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제목: 그리스도의 생각을 품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삶을 통하여 받은 구원을 온전히 이루자
오순절 이후에 이 지구 상에 나타난 가장 신비로운 일은 그리스도를 믿어 성령을 받은 모든 사람들 안에 그리스도가 내주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신비에 대하여 이렇게 증거했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고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이 신비는 여러 시대와 세대에 감추어졌다가 이제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이방인들 가운데서 이 신비의 영광의 풍요함이 어떠한지를 알리고자 하셨으니 이 신비는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요 곧 영광의 소망이라.”(골 1:25-27)
이 얼마나 신비로운 일이겠는가? 또한 우리가 얼마나 신비로운 사람들이 되었는가?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인 안에 계신다는 사실은 성령님과 함께 아버지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말씀이 아닌가? 자연인들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태초에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 모든 만물들을 만드시고 하늘들에 있는 셀 수 없는 군상들을 손가락으로 만드시고 사람을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친히 빚어 만드시어 살아있는 혼으로 만드신 그분께서 어떻게 조그만 사람의 몸 속에 계실 수가 있단 말입니까?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고 말씀하신 분께서 아버지를 떠나 사람의 모양으로 이 죄악 세상에 나타나셨는가? 그분께서는 아버지와 함께 하시던 모든 영광을 버리시고 종의 형체를 입으시고 자신을 낮추시어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십자가의 죽음에까지 순종하신 주님을 우리는 깊이 묵상해야 하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셨던 예수께서 이 엄청난 순종을 하셨기에 아버지께서 그를 지극히 높이셔서 천지간에 있는 모든 만물들이 그들의 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신 사실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하신 순종을 통하여 아버지께서는 그분에게 만 왕의 왕 만주의 주라는 칭호를 주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분을 믿어 그리스도인이 된 모든 사람들에게도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생각을 가지고 아버지 하나님께 죽도록 순종할 때에 왕 같은 제사장이 되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사도 베드로는 이 엄청난 사실을 증거했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선택 받은 세대요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민족이요, 독특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움에서 불러내어 그의 놀라운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분의 덕을 너희로 선포하게 하려는 것이니라.”(벧전 2:9)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신비롭고 엄청난 축복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명령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항상 복종했던 것처럼 내가 있을 때뿐만 아니라 내가 없는 지금도 더욱더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이는 너희 안에서 역사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너희로 그분의 선한 기쁘심에 따라 뜻을 두고 행하게 하려 하시느니라.”(빌 2:12-13)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은 구원을 받기 위하여 노력하라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 계시던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들 안에 계시니 그분의 뜻을 온전히 행함으로써 각자에게 주신 아버지의 뜻에 따라 행하라는 말씀 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인이 된 모든 사람 안에는 그리스도 안에 계시던 하나님 아버지께서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아버지와 하나가 되셔서 아버지의 뜻을 행하시기 위하여 죽기까지 순종하신 것처럼 온전히 그리스도의 생각과 하나가 되어서 죽기 까지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생각 속에는 아버지께 어떤 불평이나 다툼도 없이 말 없이 온전히 순종하시는 삶을 사심으로써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그리스도의 이런 모습을 성령 안에서 미리보고 증거했습니다:
“그가 억압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여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셨으니 그가 어린양처럼 도살장으로 끌려가며, 또 털 깎는 자들 앞의 양이 말없듯이 그가 자기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감옥과 재판에서 끌려갔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선포하리요? 이는 그가 산 자들의 땅에서 끊어졌음이요, 그가 내 백성의 허물로 인하여 형벌을 받았음이라.”(사 53:7-8)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생각을 품고 사는 그리스도인은 어떤 억울한 일이나 박해를 받고 또한 조롱을 받아도 말없이 입을 열어 불평하시거나 다투지 않으며 항상 기뻐하고 기도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먼저 그리스도의 생각을 품고 사는 삶을 살면서 성도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그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았던 십자가의 고통에 버금가는 삶에 대하여 증거했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종이냐? (내가 어리석은 자같이 말하지만) 나는 더욱 그러하다. 내가 더 많이 수고하였고 매도 수없이 맞았고 더 빈번히 감옥에 갇혔고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당하였으니 유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뺀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고 세 번 몽둥이로 맞았으며 한 번은 돌에 맞았고 세 번 파선을 당하였는데 하루 밤과 낮을 깊은 바다에서 보냈으며 여려 번 여행하는 중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이방인으로부터의 위험과 성읍에서의 위험과 광야에서의 위험과 바다에서의 위험과 거짓 형제들 가운데서의 위험을 당하였으며 수고하며 애쓰며 자주 깨어 있고 배고프며 목마르고 자주 금식하며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3-27)
또한 사도 바울은 그와 한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생각을 품고 살던 동역자 두 사람에 대하여 성도들에게 증거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아들처럼 자신과 함께 복음으로 섬긴 목회자 디모데에 대하여 증거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주 예수 안에서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바라노니, 이는 너희 형편을 알고 위로를 받으려 함이라. 이는 나에게는 생각을 같이 하여 너희의 형편을 진심으로 염려해 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 모두 자기 자신의 일만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은 구하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너희는 디모데의 증거를 아나니 마치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섬긴 것처럼 그가 복음 안에서 나와 함께 섬겼느니라. 그러므로 나에 관한 일이 어떻게 되어가는지를 보고서 곧 그를 보내기를 바라며 나 자신도 속히 가리라고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빌 2:19-24)
두 번째로 그가 증거하는 사람은 에파프로디도입니다. 그는 자신의 몸도 돌보지 않으면서 성도들을 섬기고 사도 바울을 물질로 섬겼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나의 형제요, 동역자이며, 전우이고, 너희의 사자이며, 나의 필요를 공급해 주는 일꾼이라. 이는 그가 너희 모두를 그리워하고 그가 아프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므로 심히 근심하였음이라.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내가 슬픔 위에 슬픔을 당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를 베푸셨으니 그에게뿐만 아니라 나에게도니라. 그러므로 내가 서둘러서 그를 보낸 것은 너희로 그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또 나도 슬픔을 덜게 함이라. 그러므로 주 안에서 그를 기쁨으로 영접하고 또 그와 같은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라.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거의 죽게 되었으나 자기 생명을 돌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에 대한 너희 섬김의 부족함을 그가 채우려 함이라.”(빌 2:25-30)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에도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일만을 돌보고 있지만 그리스도의 생각을 품고 죽기까지 순종하는 종들과 함께 동역하는 소수의 종들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지극히 높이셔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영광을 받게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