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큰 원님댁 공사판과 설악산의 불장난
제2화
큰 원님댁
공사판과
설악산의
불장난
원작: 이요한 / 최아멘
나오는 사람들
왕초, 최선생, 똘만이,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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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거지패들, 각설이패들과 품바는 뗄레야 뗄 수 없는데요, 그얘기 좀 부탁합니다.
왕초: 우리 패거리들은 겁이 없어. 원님한테 몰려가서 밥동냥 안해주면 떼거지로 한바탕 엎어놓는다, 이거야! 거지가 쫓겨나봐야 거지거든. 품바에는 독설이 있어요.
백성들의 한이지. 밥 안주면 온 동네를 헤집고 다니면서 원님 욕을 해대거든 … 그래서 뒤로 캥기는 짓 한 원님네들이 골치 아파하는데, 우린 쫓아내면 죽지도 않고 또 살아서 쳐들어 간단말이야, 미칠 노릇이지! 우리가 들어가면 순순히 내놓는게 상책인 걸 모르는 돌들이 이따끔 있단 말씀이야 … 이 동네도 그런 돌대가리 원님들이 몇이 있어. 원성이 자자해. 우리 대왕 거지께서 그냥 주라고 했는데 왜 안주고 지들만 처먹어대는 거냐, 이거지! 배 고픈데도 안주면 이 번엔 아주 아작을 낼 작정이야. 어떻게 씹는지 내 품바 한 번 들어 보시게나. 얘들아, 밥그릇 두들겨라! (패걸이들 꽹과리 시작)
패걸이: 얼씨구씨구 들어간다 –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왔네 – 배때기 사장, 회장놈들은 다 뒤져라 – 너만 먹냐, 나도 먹자, 밥을 다오, 밥을 다오!
해설: 품바에는 역시 독설이 제 맛입니다. 그래, 대문 앞에 가서 타령만 하십니까? 아니면, 다른 뭐라도 …
왕초: 우리 아새끼들은 노래도 잘하지만 말도 잘해. 맘에 안들면 남의 집 대문 앞에서 일장연설을 한다니까. 요새 거지들은 배우다 만 놈들이 많아서 아주 똑똑해요. 내가 그것들을 가르칠려고 공부까지 한다니까. 그런데, 내가 까막눈이라 글을 몰라. 여기 저기 귀동냥 해서 여기서 쪼끔 저기서 쬐끔 퍼 날라야 하는데, 들을 말이 없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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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기억에 남는 사건 있으시면 하나 말씀하시지요.
왕초: 내가 우리 패거리들을 데리고 떵떵거리고 사는 어느 큰 원님네 잔치판에 갔는데, 이 인간들이 밥을 안줘요. 우리 아이들이 성질이 콱 나버렸지. 얘들 하는 짓거리 좀 보소! 아, 글쎄, 느닷 없이 원님 수랏상 앞에 가서는 “우리도 배고프다, 거~ 씹는 닭 다리 하나 주쇼!” 이러지를 않았겠나. 그러더니 대뜸 한 놈이 그 앞에 앉은 여자 하나를 보고, “이 년아, 너도 묵은 닭이야! 그 닭 다리 내도 하나도!” 하는 바람에 잔치판이 깨졌지. 그 판을 보니까 닭이 많이 있더라고. 묵은 닭, 고목 닭, 썩은 닭 … 닭, 닭, 닭 … 닭 공장인데, 이 원님이 닭들을 데리고 닭 다리만 튀겨 먹고 있더라니까! 쯧, 쯧, 마을 백성들은 배고파 죽을 판인데 하고 있는 짓거리들 하고는 … 에이, 닭 다리나 뜯으러 가자! 얘들아, 집합!
해설: 벌써 가시면 어떻합니까?
(이 때 왕초 전화 벨이 울린다)
왕초: 여보시지요? 여기를 많이 보라고 하셔서, 어디 계신 가하고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안 보이십니다. 아, 네, 전화를 거셨습니까? 전화는 벽에다 거셔야지 남의 귀때기에다가 걸면 어떻합니까? … (왕초도 웃는다, 사회자를 보며) … 더 하라구? 그러지. 우리 아이들 중에 “조거지” 라고 있어요. 이 친구가 물건이야. 야가 자빠지기 전에 큰 원님댁 공사를 했거든. 그런데 문제가 생겼대. 뭐, 그 집 창고지기가 원자재를 빼 먹고 날랐다나 그래. 먹고 튄 놈을 잡을 수는 없고, 돈만 날렸는데, 그 집 집사들과 한 패인 동네 깡패들이 이 친구를 닥달하더래. 일 시켰으니 돈 내놓으라는거지. 없어진 자재 값을 뻥튀기 해 씌워 먹겠다고 달겨드는데, 그 등쌀에 원님도 토껴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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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왕초: 주인은 없고 객은 날라버리고 … 하루는 이 친구가 그 깡패 낀 것들을 불러내 겁도 없이 데리고 나가서 ‘공사 금액 청구서’ 하고 ‘시방서’를 보면서 실제로 들어간 자재하고 벽돌 하나까지 다 세더라는거야. 아예 자를 들고 두께까지 재어가며 “벽돌은 몇 장이 들어갔는데 여긴 두 배로 부풀렸고, 이 나무는 한 자 짜리라고 돼있는데 잔짜는 반 자 짜리고 … ” 하는 식이지. 시방서 하고 실제 공사가 다 틀리니까 깡패들도 할 말이 없지. 관가에 잡아 쳐넣기 전에 좋게 합의하자니까 그러라고 하더래. 그래가지고 돈을 엄청 쭐여 갚았대요. 그리곤 다 바꿔버리고 다시 새로 했지. 제대로 된 상거지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야. 원님 댁이 어디라고 함부로 쳐들어가겠나. 그 정도 배짱은 있어야지. 이봐, 우리가 뭘로 보이나? 거지라고 무시하지 말게. 우리는 마패 하나씩 받은 암행어사라네. 마패, 마냥 두들겨 패도 꺼떡 없는 패! 우리 대왕께서 주신거야. 그걸 가졌으니 상거지는 상거지야. 마패를 마빡에 새긴 그 친구 넉살에 깡패들은 물러 가고, 원님은 자빠졌으니, 그 정도면 됐지 않은가, 이 말이네. 내 언제 그 “조거지” 한 번 달고 나오지.
해설: 하시는 말씀을 들으니 뼈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마빡에 마패를 새겼다는 말씀은 어디서 들어 본 말씀 같습니다. 이마에 인을 새긴다는 말씀이 떠오릅니다만 …
왕초: 그걸 어떻게 아셨남? 눈치 한 번 빠르이. 내가 우리 거지 족보에 등장하는 이 선생을 아주 좋아해요. 우리도 족보가 있다우. 그 이 선생이 뼈가 있는 말씀을 어주 잘하시지. 어느날 말씀 중에 나를 개로 만드신 적이 있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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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왕초: 아까 그 원님댁 쫄따구들이 복잡한 일을 다 해치워놓고 나니까 어디갔다가 왔는지 토껴버린 원님이 또 폼 잡고 나타나더래. 깨끗이 정리 된 집 마당을 지키던 개가 짓어대길래 마당쇠 놈이 “이 놈아, 주인을 보고 왜 짓어, 짓기는 … ” 했는데, 원님은 반가워서 그러는 줄 알았던 모양이야. 마당쇠 놈이 “그만 짓어, 이 놈아!” 하니까, 견공 왈, “내가 왜 짓는 줄 아냐? 내 주인이 바로 도둑놈이다! 도둑 보고 짓는다, 왜?” 하더래. 뭔 말인 지 알아나 듣는 지모르겠네…
해설: 개는 도둑 보고 짓는게 아닙니까?
맞아, 그런데 그 개 눈에는 집 주인이 도둑으로 보였지! 개도 사람을 알아보는데, 사람들은 눈이 멀었네 그려! 그 눈 먼 원님이 머저싸개야. 머저리 같은 오줌싸개, 발싸개 같은 인간이지. 이만 합시다.
해설: 바쁘세요?
나 바뻐. 할 일이 많아서 그런게 아니고, 밥 퍼대기가 바쁘다, 이 말씀이야. 백수 건달은 놀기 바쁜 사람이고, 난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갈 데는 많은 사람이거든, 또 봅세. 그럼, 난 이만 가이 ~~~
해설: 아무리 바빠도 한 말씀 더 해주시고 가세요.
왕초: 나, 이 양반, 참~ … 내 얘기보단 우리 최선생 어떻게 됐나 불러 봄세. 뭐, 결혼식을 엉망진창으로 했지만, 그래도 신혼여행은 갔다고 하던데? 최 선생~~~ 어디서 뭐하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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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앞바다와 설악산을 회상하는 장면, 파도 소리와 함께 나훈아의 “해변의 여인”이 흐른다)
최선생: 장가도 도둑장가 간 주제에 신혼여행도 도둑질 했지. 내 돈 한 푼 안들이고 여행도 공짜로 간거야. 물론 돈은 신부쪽에서 다 냈고, 나는 몸만 갔으니 그것도 양심 없는 생도둑질이지. 중요한건 우리의 신혼여행은 결혼 전이었다는 사실. 식을 마치고 나면 나는 바로 미국행 비행기를 타야 했기때문에 속도위반은 어쩔 수 없는 당연지사였어. 우리가 결혼하던 날은 부모님도 안계셨지만, 나는 친구들도 한 명 없었어. 군생활을 7년 하고 나온 후라, 연락 못하고 살았던 친구들과의 관계도 서먹해져 있었고, 더러는 어디서 뭐하고 있는지 아예 연락이 끊겨 몰랐고 … 이유야 어떻든 우리 숙이가 얼마나 외롭고 서러웠을까? 나도 숙이네 처럼 부모님과 친척들과 친구들의 축복 속에서 식을 올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던 것을 보며 숙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야, 이 도둑놈아!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어?
그랬을거야. 신부의 속 마음이 편하고 행복하기 보다는 억울하고 분한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던 생도둑놈, 날도둑놈이 나였지. 아니야, 그건 내 생각. 숙이는 분명 그 예쁜 얼굴에 행복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어. 그렇지만 겉으로는 말 안해도 속으로는 멍들게 했다는 죄책감은 엉뚱한 불장난으로 번지고 있었어. 내색도 없이 그냥 사정이 그렇게 됐다는 말을 그대로 믿어주는 그 순수함과 순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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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여자 한 번 잘 골랐다!”는 이 도둑놈의 양심 선언이 그녀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었던걸까? 나라는 놈은 주례 앞에서 머리 속이 또 복잡해지기 시작했어. 또 골똘하다가 이번에 진짜로 전봇대를 들이 받으면 어떻게 돼지? 불행하게도 그런 일이 사실로 일어나고 말았어. 하객들의 눈들이 도둑놈이나 강도를 만난 것처럼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았고, 순간 온 몸에 미안함과 죄스러움 때문인지 식은 땀이 흘렀는데,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바지가 젖어들고 있었어. 그만 오줌을 싸버린 못난이가 되버리고 만거야. 전봇대에 멍멍이가 싼 오줌이 아니라 내가 싼거야. 거기다가 “신랑 신부 새출발!” 하는 소리에 걸어나가다가 이번엔 단상 계단을 헛딛어 넘어지고 … 아! 지난 밤 전봇대 귀신이 나를 울렸던 개꿈이 진짜 개같은 현실이 되고 말았어! 머리속이 윙윙 돌아가며 불이 나고 있었어. 꿈과 현실. 꿈 속의 전봇대가 이마를 깬 것이 아니라, 현실은, 식장의 카페트 깔린 바닥이 막 튀어 올라 사정없이 내 이마를 두들겨 패고 있었어.
이런, 제길할! 오냐, 전봇대 귀신이든 마루 바닥 깡패든 보라는 듯이 잘살아 줄테니 오늘은 니놈들 불장난에 내가 죽어줄테다. 어디 해볼테면 해봐라 … 아주, 죽여라, 죽여! 세상에 이렇게 서글프고 불같이 뜨거운 결혼식이 또 있을까? 속에서 올라오는 열불은 그렇게 복수심으로 나를 태워버리고 있었어. 나쁜 자식, 나쁜 놈, 남의 결혼식을 망쳐버린 나쁜 것 … 마루 바닥을 향해 나는 수도 없이 욕을 내뱉어대고 있었어. 그러나 그 소리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았지. 식장의 하객들이 와 웃었고 그 와그르르하는 소리에 내 비명소리가 묻혀버렸기 때문이야. 그 속에서 또 다른 내가 힐힐거리며 나타났고, 낄낄 웃으며 한 마디해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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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최 민, 너 거기서 뭐하냐?
미쳤냐?
그래, 미쳤다, 어쩔래? 여기까지가 시월의 마지막 날 일어난 불놀이의 전부야. 불바다가 된 결혼식이었지. 우리는 그렇게속초 앞바다와 설악산을 오가며 밤이면 밤마다 날이 새도록 불장난을 하고 와서 식장에서도 마지막 불놀이를 거창하게 하고 말았어. 이제 내일은 비행기를 타야하겠지. 나를 울린 한국, 우리 엄마를 울린 나쁜 나라,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안녕!
왕초: 우리 최선생 앗 뜨거라 했겠구만! 불알 두쪽만으로 남의 처녀 도둑질하고 신혼여행까지 공짜로 간 댓가를 아주 톡톡히 치뤘어!
해설: 도둑 장가간 불장난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최선생이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요? 서민의 아픔이었겠지요. 어쩔 수 없는 가정 환경과 성장 환경이 한 개인의 결혼을 아픔으로 물들게 했다는 몸부림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그에겐 그 지난날 이야기를 해학으로 회상하며 공개할 수 있는 여유로움을 가진 성숙함이 있습니다. 가정이 깨지고 터져나가는 우리네 서민들의 이 각박한 현실을 웃음으로 이겨낼 수 있는 그의 비결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아무리 서럽고 뜨겁고 어려운 불구덩이를 지난다해도 늘 승리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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