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죄악 세상에 생명을 주시는 빛으로 오셨던 예수께서 세상 죄를 제거하시기 위해 죽으신 후에 세상은 마치 태양이 서산에 지고 난 후 밤이 된 것처럼 영적인 밤이 되었습니다.
지난 이천 년이 지난 후 지금의 세상은 마치 밤이 사경에 이른 것처럼 빛이신 예수께서 태양처럼 다시 한 번 떠오르시기 직전에 와 있는 것입니다. 태양이 떠 오르기 전에 더욱 깜깜한 것처럼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악한 죄악 세상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영적인 밤에 대하여 증거했습니다:
“밤이 많이 지났고 낮이 가까왔느니라. 그러므로 어두움의 행위를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자.”(롬 13:12)
사도 바울은 구원받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가 한 때는 어두움이었으나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니 빛의 자녀들로서 행하라.”(엡 5:8)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전에 어두움의 자녀들이었던 그들의 정체성에 대하여 “그러므로 너희는 손으로 육체에 향한 할례자라 불린 자들에 의하여 과거에는 무할례자라고 불린 이방인이었음을 기억하라.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로부터 분리되어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에 속하지 않는 타국인이요, 약속의 언약들로부터는 생소한 사람이었으며 소망도 없고 세상에서 하나님도 없었느니라.”(엡 2:11-12)고 증거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빛에 대하여 증거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느니라. 그 말씀이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느니라. 만물은 그에 의하여 지은 바 되었으며, 이미 지음 받은 것 가운데 그가 없이 지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더라.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그 빛이 어두움 속에 비치어도 어두움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더라.”(요 1:1-5)
그는 그가 만난 예수님이 영원 전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태초에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던 말씀 하나님이라고 증거한 것입니다. 또한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며 그 생명을 사람들에게 비춰주심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빛이라고 증거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성령 안에 들어가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어두운 세상에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빛을 창조하신 말씀으로 계셨던 말씀 하나님에 대하여 증거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 땅은 형체가 없고 공허하며 어두움이 깊음의 표면에 있으며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에서 거니시더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더라. 하나님께서 그 빛을 보시니, 그것이 좋았더라. 하나님께서 그 빛을 어두움에서 나누시더라.”(창 1:1-4)
하나님께서는 땅에 만물들을 창조하시기 전에 먼저 빛을 창조하심으로써 땅에 거하게 될 사람들과 만물들에게 그 빛을 비춰주심으로써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빛은 넷째 날에 창조하신 하늘들에 태양과 달과 별들에게도 빛을 주셔서 세상을 비추게 하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빛이신 예수님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증거했습니다:
“태초부터 계셨고, 우리가 들었으며, 우리 눈으로 보았고, 주목하여 살폈으며, 우리 손으로 만졌던 생명의 말씀에 관해서라. (그 생명이 나타나시매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였으며 너희에게 그 영원한 생명을 보여 주셨으니, 그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셨으며 우리에게 나타나셨느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너희에게 전함은 너희도 우리와 교제를 갖게 하려는 것이니, 참으로 우리의 교제는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이라. 우리가 너희에게 이런 것들을 씀은 너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에 관하여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말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요 그분 안에는 어두움이 전혀 없다는 것이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가 있다 하면서 어두움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거짓말하는 것이며 진리를 행하지 아니하는 것이라. 그러나 그분이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간에 교제가 있게 되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께끗하게 하시느니라.”(요일 1;1-7)
태초에 말씀으로 계셨던 하나님께서 예수라는 이름으로 사람이 되셔서 자신의 백성 유대인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분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을 때 그분을 믿고 영접한 사람들에게는 그분께서 비추시는 빛을 통하여 생명을 받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혈과 육을 가진 아담의 자손이 아니라 그분께서 주시는 성령을 받음으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백성 유대인들은 그분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요 1:11-13)
그러나 이천 년 전에 생명을 주시는 빛으로 세상에 나타나셨던 예수께서는 앞으로 세상에 태어나게 될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세상 죄를 위하여 죽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위로자 성령님을 세상에 보내주셔서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들을 기록하시고 그 말씀들 안에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으셔서 원하기만 하면 모든 사람들에게 성경이라는 책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순절 이후부터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모든 성경이 생명을 주시는 빛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접하는 사람들은 생명의 빛을 받아 빛으로 다시 태어나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빛을 받아 새롭게 태어난 사람들은 빛이 없고 어두운 세상에 사는 동안에 끊임 없이 빛의 말씀들을 사랑하며 빛을 따라 살아야 하고 빛의 말씀 안에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치 육신의 몸이 쉬지 않고 호흡을 하고 육신의 양식을 먹어 영양분을 공급받아야만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처럼 생명의 빛을 받아 영적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은 시간을 사서 얻어 육신을 따라가지 말고 자신을 부인하고 생명의 빛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빛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적인 양식을 받아야 하는 영양소들에 대하여 증거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이 온전하게 되며,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구비되게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
그러므로 모든 어두움을 몰아내고 빛의 말씀으로 충만한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앞으로 주님과 함께 영원무궁토록 살게 될 영원한 집 새 예루살렘에는 어두움이 전혀 없는 곳이라고 사도 요한이 증거했습니다:
“내가 보니, 성 안에는 성전이 없더라. 이는 전능하신 주 하나님과 그 어린양이 그곳의 성전 임이라. 그 도성은 해나 달이 그 안에서 비칠 필요가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그곳을 비추고 어린양이 그곳의 빛이 됨이라.”(계 21:22-23)
그러므로 생명의 빛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두움보다 빛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과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빛 보다 어두움을 사랑하여 어두움 가운데 행하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을 슬프게 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도 바울은 어두움 가운데 거하면서 잠들어 있는 성도들을 향하여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말씀하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라. 그리고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라.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네게 빛을 주시리라.’ 하셨느니라.”(엡 5:14)
그는 오래 전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을 인용하여 증거한 것입니다:
“일어나라, 빛을 비추라. 이는 네 빛이 왔고, 주의 영광이 네 위에 솟아났음이라.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심한 어두움이 백성을 덮으리라. 그러나 주가 네 위에 일어날 것이요,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 이방인들이 네 빛으로 올 것이요, 또 왕들도 너의 솟아나는 광명으로 오리라.”(사 60:1-3)
선지자 이사야는 어두움 가운데 잠자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경고하면서 먼 훗날에 그들의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이방인들이 생명의 빛이신 그분을 믿어 구원받게 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열매에 대하여 증거하면서 “성령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와 진리 안에 있음이라.”(엡 5:9)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의 열매는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방해서는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을 따르고 말씀의 빛에 순종하면서 빛 가운데 행할 때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주님의 말씀처럼 자신을 철저히 부인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증거할 때에 자신을 온전히 부인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없음에 대해 간접적으로 증거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모든 일에 감사하라.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 관한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라가면서 모든 일에 감사하며 기뻐하는 삶에 대하여 증거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경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때 곧 내가 강하기 때문이라.”(고후 12:10)
마침내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성령 충만한 삶을 살 것에 대해 권면했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그것은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라.”(엡 5:18)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슈가 되고 있는 것들 가운데 술을 먹어도 괜찮은 것이 아닌가? 취하지만 않으면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말들을 많이 듣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술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알콜이 혈관 속에 들어가면 성령 충만함을 유지 할 수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혼합된 술을 즐겨 마시고 있는 것을 봅니다. 문제는, 요즈음에는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며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을 아주 희귀 종으로 여기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빛의 말씀 안에 거하는 사람은 사람의 의견을 듣지 않고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술은 거만하게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이에 속는 자마다 지혜롭지 못하니라….술은 붉고 잔에서 빛을 내며 매끄럽게 내려가나니, 너는 술을 쳐다보지도 말라. ….주의 손에 한 잔이 있으니 그 포도주는 붉고 완전히 혼합되어 있도다, 그가 그것을 쏟으시니 지상의 모든 악인들이 그것의 찌끼를 짜 마시리라.”(잠 20:1, 23:31, 시 75:8)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원수 사탄 마귀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삼키기 위하여 우는 사자처럼 다니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시간을 삼켜버려서 그들로 하여금 빛의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지 못하도록 미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권고대로 우리는 시간을 사서 얻음으로써(Redeem your time) 빛의 말씀 안에서 행함으로써 사탄에게 틈을 주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