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에 살아있는 혼으로 만드셨습니다. 또한 사람의 콧구멍 속으로 생명의 호흡을 불어 넣으심으로 영을 만드시고 영과 혼을 보호하기 위하여 진흙으로 사람의 몸을 만드셨습니다(창 2:7).
세분이 하나이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완벽하게 지음 받은 사람이 타락함으로써 하나님의 영은 떠나가시고 살아있는 혼은 생명력을 상실해 버리고 몸은 그때부터 늙어서 죽게 된 것입니다. 사람의 몸은 장막 집이 시간이 지나면서 무너져버리는 것처럼 나이가 들어가면서 풀처럼 시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세상에 생명의 빛이 오기 전에 살았던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영원한 생명이 없는 사람의 삶에 대하여 그의 120년의 삶을 통하여 증거했습니다; “우리가 주의 성내심으로 인하여 소멸되며, 우리가 주의 진노로 인하여 고난 받나이다. 주께서 우리의 죄악들을 주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빛 가운데 두셨으니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진노 가운데 지나가며, 우리의 연수가 한갓 이야기처럼 지나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어도 그 연수의 힘은 수고와 슬픔이니, 그것이 곧 끊어지면 우리가 멀리 날아가나이다. 누가 주의 성내심의 능력을 아나이까? 주의 두려움에 따라 주의 진노가 있나이다.”(시 90:7-11)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모습으로 사람이 되셔서 세상에 있는 모든 죄들을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사람들의 죄악들을 대신하시고 대가를 치르시지 않았다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은 허무하게 살다가 육신이 죽어 살아있는 혼들조차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비참한 삶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 사실을 그나마 알았던 옛 조상들은 그들의 혼이 구천에 떠돌게 될 것이라고 한탄하는 말을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인생의 무상에 대하여 하나님께 고백하는 기도를 드린 후에 모세는 아주 중요한 간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우리의 날들을 세도록 가르치시어 우리의 마음이 지혜에 이르게 하소서.”(시 90:12)
하나님의 모든 말씀들은 영적으로 죽은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대속의 은혜를 믿고 감사함으로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마음 속에 모셔드릴 때 죽었던 영이 다시 소생되는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그분 자신의 입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 즉 자신을 주셨으니 그를 믿는 자마다 혼이 어두운 지옥 속에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증거하신 것입니다(요 3:16).
사도 바울은 자신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원한 생명을 받은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을 받았을지라도 이미 사람의 몸은 흑인들의 검은 피부나 표범의 검은 점을 어느 누구도 지워버릴 수 없는 것처럼 아무도 지울 수 없는 죄의 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의 몸인 육신은 마치 장막 집이 낡아져 무너져 버리는 것처럼 칠십 세가 되면서 서서히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장막 집 같은 죄의 몸 속에 살며 신음하면서 살고 있는 우리가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의 새 집으로 입혀지기를 바라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이 소망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빌립보에 있는 성도들에게 증거했습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므로 우리가 그곳으로부터 오실 구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으니 그가 만물을 자신에게 복종시키는 그 능력의 역사로 인하여 우리의 천한 몸을 그분의 영광스러운 몸같이 변모시키시리라.”(빌 3:20-21)
우리가 지금 입고 있는 몸은 아담이 물려준 죄의 몸이지만 아담의 형상을 따라 죄 없는 몸을 가지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대속의 은혜를 믿은 우리는 마지막 아담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죄 없는 새 몸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썩지 않고 죽지 않는 몸을 가지신 것처럼 우리도 죽지 않고 썩지 않는 몸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에 우리의 몸은 살아있는 영과 혼과 함께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도 새 몸을 입을 때까지 이 죄악 세상에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몸을 죽임으로 벗어버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 죽을 몸을 이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성령을 주셔서 성령 안에 있는 생명으로 죽을 몸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능력에 대하여 “성령의 보증“이라고 증거했습니다.
이 성령의 보증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에배소 교회에게 편지할 때에, “그분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 구원의 복음을 듣고서 그분을 신뢰하였으니 또 너희가 그분을 믿고서 약속의 그 성령으로 인침을 받은 것이니라. 이는 값 주고 사신 그 소유를 구속하기까지 우리의 유업의 보증이 되사 그의 영광을 찬양케 하려 하심이니라.”(엡 1:13-14)
그러므로 그분을 믿은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을 주심으로써 죽은 영을 살리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께서 오실 때 몸으로 행한 것에 따라 주시는 유업을 받을 수 있는 보증을 하신 것입니다.
이 약속하신 유업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받게 될 상속이라고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증거했습니다. 물론 유업 가운데는 우리가 받을 새 몸을 비롯하여 예수께서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하늘에 있는 처소를 받은 것도 포함 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한 하늘의 처소를 말씀하실 때, “내 아버지 집에는 많은 저택들이 있느니라.”(요 13:2)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사도 요한을 하늘로 끌어올리셔서 새 예루살렘을 자세히 보여주심으로써 자신이 마련하신 처소가 어떤 것인지 친히 보여주셨습니다(계 21:9-27)
이같이 놀라운 유업 가운데 가장 큰 유업이 무엇인지 고난과 박해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은 증거했습니다:“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시거니와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들이니 하나님의 상속자들이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공동 상속자들이니 우리가 그와 함께 고난을 받은 것은 함께 영광도 받게 하려 함이니라. 이는 현재의 고난들이 우리에게 나타내게 될 영광에 감히 비교되지 못한다고 내가 여기기 때문이라.'”(롬 8:16-18)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영광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실 때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받을 영광도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그분을 위하여 고난 받는 가운데 몸으로 일한 만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하여 목회자 디모데에게 가장 큰 유업이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는 것이며 그 유업을 받기 위해서는 현 세상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아야 함에 대해서 증거했습니다 “우리가 참으면 우리도 그와 함께 다스릴 것이요, 우리가 그를 부인하면 그도 우리를 부인할 것이라.”(딤후 2:12)
사도 바울은 고난 받고 있는 성도들에게 권면하면서 믿음의 삶을 살라고 증거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몸에 있는 집에 거할 때 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항상 자신에 차 있으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라. 우리가 자신에 차 있으니 정녕 몸에서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것을 오히려 더 원하노리. 이 때문에 우리가 애쓰는 것은 거하든지 떠나 있든지 그분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를 바라는 것이라.”(고후 5:6-9)
그러므로 우리는 현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현 세상의 삶은 우리가 육신이 몸을 떠나게 되는 날, 끝이 나는 것입니다. 이 짧은 삶 동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은 그분을 위하여 고난 가운데도 참으면서 몸으로 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어떻게 하나님의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는지 증거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경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때 곧 내가 강하기 때문이라.”(고후 12:10)
하나님의 자녀들이 육신의 장막을 벗은 후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 전에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는지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사도 바울이 증거했습니다:
“이는 우리 모두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아가서 선이든지 악이든지 각자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으로 행한 것들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고후 5:10)
세상 사람이나 영적으로 어린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온갖 고난을 사서 받는 사람들을 광신자로 여기는 것을 봅니다. 사도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뭇 사람들로부터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영적으로 무지한 사람들을 향하여,“우리가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라.”(고후 5:13)
사도 요한은 세상에 있는 세 가지에 대하여 증거할 때에, “세상도 세상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를 사랑함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생의 자랑이요, 아버지께 속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라. 세상도, 세상의 정욕도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5-17)
세상에는 세 가지 부류의 사람들의 있습니다. 하나님께 미친 사람, 세상에 미친 사람 그리고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그냥 먹고 살기 위해 사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교회 가운데 두번째와 세 번째에 해당하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네가 그처럼 미지근하여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하기 때문에 내가 너를 내 입에서 토해 내겠노라.”(계 3:16)
우리가 하나님께 미쳐 사는가? 아니면 그냥 먹고 살기 위하여 살고 있는가? 다시 한 번 자신을 점검하는 시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멘!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