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에게 주신 본문 말씀과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이 하늘과 땅 차이만큼 다른지 깨닫고 하나님의 생각이 얼마나 깊은지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천 년 전에 이스라엘 백성의 왕으로 오셔서 그들 모두를 예수님을 믿지 않는 가운데 가두어 두셨는가? 이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들 거의 대부분을 그 영적인 감옥 속에 가두어 두셨는가?
또한 그들을 믿지 않는 가운데 가두어두심으로써 우리 같은 이방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셨는가? 지난 사 천 년 동안 이방인들을 사용하여 그들을 수없이 죽이심으로 그들을 비참하게 만드셔야만 하셨는가? 택한 민족을 비참한 비극 속에 두셔야만 이방인들을 구원하실 수 있으셨는가? 그럼에도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으시다고 말씀하실 수 있는가?
하나님의 영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생각들이 허무하게만 들리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자신이 얼마나 허무하게 지음 받았는지 한탄했습니다:
“나의 때가 얼마나 짧은지 기억하소서. 주께서는 모든 사람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지으셨는지요?”(시 89:47)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사람의 생각이 허무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사람의 생각을 아시나니 그것들은 허무하도다.”(시 94:11)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손으로 빚어 만드신 아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땅으로 돌아갈 때까지 네 얼굴에 땀을 흘려야 빵을 먹으리니 , 아는 네가 땅에서 취해졌음이라. 너는 흙이니 너는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
그때부터 육천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태어나서 허무하게 흙으로 돌아갔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조만간 흙으로 돌아가는 것도 알지 못하고 여전히 아담의 자손들이 되어 태어나고 있는가? 사람의 생각에 얼마나 허무한 일인가? 그런데도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해하심이 없다는 말인가?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자신의 생각과 사람들의 생각이 얼마나 다른지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주가 말하노라.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니 하늘들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이 너희 길보다 높으며 너희 생각보다 높음이라.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고 땅을 적셔서 싹을 내어 뿌리는 자에게 씨를 주고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내 말도 그러하나니 그것은 내게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고 내가 기뻐하는 것을 이루어 내가 보내어 이루게 하는 일에서 번성할 것이니라. 너희가 기쁨으로 나가서 화평으로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작은 산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터뜨리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치리라.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전나무가 나오며 찔레를 대신하여 도금양나무가 나올 것이라. 그것이 주께 한 이름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할 영원한 표적이 될 것이니라.”(사 55:8-13)
하나님의 생각이 얼마나 깊은지를 깨달은 사도 바울은 이렇게 증거했습니다:
“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요함이여! 그분의 심판을 어찌 헤아리며 그들의 지나간 길을 어찌 찾아내리요? 누가 주의 생각을 알았느냐? 누가 그분의 의논자가 되었는가? 누가 먼저 그분께 드려서 되돌려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그분께로부터 나와 그분께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분께 영원히 있으리로다. 아멘.”(롬 11:33-36)
그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할 때에 그가 어떻게 하나님이 생각을 알게 되었는지 증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것들은 눈으로 보지도 못하였고 귀로 듣지도 못하였으며 인간의 마음 속에 들어온 적도 없었느니라.’한 것이라.그러나 하나님께서 이것들을 우리에게 그의 영으로 나타내셨으니 이는 성령께서는 모든 것, 심지어 하나님의 깊은 것들까지도 통찰하시기 때문이라. 사람의 일을 그 사람 안에 있는 사람의 영이 아니면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이 아니면 아무도 모르느니라.”(고전 2:9-11)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도 바울은 자신의 생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하여 증거했습니다:
“그러나 자연인은 하나님의 영의 일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일들이 그 사람에게는 어리석게 여겨지기 때문이요, 또 알 수도 없나니 그 일들이 영적으로만 이 분별되기 때문이니라.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신은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누가 주의 생각을 알았다고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각을 가졌느니라.”(고전 2:14-16)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영이 없는 유대인들에게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전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한 말들은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고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의 이성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가 없으심이라.”(롬 11:29) 고 증거했는지 영적인 의미를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은 사람이 허무하게 태어나서 허무하게 죽어 흙으로 돌아간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아담의 자손으로 태어난 자연인들은 죄의 성품이 들어있는 육신의 정욕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하나님의 공의 의 법에 따라 저주와 사망 가운데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세상에 사는 동인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심판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종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깨닫게 하심으로써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올 때에 하나님의 영을 주시어 하나님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영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분을 믿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의 가족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이새의 아들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령이 어떤 영이신지 미리 예언하셨던 것입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의 뿌리들에서 한 가지가 자랄 것이라. 주의 영이 그 위에 머물리니 지혜와 명철의 영이요, 계획과 능력의 영이며, 지식과 주를 두려워하는 영이라.”(사 11:1-2)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창조하셔서 그분께로부터 나온 사람들과 모든 만물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을 통해 다시 그분께로 돌아가게 하시는 계획을 세우신 것입니다. 하늘에서 반역한 루시퍼 마귀로 인해 하늘과 땅에 하나님의 시간표로 육 일(육천 년) 동안 잠시 방해가 있었지만 아담을 창조하시고 그에게 “다산하고 번성하고 땅을 다시 채우고 그것을 정복하라. 그리고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을 받아 새롭게 된 사람들을 하늘과 땅에 충만하게 하시어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에 충만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깊은 것들을 깨달은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때에 찬 계획이 어떤 것인지 증거했습니다:
“그의 기쁘심을 따라 자기 안에서 계획하신 바 그의 뜻의 신비를 우리에게 알게 하셨으니 이는 때에 찬 경륜 안에서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땅에 있는 것들이나 자신 안에 있는 것들까지도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함께 모으시는 것이니라.”(엡 1:9-10_
그분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나온 사람과 모든 만물들은 결국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분께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몸까지도 그분의 소유물인 것입니다: “너희는 값을 치르고 산 것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20)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성령을 받은 사람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몸과 마음과 가진 것들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라고 사도 바울이 증거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에게 권고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것이 너희가 드림 합당한 예배니라.”(롬 12:1) 아멘! 할렐루야!