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짠돌이와 배장사 그리고 무시험 수석합격
수정 같은 유리 바다 건너에 뭐가 있느냐구? 바다 건너엔 보좌가 있고 그 주위엔 네 생물이 있어요. 보좌는 의자지만 보통 의자가 아니네. 수정 바다를 건너왔는데, 녹색 빛이 나는 보석 의자, 에머럴드나 최고로 비싼 푸른 빛 다이아 의자 앞에 내가 서 있다고 생각하시게. 그 빛의 은은함과 위엄에 압도되어 그 높으신 분은 감히 처다보지도 못하고 주눅들지. 우리 여기서그 광경을 같이 봄세나. 요정 나오너라~~
(왕초의 그림은, 쟌이 요정의 안내로 별 나라 수정 유리 바다 건너 보좌에 와서 있는 모습)
쟌: 내 저 높으신 분은 감히 처다보지도 못하겠고, 이야~
저 괴상한 것들은 또 뭐란말이냐? 저것들이 사람이냐, 짐승이냐? 요정아, 말 좀 해다오! 저 날개들의 눈은 안과 밖에 왜 저렇게 많은고? 하이고, 무시라!
요정: 이 생물들은 잘 살펴보시옵소서. 이 별나라에서 대왕님을 보필하는 최고의 요정들로 사료되오. 땅으로치면 경호대장이요, 황실근위대장인줄 아뢰오. 늘 새노래를 부르고 있읍지요. 또한 대왕의 특별 명령을 수행하기도 하는 자들이니이다. 첫째는 사자 같이 용맹무쌍하고, 둘째는 우직하게 일만 하는 송아지 같고, 셋째는 꼭 사람같이 알차게 이 일 저 일을 하고, 넷째는 독수리처럼 용맹무쌍한 이 별나라 하늘의 제왕인 생물들이나이다.
쟌: 그것 참, 동서남북에 하나씩 사자와 송아지와 사람과 독수리, 생물이 넷이라 … 꼭 우리 왕께서 땅에서 일하시던 그 모습을 판에 박았네 그려. 그 양반이 일하실 때 모습이 어떤 때는 사자처럼, 어떤 때는 소처럼, 어떤 때는 사람처럼, 어떤 때는 독수리처럼 일 하셨지… 그러고 보니 그 양반의 수행비서인가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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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짠돌이와
배장사
그리고
무시험
수석합격
원작: 이요한 / 최아멘
나오는 사람들
왕초, 최선생, 똘만이, 쟌, 요정,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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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지난 시간에 “요정들의 그림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많은 분들이 어려워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
왕초: 어렵지, 내가 그거 깨닫는데만 50년이 걸렸거든, 그리고도 벌써 10년이 지났네. “수정 유리 바다” 이야기는 우리 거지 족보 맨 끄트머리 비밀편에 나오는 이야기야. 거지 족보에 별의 별 사람들이 다 나오는데 그 중에 “쟌”이라는 친구 이야기가 압권이지. 어렵다고들 하네만, 내 어떻게든 쉽게 풀어보겠네. 쉬운 얘기 하나 하지. 에~ 거, 무엇이냐, 소금에서 물을 빼면 어찌돼는가? 그야말로 짠지 중에 짠지일세. 너무 짠데다가 물기가 아예 없어서 그냥 부서져. 우리네 거지들은 없어도 있는 거 가지고 인심 팍팍 쓰는데, 이 있다는 것들이 짠지일세. 그 중에 왕짠지가 원님들인데, 물 뺀 소금이야.
어느날 원님 하나가 배추국을 끓였는데, 그만 소금국이 되어버렸어. 국에다 물을 탄다고 한게 얼마나 물을 풀었는지, 소금국을 젓겠다고 국솥에 들어간 사공들이 풍랑을 만나 실종됐는지, 글쎄 돌아오지를 않네 그려~~
똘만이: 아니, 헹님요, 소금국에 웬 사공인교?
왕초: 아, 그냥 웃으라고! 웃다보면 그 웃음의 의미를 알게되는 거네. 깨달으면 거룩한 웃음이야. 왜 웃는지를 알아야 울게 되는걸세. 웃기고 울리는게 낫지, 어려운 이야기를 딱딱하게만 하면 재미가 없지 않은가? 내 그림 이야기도 그 쟌의 이야기를 웃음을 섞어 재미있게 풀어나가려는 내 몸부림이야. 울음은 그냥 터지지 않거든, 그냥 되는 것이 아니네. 그래야 부담이 없고 빨리 깨닫는단 말임시… 왕짠지의 국솥에 담긴 국물을 유리 바다로 만들어야하네. 그 더럽고 찌들어 짜디 짠 물을 깨끗한 수정 바다로 만들라는 게 우리 대왕의 뜻이야. 더렵혀진 몸과 마음과 삶을 깨끗하게 씻어내지 않으면 그 바다를 못 건너가는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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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이 괜히 수정인가? 맑은 물에 내 모습이 비치는 거울이 아닌가? 그 더러운 모습이 그대로 다 비치면 어떻게 그 분께 나아가겠나? 죄로 찌들면 뵙기도 전에 죽어요, 즉사지! 이제 좀 아시겠는감?
해설: 소금국과 짠돌이는 알겠습니다. 짠물을 수정같은 물로 만들어야지요.
왕초: 언젠가 부산엘 갔더니, 한 아줌마가 “물 찍찍나는 내 배 사이소~~” 이러쟎아. 배에서 생수의 강이 넘처난다는 것을 그 아줌씨가 알고 한건지는 모르겠고, 아무튼, 우리 왕께서 살아 생전 이 땅에 계실 때 “배에서 강물이 쏟아져야한다”고 하셨는데, 물도 물 나름이지, 짠지물 먹고 배에서 생수가 넘치는 것이 아니라, 밑으로 쫙쫙 쏟아지게 만들어 놨으니, 하여튼 이 놈의 원님들이 하는 짓들이란 … 이 원님네들아, 그래 짠물 퍼먹여가지고 왜 밑으로만 쏟아지게 만들어 놨느냐고? 그 죄값을 어떻게 감당하려 하는고? 그래가지고는 수정 유리 바다가 짠물에 오염이 돼서, 풍랑을 일으켜요. 짠물만 마신 사람은 건너지도 못하고 빠져 죽네. 배장사 아지매의 단 물 철철 넘쳐흐르는 그 다물을 마셔야지! 수정 유리 바다는 짠지는 건널 수 없고 배 장사들만 건너가는 곳이네. 이만하면 이제 알아들으시겠는가? 배가 고파, 밥을 달랬더니 짠 물만 퍼 먹이네 그려~~ 원님들, 밥 좀 주셔, 밥 좀 달라구! 짠지국 말고 이 밥에 고깃국 좀 주셔. 혼자만 처먹지 말고 나도 주시셔! 으이고, 배 고파라! 얘들아, 밥 먹으로 가자!
해설: 잠깐만이요, 무시험 수석 합격의 영광이 있으셨다고요? 시험도 치지 않았는데 어떻게 수석 합격이 되나요?
왕초: 이 친구 가는 사람 붙잡는데는 한가닥 하는 친구일세. 잡긴 왜 자꾸 잡어? 잡혔으니 하나 더 해야지. 내가 군에 가기 전 정보통신분야에서 다년간의 사회 경험이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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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군에서도 통신대에서 근무를 했는데, 직속 상관이라고 하는 자가 계급만 높았지, 실무는 나보다 아는게 없어. 인사 기록을 봤는지 어느날 사병인 나를 불러 몇 마디 해보더니, 그냥 교관으로 뛰래. 사병 교육은 나한테 맡겨 놓고 자기는 술만 푸더라고. 병사들 진급 시험을 쳐야 하는데 문제까지 나보고 다 내라는거야. 내가 가르치고 내가 문제를 냈으니 보나마나 수석 합격이 아닌가? 왜? 사시나 행시가 아니라서 섭섭하나? 이 친구야,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 우리 거지패들은 인생 대학을 패스한 사람들이야. 거지 대학에 시험 있는거 봤나? 당연히 무시험 수석 합격이지. 우리패들이 깡통 두들기고 장타령하는데는 도사들이거든! 짠지가 되어 짠 물 퍼먹지 말고, 단 물 찍찍 나는 단 배 많이 먹고, 인생 대학 수석 합격해야 저 우리 대왕계신 곳 수정 유리 바다를 통과하는 거네. 거기는 아무나 가남? 이 놈 저 놈 다 들어가는데는 자존심 상해서 안들어간다! 이거네. 갈 데가 따로있지, 수석 합격 정도는 해야 들어가서 상 탈 것 아닌가?
해설: 짠물, 쓴물, 독물 마시면 설사 하고, 단물, 생수를마시면 수정 유리 바다도 건너고 수석합격도 한다는 말씀이 기가막힙니다. 수정 유리 바다 건너엔 뭐가 있지요?
왕초: 기가 막히면 안되지, 귀를 뚫고 들으시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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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 수행비서가 아니라, 특별참모이옵니다. 대왕의 뜻을 알아서 시행하시는 왕의 모습이기도 하나이다.
왕초: 허어~ 우리 쟌선생께서 좋은 구경 하셨네그랴. 단물, 생수를 마시면 우리 패거리들도 송아지도 되고 사자도 되고 독수리도 되고, 사람 – 진짜 인자(人子)의 모습도 되는 것이 아닌감? 해설자 양반,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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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글쎄요. 제가 그럴 수 있는 지 자신이 없는데요.
왕초: 짠물 그만 드시고 단물 더 드셔. 들고만 있지 말고 마시라고. 물은 마시라고 있는거지, 들고 있으라고 퍼 주시는게 아니네. 계사공칠, 어려운 얘기 그만하고, 우리 이 쯤에서 최선생 불러보는게 어떻겠나?
해설: 좋지요. 공항의 이별 이후 2년만에 공항의 재회는 불발로 끝났는데, 최선생님, 아직도 택시 운전하시나요?
이민 첫날 찍은 영화
눈물의
세레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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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생: 공항에는 비행기가 내렸을테고, 나는 택시를 몰고 있고 …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 LA에 남편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숙이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황당한 정도가 아니겠지. 결혼을 그렇게 했으니 시댁 식구들이 나와있을리도 없겠지. 숙아, 내가 왔을 때도 공항에는 아무도 없었어. 그러니 어쩌라고? 나도 그 꼴되라고? … 머릿속에서 나는 혼자서 숙이가 됐다 내가 됐다 하며 주절거리고 있었어. 이게 다 그놈의 웬수같은 돈 때문이야. 안해도 될 걱정을 사서하고 있던 나는, “그렇지! 사춘이 있었지!” 하는 안도의 탄식을 터트렸어. 얼마전 까뻬를 개업 할 때 자기보다 빠르다며 화환 하나를 사들고 와 축하해주던 사춘. 나이차라야 1년도 안되는 동갑내기지만, 생일이 몇 달 빠르다고 그래도 형님이라던 그 사춘. 이민 비행기를 같이 타고 같은 날 미국에 이민 온 그 사춘, 희한하게도 가족들도 같은 날 같은 비행기로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이 깨달아졌어. 똑같이 부모 초청으로 같은 날 들어 온 우리, 나도 형도 그렇고 아내들도 같은 날 들어온 이민동기. “우리 숙이 혼자가 아니다!” 하는 이 안도같지 않은 안도감은 무엇일까? 내가 없으면 사춘이 알아서 잘 해주겠지. 무슨 미국이 그 때만 해도 핸드폰이 지금처럼 흔하지 않던 시절 이야기야. 무슨 사정이 있을거라고, 연락도 안되니 같이 가자고 하겠지. 그래, 사춘은 우리집도 알고 있지. 그러니 자기 식구 데리고 오는 김에 같이 달고 오겠지. 내 남편이 아닌 남의 남편 차를 얻어타고 들어오는 숙이의 마음이 어떨까? 오래만에 만나 미주알 고주알 주고 받는 그들을 보며 무슨 감정을 내게 느끼고 있을까? 사춘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시댁이라고 왔는데 남편은 없고, 그 꼴을 바라보는 우리 부모님의 마음은 또 어떻고? “민아, 넌 도도체 지금 뭐하고 있는거니? 무슨 일을 이따위로 만드니? 지금 영화 찍냐?” 또 그 자식이 나타나 아무리 따져도 나는 할 말이 없었어. 그래도 겨우 한마디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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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영화 찍는다, 왜?
진짜 그 날은 영화 같았어. 기왕 이렇게 된거, 일을 끝내고 저녁에 집에 들어갔을 때의 기가막힘이란, 정말 영화속의 주연 배우 같았어. 배우들이 영화 찍으며 그 장면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처럼, 나도 이 현실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랬어. 그러나 서로 마주쳤던 눈빛들의 그 가가막힘이란 … 서로가 할 말을 잊었지. 기왕 영화 찍을려면 공항에서의 멋진 포옹부터 시작했어야 하는건데, 이 무슨 얄궂은 운명의 장난이란 말이냐! 내가 감독이 되서 스스로 나에게 “레디 고, 액션!”을 연발하고 있었어.
무릎 꿇어 이 자식아! 그리고 빌어!
꿇으라는 무릎은 꿇지도 못하고, 비상사태에 모두들 놀라고 있었지. 여기 저기 쿵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불길이 치솟고 있었어. 어머니 아파트에서 내려다 본 거리는 그야말로 무법천지. 폭동이 아직도 계속 되고 있었기 때문이야. 약탈자들은 남의 집을 털고 때리고 부시고, 경찰 싸이렌 소리는 요란하고,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기관총 소리 … 나는 빌어야 용서를 받는데, 이 엄숙한 순간에 이건 또 무슨 난리란말인가! 무릎 꿇을 분위기는 아니였지.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첫 상봉인데, 인사도 하는둥 마는둥 서둘러 어머니 집을 빠져나와야 했던 그 날 밤. 시내는 그렇게 불타고 있었어. 영화 속의 장면이 현실이 된 순간, 그 속에서 나는 “아! 폭동이 나를 살려주는구나!” 하는 못 된 생각을 하고 말았던거야. 나를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 이 폭동! 서러움과 무서움으로 그 큰 눈이 눈물 범벅이 된 불쌍한 우리 숙이가 말했어.
이런데서 어떻게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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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이가 얼마나 놀랬을까? 미국에 오자마자 폭동 영화를 찍다니! 우리가 살 집으로 데리고 오는 차 안에서 나는 변명하기 바쁜 비련의 주연 배우가 되어야 했어. “사실은 당신 들어오면 사장님 시켜줄려고 그동안 모은 돈으로 뮤직 까뻬를 하나 오픈했는데 보다시피 저 불길에 다 탔어! 난 이제 알거지야!” 외마디 비명처럼 순식간에 내뱉은 그 소리에 숙이는 완전히 할 말을 잃고 넋이 나가버렸어. 세상에 이런 슬픈 영화도 있단말인가? 슬픈 영화는 계속 되고 있었어. 이제 두 살난 아이가 자꾸 우는거야. 어린 아이가 놀래서 아빠도 못 알아보고 자꾸 울기만 하는거야. 나도 울고, 숙이도 울고, 딸도 울고 … 그렇게 말없이 서로가 울면서 우리가 살 신혼 집에 겨우 도착했어. 어떻게 운전하고 왔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고 온 몸에 아무런 감각이 없었지. 결혼한지 2년만에 미국에서 시작되는 우리의 신혼은 그런 슬픈 영화였건거야. 아니지,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었지.
우리 집. 밉던 곱던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며느리를 위해 그래도 어머니는 살 집을 마련해 주셨지. 한가한 동네 개인 주택 별채를 얻어 주셨어. 정원이 딸린 뒷채라 아이가 뛰어놀 꽃밭도 있고, 산정 호반의 별장처럼 천정은 사선으로 드리워진 작지만 그림같은 우리 집. 아담한 우리들의 안식처, 침대에 누우면 창 밖으로 밤하늘의 별들이 반짝이는 아이에겐 너무나 좋은 집이었어.
그런 집에서 신혼의 단꿈 대신에 살기 위한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어. 진짜 총소리가 들리는 전쟁터야. 총! 총이 어떤건지 그 느낌을 알아? 숙이가 집에 들어 온 다음 날, 아이 우유를 사가지고 와서 길가에 파킹을 하는데 웬 시커먼 차가 반대편에서 갑자기 유턴을 하더니 내 차 옆에 바짝 붙이고는 두 놈이 튀어나왔어. 한 놈은 운전석으로, 한 놈은 조수석으로 붙더니 내 얼굴에 들이댄 그 권총의 차가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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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죽었구나 하는 순간의 공포 속에 나는 그대로 머리를 운전대에 처박고 한 손을 들고 한 손으로 키를 뽑아 내던졌어. 차를 줄테니 죽이지는 말라는 신호였지. 그들은 그대로 내 차를 빼았다 달아났어. 허겁지겁 집에 들어와 전화를 들고 신고하는데 통화가 끝나기도 전에 경찰이 앵앵거리며 들이 닥쳤어. 숙이에게 무슨 영문인지 설명할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야. 경찰을 보내고나서 자초지종을 들은 숙이는 아연실색하다가 졸도해버리고 말았어. 한참있다가 깨어났는데 이젠 눈물도 안나오는지 멍하게 있었어. 이 슬픈 영화는 언제까지 계속되야 하는걸까? 폭동은 언제 끝나지? 가게도, 차도 다 날렸으니 이젠 뭐해 먹고 살지? 내 머릿속은 너무 어지러웠어. 이젠 내가 쓰러질 차례야. 그러나 나까지 쓰러질 수는 없었지.
민아, 넌 몸땡이 하나 가지고 지금까지 잘도 버텨왔쟌아? 아이도 들어왔는데 잘 살아야지, 힘 내!
그 녀석이 나타나 오랫만에 나에게 위로를 해주고 있었어. 짜식, 진작 그러지 … 그래, 힘을 내자! 살 길을 찾아보자. 나도 그렇게 우리 숙이를 위로해주며 힘껏 끌어 앉고 있었어. 숙이의 이민 둘째날 밤의 이야기야.
해설: 정말 영화같은 실화입니다. 어쩌면 그렇게까지 될 수 있는지, 저까지 눈물이 납니다. 그에게도 인생대학 무시험 수석 합격의 영광이 있기를 바랍니다. 어차피 자기 인생은 자기 스스로 책임져야 했던 그에게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요? 현실만 보면 쓴물 독물 짠물의 연속입니다. 이 어려운 때에 여러분에게도 단물, 생명수, 먹고 살리는 강물이 철철 넘쳐나기를 바랍니다. 인생은 보다 쉬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거지 왕초들의 이야기와 최선생의 괴물 이야기에서 그 방법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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