적으로 올라가게 되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증거한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에 대하여 증거했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쳐다보니, 보라, 하늘에 한 문이 열려있는데 내가 들은 한 음성은 나팔소리 같았으며,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이리 올라오라. 내가 이후에 마땅히 일어나야 할 일을 네게 보여주리라.’ 하더라. 또 내가 즉시 영 안에 있게 되었는데, 보라, 하늘에 한 보좌가 놓여있고 한 문이 그 보좌에 앉아있는데 앉으신 분의 용모가 벽옥과 홍보석 같으며, 그 보좌를 두른 무지개는 에메랄드같이 보이더라.”(계 4:1-3)
다윗 왕은 사도 바울처럼 그의 일생의 목표가 땅에 있는 것들이 아니고 부활의 날을 바라보며 그날에 그리스도와 같이 변화되기를 바라보면서 앞으로 나타나실 그리스도의 고난에 기쁨으로 동참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나, 나는 의 가운데서 주의 얼굴을 보리니 내가 깨면 주의 모습으로 만족하리이다.”(시 17:15)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앞으로 자신이 다시 오셔서 자신을 믿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하늘로 데려가실 때 일어날 일을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고 있나니 바로 지금이라. 듣는 자들은 살리라….. 내 양들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그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며, 또 아무도 나의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할 것이니라.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더 위대하시니, 아무도 내 아버지의 손에서 그들을 빼앗아갈 수 없느니리.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니라.”(요 5:25; 10:2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