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받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마귀 자식처럼 살던 어떤 사람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던 한 편 강도가 예수님을 보고 “주여, 주께서 주의 왕국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눅 23:42)라고 고백했을 때,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
그가 예수님을 “주”라고 불렀을 때 그는 예수님을 앞으로 왕으로 오실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을 믿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지체하지 않으시고 그가 자신과 함께 오늘 낙원에 있게 될 것이라고 응답하시면서 그가 받은 구원에 대해 확증하셨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가 평생 동안 마귀 자식처럼 온갖 악을 행하면서 살아온 모든 것을 아셨지만 그가 자신을 “주”라고 부른 순간 그의 믿음을 보시고 은혜로 그를 구원하셨던 것입니다.
그 강도야말로 자신이 엄청난 악한 죄들을 가슴 깊이 회개하면서 예수님만이 자신의 죄를 용서하시는 유일하신 구세주이심을 믿었던 것입니다. 만약 그가 십자가에서 죽기 전에 그가 풀려 나왔더라도 그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믿음을 죽기까지 포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믿음이 헛된 것이 아님을 아셨기에 그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은혜로 구원하셨던 것입니다. 그가 구원받은 것은 그의 어떤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 은혜로 구원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받은 구원에 대하여 자랑할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은혜의 복음에 대하여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아주 간결하고 정확하게 증거했습니다: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2:8-9)
그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 할 때도 율법의 행위가 아닌 은혜로 받는 구원에 대하여 분명하게 증거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그분 앞에 의롭게 될 육체가 없나니 이는 율법을 통해서는 죄의 깨달음이 있음이니라….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율법의 행위들이 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단정하노라.”(롬 3:20,28)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았지만 율법의 의를 따르던 유대인들이 구원받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서도 증거했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하던 이방인들이 의에 이르렀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라. 그러나 의의 법을 따르던 이스라엘은 의의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렇게 되었느냐? 이는 그들이 믿음으로 의를 구하지 아니하고 율법의 행위로 되는 것처럼 구하였기 때문이라. 그들이 그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에 넘어진 것이라. 기록된 바와 같으니 ‘보라, 내가 시온에 걸려 넘어지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두노니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롬 30-33)
그러므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녀 빈부 귀천과 상관 없이 어떤 악인이나 죄인이든지 상관 없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실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한편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복음에 대하여 증거할 때 헛되이 믿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의 말을 남겼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이제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았고 그 안에 선 것이라. 만일 너희가 내가 전한 복음을 굳게 잡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다면 복음을 통하여 너희도 구원받은 것이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달하였나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성경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셔서 게바에게 보이시고 그 후에 열두 사도에게 보이신 것이라.”(고전 15:1-5)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할 때 “내가 전한 복음을 굳게 잡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다면“이라고 증거한 것은 예수를 믿는 다고 고백하는 사람들 가운데 복음을 굳게 잡지 못하고 헛되이 믿는 사람들이 있다고 우려의 메시지를 전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들이 말로는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지만 은혜로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야말로 헛된 믿음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일마다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지만 그들은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아닌 종교인이 되어 영원한 지옥에 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하여 구원받는 참된 믿음과 헛된 믿음에 대하여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 제자들이 주께 물어 말씀드리기를 ‘이 비유가 무엇이니이까?’ 하니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는 하나님의 나라의 신비들이 알도록 허락되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제 그 비유는 이것이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씨가 길가에 떨어졌다는 것은 그들이 들으나 마귀가 와서 그들의 마음에서 말씀을 빼앗아 가 버리므로 믿지도 못하고 구원받지도 못하는 자들이요 씨가 바위 위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기쁨으로 받아들이지만 뿌리가 없으므로 잠시 믿다가 시험을 받을 때면 떨어져 나가는 자들이라. 씨가 가시떨기 사이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기는 들어도 가서 이생의 염려와 부와 쾌락에 억눌려 온전함에 이른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들이요 씨가 좋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은 정직하고 선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켜서 열매를 맺는 자들이라.”(눅 8:9-15)
예수께서 말씀하신 비유에 의하면 첫 번째 세 사람은 믿음이 헛되게 되어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말씀하신 것이며 마지막 네 번째 사람은 말씀을 굳게 잡아 헛되이 믿지 않음으로써 구원받은 사람을 말씀하신 것이라고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의 말씀으로 열매 맺는 사람에 대하여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증거했습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않을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이는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사람의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며, 풀은 마르고 꽃은 져도 주의 말씀은 영원토록 남아 있음이라. 이것이 너희에게 복음으로 전해진 말씀이니라.”(밷전 1:23-25)
그러면, 왜 믿음이 헛되이 되는가에 대하여 마음 깊이 묵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믿는 믿음이 어떤 종류인지도 모르면서 평생 교회에 다니다가 지옥에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 사분의 일 정도만이 말씀을 깨닫고 열매를 맺어 거듭나서 구원을 받는다고 해도 너무나 적은 수만이 구원을 받는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 마지막 때에 교회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거의 대다수가 구원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비관적인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죽은 후에 천국 간다고 믿으면서 주일마다 교회에 가서 하나님과 눈도장 찍으면서 자신을 위로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고 입술로 고백 하면서 예배 드리고 찬양 드리고 있을지 몰라도 자신이 믿는다고 고백하기 전에 자신이 얼마나 죽을 죄인이라는 사실을 처절하게 깨닫고 있는지에 대하여 스스로 자문자답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십자가에 못박혔던 한 편 강도는 자신이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예수님께 “주여!”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그가 외쳤던 소리가 얼마나 컸을지 상상해 보면 그야말로 천지가 진동할 정도로 컷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그분 앞에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서 얼마나 처절하게 외쳤던가 돌이켜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 강도보다는 깨끗하다고 생각하며 그분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세례나 침례를 받지 않았는지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들이 의롭다고 여기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에게 그들 안에 들어 있는 죄들이 자신과 함께 못박히게 될 강도들과 조금도 차이 없는 죄들이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예수를 믿는 다고 고백하는 대부분 사람들 역시 조금도 차이 없는 죄인들임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도 그렇게 깨닫지 못하겠느냐? 무엇이나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그 사람을 더럽힐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이는 그것이 사람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나오는 모든 음식은 깨끗하지 아니하냐?’고 하시더라. 또 말씀하시기를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 사람을 더럽히느니라. 이는 속에서, 즉 사람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간음과 음행과 살인과 도둑질과 탐욕과 악의와 사기와 방탕과 악한 눈과 하나님을 모독함과 교만과 어리석음이기 때문이니, 이런 모든 악한 것은 속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히느니라.;고 하시더라.”(막 7:18-23)
다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 속에 들어 있는 세 가지 종류의 사람들의 믿음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살펴 볼 때에, 자신이 하나님과 원수 되어 살았던 비참한 죄인이었음을 깨달았다면 어떻게 들은 말씀을 마귀에게 빼앗기고 박해가 올 때에 믿음을 버리고 돈과 쾌락 때문에 신앙을 포기할 수 있는지 그야말로 가짜요 헛된 믿음인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자신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있으면서도 하나님과 원수 된 것을 알지 못하고 있으니 복음의 말씀을 깨닫고 믿어서 열매 맺어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이 교회 안에서도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자신이 세상에 오실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고 말씀하신 것을 마음 깊이 새겨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