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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권위란 무엇인가?
최종권위, final authority라는 말은 20세기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Bible believers)로부터 나온 말입니다. 한국의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전부터 있었던 미국의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 우리들의 정체성은 KJV 수호요, 또 KJV 수호란 것은 바로 “최종권위”를 지키는 것입니다. 하고 무언의 약속이 된 것이 이 말입니다.
한국에 이 말이 들어오게 된 첫 계기는 알만한 분들은 다 알지만 말씀보존학회를 통해서, 그리고 여기서 나온 최대 작품인 “한글킹제임스성경”을 통해서입니다. 이 개념, 최종권위라는 말을 적용, 수용하기까지에 적지 않은 진통과 오해들이 있었습니다.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한국의 허다한 신학교들에서는 “성경의 무오성”, 즉 성경만이 우리 교리의 최종 근거이다라는 소리는 곧잘 해 왔었습니다. 어느 교단, 교파를 가도 그 소리는 꼭 맨 앞자리에다 교단 헌법에다가 박아 놓았습니다. 그들도 “성경이 최종 권위”가 못 되면 그 기독교, 그 교회, 그 교단은 허망한 것이 되고 나아가 이단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이었느냐 하면 헌법에다가는 그렇게 박아 놓았으면서 정작 그 사람들 자신은 그럴만한 성경을 손에 쥐고 있지 않았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쓰고 읽고 공부하는 성경은 <한글개역성경>이었었는데 그 성경은 이미 알려진대로 변개와 삭제가 매우 심해서 한 국가의 표준 성경이 되기에는 다소 창피할 정도의 성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제 시대 이전부터 선교사들이 번역해서 들여왔고 어느 새 한국교계에 표준(cannon)으로 자리잡아 버렸기에 누구도 섣불리 나서서 좀 바꿔야 되지 않을까요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에, 1960-1970년대의 로마카톨릭과 개신교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붐을 틈타서 성경도 “에큐메니칼” 해 보자, 신구교 통합해 보자 하는 발상에 의해서 “공동번역”이 추진되었습니다. 한글개역 자체의 문제에 대해 인식하고 있던 개신교인들 중 일부는 “에큐메니칼”이 뭔지도 모르고, 여기에 뭔가 기대를 걸었었던 것 같습니다. 카톨릭과 손잡고 성경을 내면 그게 카톨릭 성경이지 무슨 성경이 나오겠습니까? 그런데 에큐메니칼에 그렇게 무지했던 그 시절에는 멋도 모르고 개신교인들이 공동번역 들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하물며, 개신교 전반이 기독교 통합 운동이 뭔지도 모르고 무지하게 따라가고 있는데 과거에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서 공동번역이 탄생했는데, 막상 나오고 나자, 이 공동번역이라는 애의 상태가 상상보다 더 심한 겁니다. 완전히 얘는 카톨릭 성경인 거죠. 외경이 들어있질 않나, 하느님이 등장하고, 완전히 개신교인용으로 나왔다고 해도 카톨릭 성경인 겁니다. 그래서 개신교단들이 단체로 비토하고 내던져 버렸습니다. 아무도 안 썼습니다. 단지 일부 리버럴들(자유주의 목사들)만 줏어가지고 공동번역 썼습니다. 지금도 리버럴들 중에 공동번역 아직도 쓰는 자들이 있긴 있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카톨릭은 원래 이 공동번역을 통해서 한국 개신교를 에큐메니칼화시켜 버리려고 했던 건데 계획이 수포로 가버리니까 자기들도 공동번역 좀 쓰는 시늉 하다가 이내 다시 카톨릭 성경을 발간하고 공동번역은 무덤으로 보내 버렸습니다.
이게 부끄럽고 창피하고, 멋쩍기 그지없는 한국 개신교의 성경 번역, 그리고 사용된 역사입니다. 누구도, 어느 목사도, 어느 교단 총회장도, 명망있는 크리스찬 인사들도 나서서 “킹제임스 성경”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건 미국의 핵심 표준 성경이고 아직도 가장 많이 사용되고 전세계적으로 봐도 킹제임스 계열의 성경들이 많이 쓰이는데 왜 한국에만 없느냐, 좀 번역하자, 그 얘기를 하는 사람이 없었단 얘깁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요? 그 당시가 그렇게 무지했습니까? TV도 없고 라디오도 없어서, 혹은 1970년대 이후 시작되어서 극심한 박해를 받았던 중국 지하교회(underground church)처럼 외부의 도움을 청할 처지가 안되었기에 기존 성경만 계속 써야 하는 빈궁한 형편이었습니까? 그렇지 않단 얘깁니다.
물론 시대상이 다소 암울하고 혼란스러운 것은 있었습니다. 군사정권 시절이었고, 언론자유가 없었고 그런 분위기는 감안해야 할 겁니다. 아까 말했다시피 에큐메니칼 운동이 그때 들어와서 교계를 타락시켰던 것, 그리고 오순절 은사주의 운동이 “여의도”를 중심으로 일어나서, 성도들이 성경 문제에서 더욱 관심이 떠나갔던, 체험에 몰입하기 시작한 그런 이유들도 있습니다.
다 이해할 수 있는 바이지만 그래도 한국 개신교 역사 120년, 120년 맞지요?…그런 긴 기간에 걸쳐서 이렇게 오래 바른 성경도 없이 미흡한 성경, 변개된 성경을 갖고 썼던 것은 세계 기독교 역사에 비추어서도 좀 부끄러운 일입니다. 한국 민족이 그렇게 무지하고 교육도 못 받았고 지능이 낮은 민족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시아에서 손꼽는 부지런하고 똑똑한 민족입니다. 그런데 성경 문제만은 동남아시아 어느 나라만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정말 그대로 두면 곤란하니까 역사에 개입하셔서 한글킹제임스 성경을 내도록 사람들을 준비시키고, 환경을 마련하시고, 차근차근 다 준비케 하셔서, 비록 참으로 너무 늦기는 했지만, 이제 어떤 미국 선교사의 손을 통해서 번역하는 게 아니라 한국 목사의 손을 통해서 그 성경이 한글로 나오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한글킹제임스 성경의 탄생 역사는 자세히 설명하진 않겠습니다. 만일 알고 싶다면 여러분은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역사는 이 한글킹제임스 성경의 서문에 고스란히 다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인사적인 이야기로 돌아가서 말하자면 이 한글킹제임스 성경이 탄생했던 무렵에 저는 바로 개역성경을 열심히 읽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때는 부지불식이었고 잘 몰랐지만 저는 바른 성경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성경을 많이 읽고 믿으려고 노력하다보니 개역성경으로는 뭐가 안 되는 겁니다. 이런 걸 아십니까? 개역성경도 물론 성경은 성경입니다. 그러니 내가 믿어보려고 분위기 잡으면서 열심히 읽어가다가 보면 “관주”가 등장하고, 어이쿠, 이번에는 아예 “없음”이 등장합니다. 마음이 뭔가 뜨거워지려고 시동 걸다가 확 꺼져 버리는 것입니다. 내가 이 성경을 갖고 믿어야 되나, 이거 뭐 짜가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면서 영어성경들을 뒤적이며 찾았습니다. 그때도 하필 영어 KJV는 눈에 안 들어오더군요.
1990년대 후반에 가서야 한글킹제임스 성경은 기독교 서적을 벗어나서 대형 서점들로 대대적으로 깔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중소형 서점들 위주로 다녔던 제 레이더망에는 “한글킹제임스성경”은 좀체 발견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쨋든 각설하고, 그 성경을 발견했을 때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첫번째는 안도감이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바른 성경을 찾아서 “성경 바다”를 헤맬 필요가 사라졌다는 평안과 안도감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성경을 통해서 나에게 주시는 모든 말씀들에 대해서 이제는 정말 긴가민가가 아니라 주시는 그 말씀들 그대로 “아멘”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었습니다.
저는 “최종권위”라는 말을 이 현실의 믿음과 괴리시켜서 자기가 아닌 타인들에게만 적용하고 자신은 빠져나가는 위선자들에 대해서, 그 사람들은 제 관점에서, 한번도 바른 성경을 찾아 서점들을 헤매고 다닌 기억이 없는, 편하게 받았던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한 번도 수고해 본 적이 없습니다. 아주 쉽게 받아들이고 그 후에 쉽게 매미 허물 벗듯이 바른 성경을 던져 버리고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던 것이 바로 제가 바른 성경을 찾았던 1990년대 말부터였습니다. 그 전까지는 저 같은 사람들, 그런 소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정확하고 바른 말씀을 찾아서 읽고 감격하고 그런 사람들은 아무 불만도 없이 한글킹제임스 성경을 믿음의 최종권위로 수용했고 그 소박한 믿음이 한국의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Bible believer)를 대표하는 이미지였습니다.
그런데, 앞서 살짝 설명했지만 최종권위를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 적용하는 사람들의 무리가 출현했고 그들은 그 후에 “영킹주의자”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이들에 대해 요약 설명하자면 그들은 바른 성경을 한국 민족에게 주신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전면 부정하고 다시 원점(zero base)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억지를 부린 사람들입니다. 그들 중에 어떤 자들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권위를 찬양하며 한글 번역본은 불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후에 자기들이 비하한 한글 번역본을 새로 또 하나 만들었고 그것을 가지고 “사역”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이상과 목표는 한국 민족 전원이 영어 능통자가 되어서 “영어 킹제임스 성경”으로 배우고 목회하는 것이로되, 현실이 그렇지 못하니, 한글로 번역본을 만들어 우매한 백성들을 그나마 킹제임스 성경의 맛을 보게 해주겠다는 발상인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들의 본심을 한 번도 한국 민족 앞에, 그리고 자기들이 버리고 떠난 믿음의 선배들(말씀보존학회) 앞에 진실되이 고백한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단지, 우리도 이제 킹제임스 성경을 가졌고 이제 바이블 빌리버 비슷한 것을 할 수 있다고 하면서 과거는 잊고 새 출발이 중요한 거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분파의 무리들에 대해서 말하자면 참으로 길고 긴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여기서 한글킹제임스 성경의 간략한 역사와, 또 최종권위가 가지는 현실 의미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한 것이므로 거기에 치중해서, 거기에 결말을 내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최종권위란 무엇입니까? 저는 제 최종권위 탐색의 여정을 여러분에게 되풀이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저는 정보가 부족했습니다. 1990년대에는 인터넷도 정보가 뒤떨어졌습니다. 그때는 바른 성경을 찾아서 대형 서점들을 원정다니며 숨바꼭질하듯 찾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2013년은 정보화 시대입니다. 여러분들은 단지 클릭 한번으로 안드로이드, 아이폰 앱으로 한글 킹제임스 성경을 내려받아 볼 수도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인터넷 서점에서 얼마든지 편리하게 찾아서 주문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복받은 세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이 더이상 소중하지 않은 것이며 최종권위의 의미가 소멸되었습니까?
천만에, 엄존하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바른 성경관을 못 갖춘 사람들은 100년 전 사람들의 그 굼뜬 속도가 무색하도록 바른 성경, 한글킹제임스 성경이 코앞에 있어도 보지 못하고, 선글라스 쓴 장님처럼 더듬더듬하며 진리가 밝히 계양된 이 마지막 시대를 혼미함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최종권위라는 무기가 생긴다고 해 보십시오. 더 설명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거저 받는 것입니다. 부럽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출처: 빛과 흑암의 역사 (http://cafe.daum.net/aspire7/9z5w/68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