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삔뚜라 박의 십만엥 그리고 수정 유리바다
해설: 환상의 별 나라 비밀 이야기 하나 더 하시고 가시지요.
왕초: 환상의 나라 유리 바다와, 요정의 요술봉과, 암행어사의 마패는 어떻게 보면 같은 거네.
요정이 톡 치면 환상의 나라가 열리고,
마패를 툭 내 놓으면 죄 세상이 열리지…
하면, 유리 바다에 푹 잠기면 유리쪽처럼 죄가 보이는 것도 같은 거 아니냔 말임시.
“톡 툭 푹의 비밀” 일세.
톡치는거나, 툭 내놓는거나, 푹 잠기는거나 이 죄란 놈 입장에서 보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는 마찬가지이네. 몸과 마음 속에 숨겨진 죄가 밖으로 드러나 죄가 세상 나들이를 하는 새 세상을 만나게 한단 말이야. 그 죄들이 세상을 날라다니다가 저 별나라 유리 바다 앞에 가면 꼼짝을 못하고 죄다 드러나니, 이 또한 요정의 요술봉이 아니면 뭔가? 사라지거라~~뿅~, 나타나거라~~~뿅뿅~ 뭐, 그렇게 된단 말이지. 뿅뿅뿅이야! 별나라나 유리바다엔 죄란 놈을 달고 다니면 못가는데, 땅나라에 있을 때 이 죄 가진 놈들을 두둘겨 패는게 있어요. 마구 패는 마패야, 어사께서 갖고 다니다가 가슴팍에서 꺼내 툭 던지면 이 놈의 마패가 세상을 마구 두둘겨패댄다구! 열받으면 몽둥이가 날라다니고 칼까지 빼들지. 거, 몽둥이 찜질 당하기 전에 몸 조심들 하시게.
그건 그렇고, 우리 최선생께서는 어디서 뭐하고 계시나? 그 양반 찾아 나도 가봐야겠네. 최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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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왕초들의 이야기
제9화
삔뚜라 박의
십만엥
그리고
수정
유리바다
원작: 이요한 / 최아멘
나오는 사람들
왕초, 최선생, 삔뚜라 박, 쟌, 요정,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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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오늘은 우리가 그토록 뵙기를 원했던 분을 모시고 나오셨는데요 …
왕초: 그 유명한 삔뚜라 박이라고, 이 분일세.
해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삔뚜라: 처음 뵙는데, 저를 기다리신 이유라도 있습니까?
해설: 왕초께서 전에 박 선생님 얘기를 하시다가 날카로운 경상도 억양으로 이따끔 “예수 믿는 것들이 말이야, 이런 썅~ ” 하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전혀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맨날 자기들 끼리의 축제나 하는 사람들에겐 불신자들의 따끔한 경고라고 할까, 뭐 그런 말들을 들어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 얘기든 좋습니다.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하시지요.
삔뚜라: 가끔 만나지만 (왕초를 가르키며) 이 양반이 전혀 교회 얘기를 안해요. 예수 믿는 것들이 나만 보면 교회 얘기를 하는데, 전혀 안그렇단 말이야. 예수쟁이들이 떠들면 전혀 듣고 싶지 않은데, 이 양반 하시는 언행을 보면 예수를 알고 싶어지는데, 그것 참, 묘하단 말이지. 해서 내가, 유리쟁이 윤가라고, 그이한테 “이 봐, 우리 이선생이 나오라고 하시는데 교회 나가지 않고 뭐해?” 하고 전도를 하기도 했어요. 나 참, 믿지도 내가 그랬다는거지.
해설: 그러면 박선생께서는 왜 교회 않나가시지요?
삔뚜라: 아, 우리 마누라 한국 보내고 나면 나가볼 생각이네. 내가 마누라 한테 잡혀 있어서 말이야 … 바쁜 일 좀 끝내놓고, 목사한테 가서 “우리 쏘주 한잔 하십시다!” 이래볼 참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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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사실, 왕초께서는 거렁뱅이 동네 부랑자 마약 중독자 도박꾼 … 이런 사람들을 찾아다니시는 분입니다. 목사니 장로 나부랭이니 하면서도 박선생님 같은 분이 무슨 속에 있는 얘기를 좀 하고 싶어도, 색안경을 쓴다든지 아니면 꺼려한다든지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돈 깨나 있어보이는 사람 같으면 달랐겠지요.
삔뚜라: 글쎄,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 같으면 좀 다르겠지. 뭐, 그 동네가 빛난 동네라고, 힘 없는 목사라며? 난 목에 힘 주는 사람들 보면 괜히 알레르기가 도져요. 가짜들이 많거든 …
왕초: 박 선생, 신 소리 그만하시고, 지나간 무용담 한 하시게. 이 양반이 당신 얘기를 무척 듣고 싶어했어.
삔뚜라: 다 쪼그라들은 늙은이가, 뭘 … 이젠 다 지나간 얘기야. 하여튼 내가 왕년에 외항선을 탔어요. 니무라 엔진 이라고, 퉁퉁거리는 2000톤 짜리 작은 화물선이었지. 내가 배 밑바닥 엔진실 화부였네. 석탄을 보일러에 퍼붓는 삽질을 한게야. 인생이 더러워서 갑판도 아니고 인생 밑바닥, 배에서도 밑창 인생이야! 배가 일본 나가사키 어디에 들어왔는데, 숏패스를 끊어줘서 다들 놀러나간다고 뱃놈들이 들떠가지고 왁짜지껄 난리판인데, 나는 갈 데가 없었어요. 내 자리가 화실이니까 따듯한 엔진실 옆에 그냥 서있는데, 다들 나가고 나니, 아니 보일러 저 구석에 웬 시커먼것들이 서있어요. 선원은 아닌데, 가만보니 배 밑창 안보이는 구석에 몰래 들어와 숨있었던 모양이야. 밀항하는 사람들이지. 놀래가지고 기관장에게 뛰어갔어요. 보고를 하니 기관장 왈 “쉿, 아무 말도 하지마!” 이러는거야. 지들은 알고 있었나본데, 그렇게 은밀히 서로 짜고 밀항하는 놈, 밀수하는 놈들이 있었던 시절이었네. 기관장이 그러면서 돈 한 뭉치를 주는데 십만엥이야. 입막음이지. 돈이 생겼으니 나도 나가서 술 한 잔 빨고 가시나 엉덩이도 두드려야 할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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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실이야 늘 덥지만, 밖은 추웠어요. 나갈려고 벗어놨던 가죽 잠바를 찾는데 어디 보여야지. 뱅뱅돌며 찾다보니, 아니, 이것이 내 잠바를 입고 있는게야. 바닷바람이 쌩쌩날리는 기관실 후미 구석에서 추웠던지 한 놈이 벗어놨던 내 잠바를 입고 있었어.
배 밑창에서도 도둑질이라! 그것 참, 기관장이 눈짓하며 그냥 놔두래. 잠바 값도 줬으니 나가 새로 사 입고 놀다오라는거지. 그게 잠바 하나에 십만엥 받은 스토리네. 당시로는 꽤 큰 돈이야. 밀항도 시키고 밀수도 같이 해먹었는지, 후에 그 기관장이 수갑차더라고. 돈이 뭔지 …
왕초: 돈 많은 木蛇, 나무로 깍아 만든 독사들이라고, 누구를 말하는지 아실거네. 그런 인간들이나, 그 배 기관장이나, 해먹기는 매 한가지야. 또, 서글퍼지는구만 … 보셔, 삔뚜라 박, 뼁끼 그만 하고 (삔뚜라는 물감을 뜻하는 스패니쉬) 우리 빛난 동네 그 양반은 그런 사람이 아니니 한 번 나가보시게.
삔뚜라: 그려, 뼁끼는 돈이 안되는 일이지. 교회 뼁끼일은 더 돈이 안되고 … 나이도 먹었으니, 이젠 그만하고 인연되면 빛난 동네나 가볼까? 또 봅시다. 그만 가세나.
해설: (박 선생이 자리를 뜬 후) 왕초께서는 만화를 잘 그리시는데요, 그림 이야기를 좀 해주시겠습니까?
왕초: 내가 말하는 것도 그렇지만, 노래하는 것도, 춤 추는 것도, 그림 그리는 것도 좀 별나네. 비밀편에 나오는 별나라 그림 이야기는 더 별나요, 하늘에서 별이 막 떨어진다구! 꿈 꾸는듯한 저 하늘 나라 별들의 이야기지. 그래서 별나라 이야기네.
해설: 그 별나라 그림 이야기에 요정들이 등장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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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 자네, 디즈니 만화를 아나? 거기에 요정들이 요술봉을 들고 날라 다니다가 한 번씩 하늘을 톡톡 치면 희한한 환상의 나라가 펼쳐지지. 그처럼, 뭐, 꼭 디즈니는 아니지만, 쟌이라는 친구가 이 요정들하고 별나라를 항상 같이 다니거든 … 자, 그럼 우리도 환상의 나라로 날아가 볼까? 내 친구, 쟌 납신다, 요정 나오너라~
(이 이야기는 거지 족보 비밀편 “계사공륙”의 이야기이다. 요정이 쟌을 데리고 별나라로 가는데 그 앞에 바다가 펼쳐진다, 왕초는 쟌과 요정들의 이야기를 TV 카메라 앞에서 그림으로 그려낸다)
쟌: 얘야, 이 바다는 대체 무엇인고?
요정: 이 바다를 건너야 저 앞에 계신 대왕님을 만나 뵐수 있나이다. 이 바다를 좀 내려다 보시지요.
쟌: 호~~ 그것 참! 무슨 바다는 바다 같은데, 바다가 물이 아니고 유리 같네 그려! 뭔 바다가 이렇게 생겼는고?
요정: 이 바다는 선생께서 사시는 곳의 그 바다가 아니고 선생 조상님네들이 여기 오기 전에 대왕님 계신 이 곳을 본따 사막을 헤멜 때 땅에 만들어 놓은 이동식 전 앞의 그 ‘놋바다’ 같은 곳 이옵니다. 대왕님 존전 앞에 나가기 전에 깨끗해지기 위해 손을 씻던 그 ‘세숫 대야’ 이옵니다. 놋으로 만들어 ‘놋바다’ 라 했지요. 백성들이 물 받아놓은 그 대야가 너무 커서 ‘바다’ 라고 했사옵나이다. 이제 대왕님을 곧 알현하실 것이오니 그 때를 생각하시며 손을 씻는다고 생각하시면 되겠나이다. 더러운 몸과 마음으로는 뵐 수 없는 분이나이다. 그냥 뵈면 죽지요.
쟌: 아, 이 바다가 그 바다구먼! 그래, 그래, 내, 이 수정같은 바다에 손도 씻고 발도 씻지, 아예 목욕까지 하면 안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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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고~~ 떨려라! 마, 무섭기까지 하네! 그런데 물이 아니니 이 어쩌면 좋은고?
요정: 이미 목욕을 하시고 오셨으니 오시느라 마음으로나마 먼지 묻은 손만 씻는 다고 생각하면 되는 줄 아뢰오~
왕초: 뭐 하나 했더니 수정 유리쪽에 지 모습 들어날까 떨고 있구만. 휴가나온 군발이 아저씨들이 군화코를 반짝반짝 광내는 이유가 있지. 버스에서 거울처럼 빛나는 군화코를 아가씨 치마밑에 들이대면 속 안이 다 보인단 말씀이야. 땅나라 군화도 그런데 별나라의 유리 바다니, 쟌 속 마음이야 얼마나 잘 드러나겠는가? 쟌만 그런가? 우리네 거지패들도 죄를 지어도 보통 지었어야지. 그 죄 씻고 나가지 않으면 거긴 못 들어가! 수정 같은 유리 바다는 그런 뜻이네. 천성을 아무나 가는 것은 아니지. 우리 쟌이 환상의 별나라를 갔다가 왔는데 처음 가자마자 한 것이 자기 모습 들여다보기 였다네. 계사공륙에 나오는 이야기야. 자네들 모습은 어떠신가? 에잉~~~ 영 아니네, 거지보다 못해! 우리 조상님네들은 손 씻을려고 그렇게 정성을 들여 세숫 대야를 만들었네만, 요즘 원님네들은 어떠신가 모르겠네. 으히고~~~ 머리야!
이문동 외대 뒷산
개울가
오막살이에서
일어난 일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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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
최선생: 술이 깨고, 화장실 거울을 깨먹고, 내 자존심이 산산히 깨지고 박살 나면서, 왜 그렇게 미련스러우리만큼 내가 돈에 집착을 했는지 나는 또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 어렸을 때 우리 동네 이문동에서 일어났던 일들이야.
학창 시절 나는 범생이는 아니었어. 그렇다고 불량 청소년도 아니었고… 범생이도 아니고 꼴통도 아니면 무엇이었을까? 어정쩡한 괴물이지 뭐긴 뭐겠어? 한 때는 전교 석차 두 자릿수르 차지하기도 했었지. 중학교 때까지는 그랬어. 국내 굴지의 재벌 기업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던 아버지가 정계로 빠지면서 가세가 기울면서 시작된 술주정과 행패로 나는 마음을 잡지 못했어. 그 때 흘린 어머니의 눈물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해.
개발 논리가 한창이던 1960년대와 70년대, 당시 우리집은 흑백 TV도 있었고, 가정부를 둔 부잣집이었지. 여동생과 나는 서민들은 꿈도 못꾸던 사립 유치원과 사립 학교를 다니고 있었어. 그러던 집안이 내가 국민학교를 마칠 무렵에는 내가 부모대신 여동생의 손을 잡고 입학을 시키는 일까지 일어날 정도로 엉망이 되었어. 자식들 학업에는 관심도 능력도 없는 아버지와 생활 전선에 나선 어머니. 그렇게 밖에 기억에 남아 있지 않는 우리집이야. 그리고 또 하나, 배고픔이야. 동생에게 집 근처 뒷산에서 나뭇가지를 주워와 풍로에 불 피우고 라면 하나를 끓여 먹이던 애가 애를 키우던 시절 얘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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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니를 떼우러 이모네 가기도 했었지. 이모집에서 찬모 노릇을 하던 우리 어머니. 그 집에서 밥을 얻어 먹다가 사춘이 고기 반찬을 막으며 “엄마, 쟤네들은 왜 맨날 우리 집에 와서 밥 먹어?” 하면 눈물이 나곤 했지. 그렇게 번 돈으로 어머니는 나를 공부시키셨어. 하루 종일 품을 팔아 내놓으시는 돈을 받아 들고 심부름을 가서 한 손에는 19공탄을 새끼줄에 꿰어 들고, 한 손엔 쌀 한됫박을 사와야 저녁을 먹을 수 있었어. 어떤 때는 제때에 연탄을 갈아넣지를 못해 냉기가 도는 단칸방을 뎁히려 번개탄을 사오기도 했지. 어린 나이에 부채질로 불을 피우며 콜록대던 꼴이란 …
가난! 돈은 없어도 공부만 잘하면 성공한다던 그 때, 과외는 아니어도 참고서 하나라도 맘놓고 사보지 못했던 그 때, 책동냥이 싫어서 엄마 몰래 신문배달소년이 되어 거리를 헤메던 그 때, 집 근처 시장통에서 버스창 너머로 이모가 내 이름을 부르며 뭐하느냐고 소리치면서 장학 사업의 내 꿈은 산산히 조각나고 어머니에게 들켜 야단을 맞아야 했었어. 도서관에 갔다 온다고 거짓말을 했거든. 방학 때는 보충 수업 땡땡이 치고 광화문 동아일보사에서 석간을 받아 다방을 돌다가 깡패들에게 신문도 빼앗기고 돈도 털리고 얻어 터지기도 했었지. 나쁜 놈들! 그렇게 해서 책도 사고 학원도 다니고 공부를 했는데, 문예반 선배 눈에 들었어. 선배네는 중3이 중2를 가르치고 고2가 고1을 가르치는 공부방을 운영했었는데 거기 강사(?)로 초빙(!)된 거야. 그러다가 우리 집에 이민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어떻게 하다보니 군에서 후송 헬기 500MD, UH1H를 타는 의무 요원이 되어 있었어. 공부도 싫었고 가정도 지겨워 도망간거지. 그래도 꿈의 나라, 기회의 나라는 가고 싶어서 비자 나올 때쯤에 맞춰 복무 연장을 했거든. 시간을 잘 맞췄지.
내가 돈에 집착하는 이유야. 가난이 지겨웠고, 그만큼 출세와 성공의 욕심도 컸고, 그래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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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놈, 그런다고 애 우유값까지 안보이냐?” 또 그 자식이야. “그래, 그랬다, 이 놈아, 어쩔래?” 나는 막 대들었어. 대들은 그 일이 비극의 시작이었어. 나는 다시 일을 밤낮하기 시작했고, 여전히 우유값도 보내지 않았어. 단지, 돈 모아 숙이 들어오면 사장님시켜주면 된다는 일념 외에는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장님이 되어가고 있었어. 점점 숙이의 짜증과 투정이 심해지기 시작했지. “민, 돈이 그렇게 좋더란 말이냐?” 나같이 돈에 눈 먼 눈 뜬 괴물이 장님이야. 꼭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만 장님이 아니고, 나처럼 미친놈, 눈에 뵈는 것이 없는 놈이 장님이야. 눈 먼 깜깜 봉사! 이 깜깜불감증에 걸리면 어떻게 되는지를 나는 모르고 잘도 헤메고 있었어. 잘못 끼운 첫단추가 계속 나머지 단추도 잘못 끼우게 되는 연쇄 비극이 일어나고 말았어. 무슨 비극이 기다리고 있었을까? 싸움?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야, 전화통 잡고 늘어지는 바람에 국제전화요금만 올라갔지,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2년만의 재회,
그러나 공항에 남편은 나타나지 않고
결혼한지 2년이 지났고, 드디어 우리 숙이가 미국에 들어온대! 뛸 듯이 기뻐해야 되는데 전혀 그게 아니었어. 들어오면 보라는 듯이 가게 하나 차려 놓고 그동안의 아픔을 모두 날려버리고 싶었는데,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기 때문이야. 곧 비자 받는다는 얘기를 듣고 그 동안에 모아놓은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 음악 까뻬를 하나 오픈 했는데 이게 다 날라가버리고 말았어. 429 LA 폭동! 그 때 모든게 다 날라갔어. 이럴 수가, 어쩌면 이럴 수가 있을까! 더구나 비밀로 깜짝쇼를 해보겠다고, 아무 말도 없이 했으니 그 사정을 알릴 수도 없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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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또 나쁜 놈이 이번엔 진짜로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기절이라도 해버렸으면 하는 마음이었지. 아주 일어나지 못했으면 하는 바램. 그건 거였어. 나는 왜 무슨 생각만 하면 일을 저지르는 괴물이 된걸까?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왜 폭동이 일어날 거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정말 나는 하는 일마다 안되는 재수 없는 놈일까? 정말 잃어버린 돈과 시간의 처참함 그 자체였어. 애까지 데리고 들어오는데 없다가도 있어야 할 돈. 그게 나는 없었어. 거지가 된거야. 그래서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겠다고 택시 운전을 했는데, 이런, 비행기 도착 시간에 맞춰 탄다는 손님이 장거리. 이걸 어쩐다? 데려다 주고 가면 늦을텐데 … 손님을 내리라고 그러기엔 사정이 너무 절박했어. 그냥 가자! 그게 결론이었어. 공항에 나갈 시간이 아슬아슬하게 목적지 에데려다 줬는데, 웬걸, 손님이 거기 짐만 내려놓고 다른 데로 가자는거야. “아, 민아, 너는 돈 때문에 되는 일이 없구나!” 결국 이래 저래 시간 빼앗기고 공항에는 나가지를 못하고 말았어. 이런 나쁜 놈이 또 있을까? 그나 저나, 알거지가 된 이 신세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렇게 비극의 첫 날은 내게 다가오고 있었어.
해설: 그 다음이 어떻게 되었을지 정말 궁금해집니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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