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제목: 그리스도와 함께 천상에 앉아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육신의 삶 속에서 누리는 영적인 축복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모든 신실한 모든 성도들에게 영적인 축복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습니다.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육신 안에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먹고 입고 사는 일을 위하여 끊임없이 일하지 않으면 필요한 것들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따라 살지 않으면 생존경쟁에서 이길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신실한 사람들은 자연인으로 태어났다가 그리스도 이신 예수를 믿어 성령으로 거듭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마지막 때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주일마다 교회에 가서 예배라는 종교행위를 열심히 하고 있으면서 진정한 회개와 죄 사함을 받지 못하고 성령을 받지 못함으로 인해 그리스도 안의 영적인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세상사람들과 같이 평생을 육신적인 축복을 추구하다가 비참한 생을 마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영적인 축복이 무엇인지 생각하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고 개,돼지처럼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들의 모양은 사람의 모양이지만 실상은 사람이 아니라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존귀할지라도 오래 살지 못하니 그가 멸망하는 짐승들과 같도다…사람이 존귀에 처해 있어도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들과 같도다.”(시 49:12, 20)
기독교계가 이렇게 타락한 것에 대한 첫 번째 이유를 든다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름 받지 못하고 생계를 위하여 스스로 하나님의 종이 되기 위하여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사람들이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영적인 소경으로 만들어서 영적인 축복을 받지 못하게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불교에서 불교 신학교를 졸업하면 꽃다발을 받고 대처승이 되는 것이나 기독교에서 신학교 졸업하면 역시 꽃다발 받고 목사가 되는 것이나 별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시대가 올 것을 성령 안에서 미리보고 목회자 디모데에게 증거했습니다:
“마음이 부패하고 진리를 상실하며, 이익(Gain)이 경건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 무익한 논쟁이 일어나느니라. 그런 데서 네 자신은 빠저 나오라.”(딤전 6:5)
“이익”이 경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란, 기독교인들 사이에 물질적인 축복을 많이 받은 사람들을 믿음이 좋고 경건한 사람으로 여겨 하나님으로부터 큰 축복을 받은 자라고 판단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또한 그런 사람들을 교회 안에 장로가 되게 하여 많은 헌금을 받아내어 교회 재정을 늘려서 교회를 더 크게 건축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목회자나 교인이나 차별 없이 하나님과 상관 없이 교회놀이나 하다가 세상 사람들이 가는 지옥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지 않고 생활 수단으로 목회자가 된 사람들은 평생을 재물을 따라가다가 더 이상 이익이 없게 되면 언제든지 교인들을 버려주고 교회 문을 닫는 자들인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런 자들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로 두라. 그들은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들이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지옥)구덩이에 빠지리라.”(마 15:14)
사도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인이 된 것에 대하여 분명하게 증거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도니 바울은”(엡 1:1)
성경은 친히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직접 받은 사실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가 길을 떠나 다마스커스에 가까이 왔을 때 갑자기 하늘로부터 한 줄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려 그에게 말하는 음성을 들으니 ‘사울아, 사울아,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고 하시더라. 그러나 그가 말하기를 ‘주여, 당신은 누구시나이까?’ 라고 하니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가시채를 걷어차는 것이 네게 고통이라.’고 하시더라. 그가 떨며 놀라서 말하기를 ‘주여, 내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라고 하니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일어나서 성읍에 들어가라. 그러면 네가 행해야 할 일을 네게 알려주리라.’고 하시더리.”(헹 9:3-6)
사울(바울 되기 전)을 부르신 예수께서는 아나니아라는 한 제자에게 환상 가운데 나타나셔서 그가 사울을 부르신 사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네 길을 가라. 이는 그가 이방인들과 왕들과 또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내 이름을 증거하기 위하여 내가 선택한 그릇임이라. 그가 나의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큰 일들로 고통을 받을 것인가를 내가 그에게 보여 주겠노라.”(행 9:15-16)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사울은 바울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엄청난 고통을 받았지만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날과 그분의 왕국을 바라보며 끝까지 복음을 전하다가 기쁨으로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그는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도 성도들에게 전한 편지 속에서 그가 성령 안에서 얼마나 평안함을 누리면서 영적 축복을 누리고 있는지에 대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라. 위로를 받으라. 한 마음을 품으라. 평안을 지내라. 그러면 사랑과 화평의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고후 13:11)
그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 그가 누렸던 영적인 축복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경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때 곧 내가 강하기 때문이라. “(고후 12:10)
그는 그가 누리고 있었던 영적인 축복이 어디로부터 왔는지에 대하여 말하면서 모든 신실한 성도들에게도 동일한 영적 축복이 임하기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사도 바울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를 믿을 때 주셨던 은혜 위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부어주시는 은혜와 또한 죄와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왕국 안에 있는 성령을 통하여 주시는 죽음을 초월하는 평강을 위하여 기도한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두려움 가운데 문을 닫고 있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주의 첫 날, 그 날 저녁에 제자들이 모인 곳에는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들이 잠겨 있었는데 예수께서 오셔서 그 가운데 서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 평강(샬롬)이 있으라.’고 하시더라.”(요 20:19)
마침내 사도 바울은 그가 받은 영적인 축복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구체적으로 증거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천상(heavenly places)에 있는 모든 영적인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신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는 복되시도다.”(엡 1:3)
그가 말하는 영적인 복은 자신 뿐만 아니라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간 모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받은 축복이라는 사실을 증거한 것입니다. 그는 이 놀라운 사실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증거했습니다:
“그러나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의 큰 사랑으로 인하여 죄들 가운데 죽었던 우리를 함께 살리셨으니 (너희가 은혜로 구원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천상(heavenly places)에 함께 앉히셨으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그의 인자하심 가운데 그의 은혜의 지극히 풍요함을 오는 시대들에 보여 주시려 함이니라.”(엡 2:4-7)
하나님께서는 이토록 놀라운 영적인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의 영은 이미 하늘보좌에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영적으로 함께 앉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 영적인 축복을 받은 사람들은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인 것입니다. 몸과 구원받은 혼은 여전히 땅에 살고 있지만 영은 이미 하늘나라에 가 있으니 사도 바울인 영적인 하나님의 왕국에 대하여 증거한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의와 화평과 기쁨”(롬 14:17)을 환경을 초월하여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로마 황제 네로의 박해를 받아 불에 타 죽으면서도 찬송을 부를 수 있었던 기쁨과 중세 암흑 시대에 로마 카톨릭에 의해 화형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을 찬송하던 기쁨 등이 바로 영적인 축복을 받아 그들의 영이 이미 천상에 이미 올라가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는 한 마디로 피의 발자취였습니다. 그러나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썩을 육신을 아끼지 않고 그들의 영이 있는 본향을 향하여 떠나면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육신을 따라가며 살고 있는 세상 사람들이나 거듭나지 못한 기독교인들은 하늘에서 그들의 영과 함께 영원히 누리는 영적인 축복을 보지 못하고 썩어질 것들 만을 쌓다가 천상에 있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 하나님을 영원히 보지 못하고 영원무궁토록 어두운 지옥 속에서 살아야 함에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서 영이 이미 천상에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앉아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휴거의 문 속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조만간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이리 올라오라!”는 나팔소리 같은 음성을 듣는 순간 그들의 몸이 죽지 않고 썩지 않는 영화로운 몸이 되어 하늘에서 이 땅에서 누리지 못했던 육신의 축복을 그들이 영화로운 몸과 함께 영원무궁토록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휴거를 기다리는 성도들에게 권면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라, 흔들리지 말라, 항상 주의 일을 넘치게 하라. 이는 너희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니라.”(고전 15:58)
부활하신 예수께서 필라델피아 교회 성도들에게 주신 축복이 바로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 영적인 축복인 것입니다:
“내가 너의 행위들을 아노라. 보라,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니 아무도 그것을 닫을 수 없노라. 이는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나의 말을 지켰고 내 이름을 부인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네가 나의 인내의 말을 지켰기 때문에 나도 시험의 때에 너를 지키리니 이는 온 세상에 임하여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을 시험하는 때라.”(계 3:8,10) 아멘!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