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는 가정에서 아내와 남편 사이에 주신 계명에 대해 자세하게 상고했습니다. 이 계명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아주 중요한 계명입니다. 가정이 그리스도 안에서 질서 안에 있어야 기도가 막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계명은 자녀들이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약속 있는 첫째 계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계명 중 처음 네 가지 계명은 어떤 약속도 주어진 계명이 아니지만 다섯 번째 계명은 처음으로 약속이 있는 계명인 것입니다:
“너는 네 아비와 네 어미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주 너의 하나님께서 네게 준 땅 위에서 네 날들이 길 것이라.”(출 20″12)
성령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주 안에서”라고 증거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으로 주심으로써 어떤 조건도 없이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셨으며 “네 날들이 길리라.”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세상 교육을 받은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약속 있는 첫 번째 계명을 어리석게 여기도록 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 있는 첫 번째 계명을 지키지 못하도록 미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에게 역사하는 영에 대하여 증거했습니다:
“전에는 너희가 그것들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공중 곧 지금 불순종의 자녀들 안에서 역사하는 영을 따라 행하였으니”(엡 2:2)
남자만 오천 명이나 되는 수많은 사람들이 사흘이나 굶어 허기져 있었을 때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때에 주님의 말씀을 들었던 어린아이가 빵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를 주님께 드렸을 때 그 아이의 믿음으로 수 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고 열두 광주리를 남기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이 시대의 아이들이 약속 있는 첫 번째 계명을 행하기만 한다면 오늘날 세상 교육에서 가르치고 있는 소위 성공이라는 것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누릴 수 있음에도 마귀에게 속아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받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두 가지 계명들은 어떤 약속이 주어지지는 않은 것들이지만 이들을 행하게 될 때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으며 이웃들과 화평 관계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계명들을 지키지 못하여 부모와 자녀 사이와 주인과 종들 사이에 화평을 누리지 못하고 서로 싸움이 계속되는 것을 봅니다.
두 번째로, 사도 바울이 마지막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인 능력을 받아 마귀의 술책에 대항하여 설 수 있도록 하나님의 전신갑옷을 입으라고 강한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마귀의 술책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누워있어서도, 앉아있어서도 안되며 영적으로 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마귀가 그리스도인들을 속이는 술책이 어떤 것인지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옛날 중세 때에 마귀는 자신의 신부인 로마 교회를 사용하여 아무도 하나님의 전신갑옷을 입지 못하게 하려고 성경을 소지하거나 읽지도 못하게 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을 무참하게 죽였으며 그들로 하여금 마귀와 대항하여 서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마귀는 그의 술책을 교묘하게 바꾸어 하나님의 자녀들로 하여금 자신과 대항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마귀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존재나 예수님의 존재 그리고 심지어는 자신의 존재까지도 부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하도록 하면서 단 한 가지 그들로 하여금 주일마다 교회에 가서 예배 드리고 온갖 종교 행사에 참여하도록 하고 그들로 하여금 복음을 듣지 못하게 하여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하게 하고 교회들을 대형화 하도록 합니다. 그리하여 대부분 종교인들로 머물게 하다가 그와 함께 지옥으로 가게 하는 술책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자신의 술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대부분의 신학교들을 로마 교회의 교리로 물들게 하여 신학생들로 하여금 참 그리스도의 복음을 깨닫지 못하도록 하고 온갖 철학적인 신학과 자유주의 신학으로 그들을 물들게 하여 그들이 졸업 후에 교회 강단에 서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군대에서 보병들처럼 마귀와 싸우지 못하도록 온갖 행정적인 것들만 배워서 자신들이 사역하는 교회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종교인들로 만들어 구원받지 못하도록 하여 지옥 길로 인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세운 성경학교를 졸업한 목회자 디모데는 마귀의 술책에 대항하여 서서 정사들과 권세들과 이 세상 어두움의 주관자들과 높은 곳들에 있는 영적 악에 대항하여 싸우기 위해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어 하나님의 전신갑옷을 입고 대장 되신 그리스도 예수를 따라가며 혼들을 이겨오는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므로써 디모데에게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군사의 삶에 대하여 증거했습니다:
“그런즉 너는 예수 그리스도의 훌륭한 군사로서 고난을 견뎌내라. 전쟁에 임하는 자는 아무도 이생의 일들에 얽매이지 아니하나니 이는 자기를 군사로 뽑은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담후 2:3-4)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전신갑옷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자신과 싸워 이겨 자신의 손 안에 있는 혼들을 빼앗지 못하도록 온갖 공격을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거듭나지 못한 종교인들은 실상은 마귀의 자식들이므로 그들이 전신갑옷을 입지 않아도 그들을 공격하지 않고 편안하게 살다가 지옥으로 가도록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신갑옷을 입고 마귀를 대적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박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실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박해를 받을 것이라.”(딤후 3:12)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군사들은 방어용 갑옷과 공격용 갑옷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방어용으로 진리의 허리띠로 무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들은 진리입니다. 또한 진리의 말씀들 안에는 진실만이 있습니다. 진리로 허리띠를 입어야만 영적인 힘을 발휘활 수 있는 것입니다. 의의 흉배라 함은 하나님의 의로 받은 구원 위에 자신의 의로운 삶으로 옷 입어야 합니다. 또한 공격이 최선의 방어이듯이 항상 복음의 신발을 신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화평의 복음을 전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방패라 함은 언제 쏠지 모르는 마귀의 불화살을 믿음으로 막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마귀는 여러 가지 일들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을 약하게 하고 모욕 받게 하고 궁핍으로 인해 우울하게도 하며 자신의 사람들을 사용하여 박해도 합니다. 때로는 곤경 가운데 밀어 넣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믿음을 가지고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또한 구원의 투구를 써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의 투구에 대하여 증거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낮에 속하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인 투구를 쓰자.”(살전 5:8)
마지막으로 공격의 무기인 성령의 칼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말씀의 칼을 날려 마귀를 공격해야 하는 것입니다. 칼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에는 영적인 뜻이 있습니다.
Sword 즉 말씀 앞에 성령을 의미하는 S가 붙어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말씀을 휘두를 때 마귀는 도망가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전신갑옷을 입고 해야 하는 것은 기도와 간구로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모든 성도들을 위해 모든 인내와 간구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이 기도하며 간구하는 삶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성막의 구조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네 개의 문, 즉 사 복음을 통하여 복음을 듣고 제단에 이르러 제단에서 죽으신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물 대야, 즉 말씀에 의한 물로 씻김을 받은 후 성소 안으로 들어가서 성령의 조명을 통해 기름부음을 받아 말씀들을 먹고 지성소 입구에 있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향단 앞에서 비로소 기도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은 받았지만 성소 안에 들어가지 못하여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필요한 것들만을 구하는 기도밖에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성소에 들어간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성도들을 위해 인내로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곳에는 세상과 자신은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님과성도들만 보이기 때문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