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 왕은 그를 대적하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를 높이셨으며 또한 그들이 그를 이김으로 기뻐하지 못하게 하신 주 하나님을 마침내 찬양했습니다. 그가 주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마다 그를 고쳐주셨으며 그가 죽어서 그의 혼이 어두운 무덤 속으로 들어가지 않게 하셔서 살아있게 하셨다고 주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육신이 죽을 때에도 그의 혼이 구렁, 즉 지옥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그의 기도 가운데 그가 받았던 고난들에 대하여 여러 번 고백했습니다:
“오 주여, 언제까지 주께서 나를 잊으려 하시나이까? 영원히 하시려나이까? 언제까지 주께서는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려 하시나이까? 언제까지 내가 내 혼과 의논해야 하며 날마다 내 마음에 슬픔을 지녀야 하리이까? 언제까지 내 원수가 나를 누르고 의기양양하겠나이까? 오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게 유념하시고 말을 들어주소서 나의 눈을 밝히셔서 나로 죽음의 잠을 자기 않게 하소서. 내 원수로 ‘내가 그를 이겼노라.’ 하지 않게 하시며 내가 흔들릴 때에 나를 괴롭히는 자들로 기뻐하지 않게 하소서. 그러나 내가 주의 자비를 신뢰하였사오니 내 마음이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내가 주를 찬송하리니 이는 주께서 나를 후대하셨음이니이다.”(시 13:1-6)
하나님께서는 다윗 왕에게 앞으로 나타나실 예수께서 받으실 고난에 버금가는 고난을 허락하심으로써 그의 기도 가운데 앞으로 예수께서 받으실 고난에 대하여 미리 증거하게 하셨습니다. 대표적으로 시편 22편과 69편은 그분께서 십자가 위에서 받으실 고난에 대하여 성령께서 다윗의 입을 통하여 미리 증거하게 하신 예언의 말씀인 것입니다. 다윗 왕은 그가 받은 엄청난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베푸실 자비하심을 신뢰함으로 미리 기뻐할 수 있었으며 마침내 그를 후대하실 주 하나님을 찬양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다윗 왕을 통하여 예언하게 하신 대로 주 예수께서 받으실 고난과 수치에 대하여 증거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처럼 많은 구름 같은 증인들이 또한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우리 또한 모든 무거운 것과 쉽게 에워싸는 죄를 벗어버리고 우리 앞에 놓은 경주를 하자. 그리고 우리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자기 앞에 놓인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견디시고 수치를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1-2)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다윗 왕처럼 고난 후에 아버지께서 주시는 기쁨을 미리 보시고 십자가 위에서 벌거벗으신 채로 양 손과 양 발에 못이 박히신 채로 여섯 시간 동안이나 수치 가운데 모진 고난을 받으시면서도 죽으신 후 셋째 날에 부활하심으로써 자신을 죽인 마귀의 권세를 이기시고 지난 사천 년 동안 사망의 권세를 가지고 이 세상을 통치하면서 모든 사람들을 죽음의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던 마귀를 이기심으로써 죄와 사망을 이기신 자신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날을 바라보시면서 인내하셨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할 때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고난과 영광에 대하여 증거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형체로 계시므로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는 것을 탈취라 생각지 아니하셨으나 오히려 자신의 영예를 버리고 종의 형체를 입으시어 사람들의 모습을 취하셨느니라. 그리하여 사람과 같은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신을 낮추시고 죽음에까지 순종하셨으니 십자가의 죽음에까지라.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있는 한 이름을 그에게 주사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 위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있는 것이나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혀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6-11)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고난과 죽으심을 본받아 그를 믿어 구원받아 사망으로부터 생명으로 옮겨진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각을 품으면서 여전히 사탄이 통치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고난 중에서도 기뻐하면서 마침내 의의 태양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떠오르시는 그날을 바라보면서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윗 왕은 자신이 고난 가운데 그가 기뻐할 수 있는 것에 대하여 증거했습니다:
“그의 진노는 한 순간이어도 그의 은총은 평생 임이라. 밤새도록 울음이 지속될지라도 아침이면 기쁨이 오리로다.”(시 30:5)
그는 그가 살고 있는 세상을 영적인 밤이라고 증거했습니다. 태양이 지고 나면 밤이 되듯이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한 후에 이 땅에 빛을 비추시던 하나님께서 떠나시고 난 후에 이 세상은 밤이 되었던 것입니다. 밤이 되어버린 세상은 어두움의 세력인 마귀의 권세가 죄와 사망 가운데 사람들을 지배하면서 악한 세상이 되어 하나님의 사람들을 박해하는 세상을 살면서 그는 “밤새도록 울음이 지속될지라도“라고 증거하면서 “아침이면 기쁨이 오리로다”, 즉 의의 태양이신 주 하나님께서 이 땅에 다시 나타나셔서 모든 어두움의 세력들을 심판하시게 될 때 진정한 기쁨이 오게 될 것에 대해 영적으로 증거한 것입니다.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는 의의 태양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떠오르게 될 때에 대하여 미리 증거했습니다:
“보라, 이는 화덕같이 탈 그 날이 오기 때문이라.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정녕 다 그루터기가 되리라. 오는 그 날이 그들을 태우리니, 뿌리나 가지도 그들에게 남기지 아니하리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그러나 내 이름을 두려워하는 너희에게는 의의 태양이 그의 날개에 치유를 가지고 솟아오르리니, 그리하면 너희는 나가서 외양간의 송아지처럼 자라리라. 또 너희는 악인들을 짓밟으리니, 이는 내가 이것을 행하는 날에 그들이 너희 발바닥 밑에 재가 될 것이기 때문이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말 4:1-3)
사도 요한은 이 땅에 나타나신 예수님에 대하여 그가 생명을 주시는 빛이시라고 증거했습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을 사람들의 빛이라. 그 빛이 어두움 속에 비치어도 어두움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더라.”(요 1:4-5)
그는 또한 생명의 빛이신 그분을 믿어 받아들이지 않으면 여전히 생명을 받지 못하고 어두움 속에 거할 수밖에 없게 되어 정죄 받게 된다고 증거했습니다:
이것이 정죄라. 즉 빛이 세상에 왔으나 사람들이 빛보다는 오히려 어두움을 더 사랑하니 이는 그들의 행위가 악하기 때문이라.”(요 3:19)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나타나신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자신이 죄와 사망으로 어두운 세상에 생명의 빛을 비추는 하나님이시라고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라.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결코 어두움 속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을 빛을 얻으리라.”(요 8:12)
그러나 그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명을 주시는 참 빛이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박해하고 죽였으니 예수께서는 자신이 그들의 죄들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시어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게 하실 것을 미리 보시고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참 빛이신 예수께서 죽으심으로써 세상 죄를 제거하신 후에 부활하셔서 하늘로 가심으로써 의의 태양이 서산으로 지신 후에 세상은 다시 밤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땅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 세상에 빛을 비추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이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치 달이 밤에 태양빛을 받아 밤을 비추는 것처럼 생명의 빛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생명의 빛을 비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의의 태양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떠나신 후의 세상에 대하여 밤이라고 증거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 때를 아노니 지금이 바로 잠에서 깨어날 시간이로다. 이는 지금이 우리가 믿었던 때보다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워졌음이라. 밤이 많이 지났고 낮이 가까웠느니라. 그러므로 어두움의 행위를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흥청거리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방탕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채우려고 육신을 위하여 계획하지 말라.”(롬 13:11-13)
다윗 왕은 그가 고난을 당하면서 울음이 지속될 때에는 의의 태양이신 주 하나님쎄서 다시 오시는 날을 바라보면서 기뻐했으며 그가 번영 가운데 있을 때에는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고 다짐하면서 하나님께서 그의 얼굴을 숨기심으로 교제가 끊어질 때 번민하게 되었다고 증거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두운 죄악 세상에서 경건하게 삶으로 인해 박해(딤후 3:12)를 받을 때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바라보면서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주시는 번영의 날에는 더욱 조심하여 믿음으로부터 흔들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도 다윗처럼 슬픔이 춤이 되게 하시고 베옷을 벗기시고 기쁨으로 둘러주시는 주님께 영원토록 감사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아멘!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